농촌 잘살기 운동

- 7장 자본 이동

by 북다이제스터



독점 기업이나 지식재산권은 사회 발전을 저해하고, 자본 불균형을 심화합니다. 그렇다면 한 국가 내 도시와 농촌처럼 서로 다른 역할을 맡은 지역 간에도 자본 유출이 일어날까요? 예상할 수 있듯,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도시와 농촌의 분업 구조로 농촌 자본이 도시로 흡수된다는 사실을 정부가 알고 이를 의도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입니다.


가난한 농업국이 공업국으로 성장하려 할 때, 초기 자본이 부족합니다. 외국이 신용 낮은 가난한 나라에 대규모 차관을 제공할 가능성도 낮습니다. 이럴 때 정부는 농촌 생산성을 높여 곡물을 팔아 번 돈[자본]을 확보해, 이를 도시[공업 지역]에 집중 투자합니다. 다시 말해, 농촌 생산성 향상 운동은 단순한 ‘농촌 잘살기’ 운동이 아닙니다. 도시와 공업 발전을 위한 자본 유출 전략인 셈입니다.


20세기 초 소련은 농촌 자본을 도시로 이전해 경제를 급격히 성장시킨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930년대 전 세계가 대공황으로 침체에 빠졌지만, 소련은 눈에 띄는 경제 성장을 이뤘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당시 소련의 계획경제 모델을 본뜬 것입니다.


1920년대 말 소련은 공업화를 빠르게 추진하고자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노동자를 먹이고 입히고, 공장과 기계를 만들 기자재를 확보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소련은 사회 전체 생산물 중 일부를 자금으로 확보해 외국에서 필요한 기자재를 사 와야 했습니다. 당시 소련 인구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고, 그중 상당수는 자급자족형 농업에 종사했기에, 필요한 자금은 결국 농업에서 조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급진 사회주의자 레온 트로츠키(1879~1940)와 경제학자 유게니 프레오브라젠스키(1886~1937)는 공업화를 위한 자본을 농촌에서 최대한 끌어내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곡물을 낮은 가격에 수매하고 농업 이윤에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는 한편, 공산품은 높은 가격에 판매하는 정책이었습니다. 목표는 중공업을 빠르게 성장시키기 위해 자원과 노동력을 도시에 집중시키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농촌은 의도적으로 무시되거나 소외되었습니다.


이후 권력을 장악한 스탈린(1878~1953)은 이 노선을 더욱 빠르고 가혹하게 추진했습니다. 1930년에서 1931년 사이 소련 정부의 곡물 수매량은 2,210만 톤으로 이전보다 두 배 이상 늘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여러 차례 5개년 계획을 시행하며 공업화를 빠르게 추진했습니다. 그 결과 1930년대 소련의 공업 부문은 연평균 16퍼센트라는 경이적인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1928년만 해도 후진국이던 소련은, 10년 만인 1938년 세계 주요 경제 강국으로 부상했습니다. 당시 어느 미국 언론인은 소련을 다녀온 뒤 동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미래를 보았고, 그것은 잘 돌아간다.”


소련의 경제발전은 농촌의 희생 위에 이루어졌습니다. 이처럼 농업을 희생시켜 도시산업을 키우는 방식은, 이후 많은 개발도상국이 따라 한 산업화 전략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박정희 정부 시절 공업 중심 성장 정책을 추진하며, 쌀값을 물가 상승률보다 낮게 억제한 저곡가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그 결과 농촌과 도시 간 경제적·문화적인 격차가 커지고, 농촌 인구가 도시로 이동하는 이촌(移村) 현상이 심해졌습니다. 농촌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 지역 공동체 붕괴라는 장기적인 피해를 입었고, 이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불균형으로 이어졌습니다.


18세기 이전만 해도 인류 대다수(85~95퍼센트)는 농촌에 살았습니다. 1950년까지도 전 세계 인구의 70퍼센트가 농촌에 거주했습니다. 농촌은 도시 생활의 불안정을 보완하며 사회 연속성을 유지하는 기반이었습니다. 인류 생존은 지금까지 농촌 마을의 회복력에 크게 의존해 왔습니다.


예컨대 대공황 이전 미국은 크고 작은 불황이 있었지만, 다수가 농업에 종사하며 자급자족이 가능했기에 그 충격을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초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더 많은 인구가 농촌을 떠나 도시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이 닥쳤을 때, 실업자가 된 노동자 수백만 명은 돌아가 농사지을 땅이 없었습니다. 실업률은 40~50퍼센트에 육박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농촌 같은 회복력 있는 공동체의 뒷받침 없이 도시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농촌은 오랜 세월 인류 생존의 든든한 기반이었고, 그 기반이 무너질 때 사회 전체는 위기에 더욱 취약해집니다.


미국 건국 초기 수십 년 동안 많은 미국인은 자국이 공업 국가로 발전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습니다. 미국이 농업 국가로 남아야 한다는 주장은,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경제 성장’이나 ‘번영’ 관점에서는 낯설게 느껴집니다. 제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1743~1826)은 “우리의 작업장을 모두 유럽에 그대로 남겨두자”고 말하며, 공장들이 초래할 사회적인 폐해를 미국 땅에 들이는 걸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공산품을 자국에서 직접 생산하기보다, 이미 완성된 제품을 유럽에서 수입하는 편이 낫다고 보았습니다.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 앙리 로페브르(1901~91)는 소련 몰락의 원인 중 하나로 자본주의와 다를 바 없는 도농(都農) 분리 정책을 지적했습니다. 그는 농촌을 인간과 사회를 재생하는 핵심 공간으로 보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농촌을 보존하고 되살리는 일은 사회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필수 과제입니다.


특히 중요한 과제는 농촌 자본이 도시로 빠져나가는 걸 막는 일입니다. 이를 위한 효과적인 수단 중 하나가 ‘지역화폐’입니다. 최근 우리나라 여러 지방자치단체는 꽃 축제 같은 지역 행사에서 입장료를 받고, 그에 상응하는 지역상품권, 곧 지역화폐로 되돌려 주고 있습니다. 이는 지역 내에서 자본이 순환하도록 유도해, 돈이 대도시나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통화 정책입니다.


지역 내 돈이 충분히 돌지 않으면 노동력과 자원을 확보하기 어렵고, 결국 농촌 경제는 쇠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학자 세르주 라투슈(1940~ )는 “국가가 화폐를 독점하면서 지역 사회의 발전을 장려하는 건, 마치 알코올 중독자를 독한 술로 해독시키려는 것과 같다”고 비유했습니다. 중앙정부가 모든 화폐를 통제하면, 농촌은 자립할 기회를 잃고 점점 더 취약해집니다.


지역사회는 스스로 화폐를 발행하고 유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가가 화폐를 독점해서는 안 됩니다. 화폐는 지역 사회를 돕는 도구여야 하며, 지역 사회가 화폐에 종속되어선 안 됩니다. 지역 내에서 돈이 원활하게 돌면 주민들의 구매력이 유지됩니다. 지역에서 돌고 도는 자금은 생명 유지에 필수인 혈액처럼, 지역사회의 생존을 지탱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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