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하면 이익은 없다

- 7장 자본 이동

by 북다이제스터



현재 우리는 자본 이동이 자유로운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1996년 우리나라는 OECD 가입을 계기로 이 흐름에 본격 편입되었습니다. 당시 가입 조건에는 자본거래 자유화(자본 이동 규제 완화와 외국인 투자 제한업종의 폐지)와 정부 규제 완화, 서비스 시장 개방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외교관이었던 사토 마사루(1960~ )는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세계화를 동반하며 제국주의로 발전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자본주의는 세계화 과정에서 국가 간 경제적인 불균형을 확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계화는 많은 자본을 가진 국가에게 유리한 구조를 만들고, 자본이 부족한 국가는 자원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처지에 놓입니다. 그 결과 자본은 강한 국가로 집중되고, 약한 국가는 더욱 취약해집니다. 이 흐름 속에서 세계화는 겉으로는 국경을 허무는 자유와 개방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본력에 따라 국가 간 위계가 강화되는 제국주의 구조, 곧 강대국 중심의 불평등한 세계 질서를 만듭니다.


자본주의가 제국주의로 발전하는 메커니즘은 이렇습니다. 부유한 나라의 상류층은 소비로도 다 쓰지 못할 과잉 소득을 축적합니다. 이 과잉 소득이 생산 설비 확장에 쓰이면, 공급은 수요보다 훨씬 빨리 늘어납니다. 결국 과잉 생산으로 기업은 국내에서 더 이상 수익성 있는 투자처를 찾을 수 없게 됩니다.


이때 무기 같은 ‘사치재’를 생산해 다른 나라와 전쟁을 벌여 자본 과잉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있지만, 해외 투자가 또 다른 대안입니다. 하지만 모든 공업화된 자본주의 국가가 비슷한 과잉 생산 문제를 겪고 있기에, 해외 투자는 비자본주의 국가들(아직 시장경제 체제에 편입되지 않은 지역들)을 자본주의 체제로 끌어들일 때만 가능해집니다. 이렇게 해서 자본은 국내 시장을 넘어 해외 비자본주의 국가로 팽창하고, 제국주의 확장이 불가피해집니다.


이때 단순히 완성품을 수출하거나 자금을 대출하는 것보다, 해외에 철도나 항만, 공장 같은 기반 시설을 직접 건설하는 투자가 훨씬 유리합니다. 이런 투자는 기계나 철강, 시멘트, 기술 같은 생산재 수출을 동반해 자국 산업에 큰 이익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해외에 대규모 기반 시설을 건설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은 투자 안전을 위해 자국 정부의 정치적, 외교적, 군사적인 지원을 요청합니다. 이에 따라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종속국의 경제 영역과 이권을 확보하려 치열하게 경쟁하며, 때로는 군사적인 충돌이나 전쟁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무력 개입이나 쿠데타 지원, 경제 제재 등은 모두 이 맥락에서 일어납니다. 결국 자본주의가 일정 규모에 도달하면, 내부 축적 한계를 외부로 확장해 해소하려는 경향을 드러내며, 이는 곧 제국주의로 귀결됩니다.


‘세계화’와 ‘제국주의’의 선두에는 소위 ‘경제 저격수’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때 경제 저격수였던 존 퍼킨스(1940~ )는 “나는 미국이라는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다른 나라의 돈이 미국 기업과 정부로 흘러가도록 상황을 연출했다”고 폭로했습니다. 그는 경제 저격수를 “미국 대기업과 정부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엘리트 조직, 즉 현대판 ‘살인 청부업자’”라 부르며, 자신의 임무는 “제3세계 국가들을 속여 자본을 강탈하는 것”이었다고 밝혔습니다.


일반적으로 미국 기업들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무언가를 보유한 나라를 찾아냅니다. 그 대상은 귀중한 자원일 수 있고 전략적으로 의미 있는 부동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뒤 경제 저격수들이 나서 해당 국가 지도자를 설득해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에서 거액을 빌리게 합니다. 중요한 점은 그 거대한 자금이 해당 국가에 직접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돈은 발전소나 항만, 산업단지 같은 기반시설을 짓는 미국 기업으로 곧바로 흘러갑니다.


몇 년 뒤 경제 저격수는 다시 그 나라를 방문해 말합니다. “그때 빌린 큰돈을 갚기 어려워 보이는군요.” 지도자가 두려워 떨면, 경제 저격수는 미소 지으며 해결책을 제안합니다. “걱정 마세요. 우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석유나 광물 같은 자원을 우리나라 회사에 헐값으로 넘기고, 사업에 방해되는 환경법과 노동법을 없애고, 미국 제품에 관세를 매기지 않겠다고 약속하세요. 또한, 저희가 원하는 조건에 따라 귀국 제품의 무역장벽을 없애고, 공익시설과 학교 등 공공기관을 민영화해 우리 기업에 넘기며, 해외 각지에서 활동하는 미군을 지원해 줄 병력을 파견하면 됩니다.”


경제 저격수의 제안을 거부한 일부 세계 지도자는, 결국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개입한 자국 군부 쿠데타로 축출되거나 살해되었습니다. 이란의 모하마드 모사데그(1953), 과테말라의 하코보 아르벤스(1954), 콩고의 파트리스 루뭄바(1961), 인도네시아의 아흐메드 수카르노(1967),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1973), 파나마의 오마르 토리호스(1981), 에콰도르의 하이메 롤도스(1981) 등이 그 예입니다.


이들은 자국의 자원과 정책 주권을 지키고자 했지만,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경제 저격수와 그 배후 세력의 제안을 거부한 대가로 축출과 암살, 사고사라는 공통된 결말을 맞았습니다. 이는 현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구조가 어떻게 국가 주권마저 위협할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무역센터가 테러 공격을 받았을 때 많은 미국인은 ‘왜 그들은 우리를 미워하지?’라는 당혹스러운 의문을 품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미국인이 그런 질문을 한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미국인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다른 관점을 지녔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점이 놀라왔던 것입니다. 정치철학자 토크빌은 일찍이 “미국인의 국민성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들은 세상만사의 가치를 단 하나의 질문으로 판단한다. ‘이게 얼마나 돈이 될까?’”라고 지적했습니다.


플라톤은 전쟁의 근본 원인 가운데 하나로 외국과의 무역을 꼽았습니다. 무역은 단순한 경제활동이 아니라 갈등과 분쟁의 씨앗이며, 결국 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과도한 부의 축적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무역 경쟁은 전쟁의 한 형태다. 평화는 그저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 지도자들은 무역과 산업을 감독해 개인에게 과도한 부가 집중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시민 평균 재산의 네 배를 넘는 부는 국가에 귀속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자는 금지되고 이익은 제한돼야 한다.”



장레옹 제롬 <로마의 노예시장>(1886)



그림 속 노예로 팔리는 여인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가립니다. 하지만 그 몸짓은 오히려 여인의 몸을 더 두드러지게 합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남성의 성적인 욕망을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수동적인 여성 이미지를 통해, 동양을 향한 서구의 욕망을 드러냅니다. 강하고 진보한 남성(서양)이 여성(동양)을 길들이고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는, 허황된 제국주의 환상을 반영합니다.



오늘날 막대한 자본이 오가는 금융시스템은 더 이상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제도가 아닙니다. 중국 인민은행 부총재를 지낸 경제학자 천윈루(1966~ )는 경고합니다. “제발 펀드나 주식, 보험을 재테크 수단으로 여기지 마세요. 신용카드로 터무니없는 농간을 부리는 이들의 말도 믿지 마세요.” 금융은 결국 부자를 위해 작동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루 거래되는 금융 자금 중 실제 재화나 서비스 생산에 쓰이는 비율은 고작 5퍼센트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대부분 생산과 무관한 금융시장 안에서 돌고 도는 거래입니다. 2015년 국제결제은행(BIS)은 금융이 실물 경제를 밀어내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은행 대출은 부동산 담보에 집중되고, 기업 효율성 개선에는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제조업이나 연구개발 분야는 대출조차 어렵습니다. 국제결제은행은 “금융 시스템의 확장은 생산성 향상을 막고, 금융 분야가 커질수록 실질 성장률은 낮아진다”고 지적했습니다. 영국 중앙은행도 동의하며, “금융화는 노동 시장과 기업 혁신을 해치고, 공장과 노동자에 대한 투자를 줄여 성장 둔화의 핵심 원인이 된다”고 밝혔습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토빈(1918~2002)은 “국제금융시장의 톱니바퀴에 모래를 뿌리자”고 제안했습니다. 외환거래에 세금 0.05퍼센트를 부과해 지나치게 빠른 자본 이동을 늦추자는 취지였습니다. 이 방안은 자본 이동이나 유출을 막는 데 분명 효과를 발휘할 것입니다. 이 세금은 그의 이름을 따서 ‘토빈세’라 부릅니다. 그는 토빈세로 조성된 자금을 유엔의 빈곤 퇴치 같은 프로그램에 쓰자고 제안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 외환 거래 규모는 하루 평균 2조 4,000억 달러로, 연간 무역 총액을 훌쩍 넘습니다. 여기에 토빈세 0.05퍼센트를 매기면, 매년 수천억 달러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자본 유출을 막고 국가 간 빈부격차 완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사실 지구 전체 자본, 즉 총자본은 늘어날 수 없습니다. 상품교환에는 하나의 공리(公理)가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용가치를 지닌 상품을 교환하지만, 교환할 때 가치는 서로 같아야 합니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상호 평등한 입장에서 상품의 등가성[교환 가능성]을 엄밀히 따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실 거래에서는 부등가 교환이 일어나고, 그 차이에서 잉여가치가 발생합니다. 경제학자 페르디난도 갈리아니(1728~1787)는 “평등이 있는 곳에는 이익은 없다”고 했고, 경제학자 프루동은 이를 쉽게 설명했습니다.


“A가 B에게서 이익을 얻으면, 경제 원리에 따라 B는 C에게, C는 D에게 다시 그만큼의 이익을 회수해야 한다. 이 과정은 결국 Z까지 이어진다. 그렇다면 Z는 누구에게 이익을 회수해야 하는가? 만일 Z가 최초 수혜자인 A에게서 이익을 회수한다면, 결국 아무도 이익을 얻을 수 없어 자본 축적은 불가능해진다. 거대한 산업 사회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이 이익으로 부자가 되려면, 다른 누군가는 반드시 가난해져야 한다. A가 자본을 축적하려면, Z가 희생되어야 한다.”


결국 자본 축적의 구조는 본질적으로 누군가의 희생 위에 다른 누군가의 이익을 세우는 게임입니다. 부가 집중될수록 그 반대편에는 필연적으로 빈곤이 발생합니다. 금융과 세계화, 외환시장, 다국적 기업의 활동까지 모두 이 원리에 따라 움직입니다. 현대 사회의 경제적인 불평등과 국가 간 위계도, 결국 이 오래된 자본 집중 구조를 반복할 뿐입니다.


우리는 자본 유출이라는 덫에 갇혀 있으며, 화폐는 이를 더욱 가속화합니다. 성경에서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못 가진 자는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복음 13:12>)라 했듯, 돈은 원래 돈 있는 자를 선호합니다. 있는 자에게 더 큰 부를 안겨주고, 없는 자에겐 그나마 가진 것마저 빼앗아 갑니다. 이것이 화폐의 본질이자 잔혹한 면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미래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화폐란 과연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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