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자본 이동
기업은 단순히 이익 극대화라는 사익(社益)을 넘어, 공익(公益)에도 기여할 책임이 있습니다. 주주의 이익뿐 아니라 소비자와 시민 전체 이익까지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실제로 미국은 건국 후 한 세기 넘게 이 원칙을 법으로 강제했습니다. 각 주(州)는 기업이 공익에 도움 된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설립을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공익을 저버린 기업은 폐업 처분을 받았습니다. 다른 기업을 인수하거나 시장을 독점하려는 행위도 불공정으로 간주되어 금지되었습니다.
예컨대 183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는 ‘공익에 반한다’는 이유로 은행을 폐업 처분했고, 1870년대 오하이오 주는 불공정 행위를 한 석유회사의 설립을 취소했습니다. 독점을 막기 위한 법적인 장치도 일찍 마련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1890년 제정된 ‘셔먼 반독점법’(Sherman Antitrust Act)은 미국 최초의 반독점 법으로, 시장 지배를 통해 경쟁을 제한하려는 모든 시도를 불법으로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1890년대 이후 미국 정부는 점차 대기업에 우호적으로 돌아섰고, 관련 법률도 크게 완화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입니다. 1890년 그는 체이스맨해튼 은행을 비롯한 여러 기업에 분산 투자하며, 이른바 ‘지주회사’(holding company)로 전환했습니다. 이 방식으로 그는 독점 금지법의 규제를 피해 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 법은 스탠더드 오일이 다른 주의 공장을 인수하거나 주식을 보유하는 것을 금지했습니다. 하지만 록펠러는 아홉 명의 신탁위원회를 구성해 이를 우회했습니다. 스탠더드 오일은 주식 대신 ‘트러스트’라는 신탁증서를 발행해 기업들을 간접 지배하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방식으로 록펠러는 독점 금지법을 피해 산업 전반을 장악했습니다.
록펠러의 방식은 곧 위스키나 설탕, 담배, 가축 사료, 가전제품, 양철, 성냥, 육류 같은 거의 모든 산업으로 퍼졌습니다. 1890년대 초 기업 5,000개가 트러스트 300개로 통합되었습니다. 가령 모건의 철도 트러스트는 6천4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철도 노선을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1900년 무렵에는 산업 집중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섬유 공장은 1880년대 대비 3분의 1로 줄고, 농기계 업체는 60퍼센트 감소했습니다. 가죽 제조업자는 4분의 3이 사라졌습니다. 기관차 제조업체는 1860년 19곳에서 1900년 단 두 곳만 남아 시장을 지배했습니다. 비스킷과 크래커 산업도 원래 수많은 소규모 업체가 있었지만, 20세기 초 업체 하나가 산업 전체 생산의 90퍼센트를 장악했습니다. 이러한 독점은 결국 인위적인 가격 상승과 경쟁 억제, 노동자 임금 하락으로 이어졌습니다. 독점 기업들은 노동자의 희생과 정부 보조금에 기대어 부당한 이득을 챙기며 성장했습니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1886년 미국 대법원은 중대한 전환점을 만들었습니다. 원래 해방된 노예의 권리를 보호하려고 제정된 수정헌법 제14조를 ‘기업을 보호하는 법’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창의적으로’ 판결한 것입니다. 이로써 기업은 ‘법인’(法人), 즉 법적인 인격을 지닌 사람으로 인정되었습니다. 법인은 개인과 똑같은 권리가 있지만, 개인이 지는 의무를 빼버린 판결이었습니다. 법인은 자원을 고갈시켜도 이를 보충하거나, 훼손한 걸 복구할 책임이 없습니다. 개인은 채무에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지만, 법인은 부채에 제한적인 책임만 지고도 각종 특권까지 누리게 되었습니다.
가령 회사채는 일반 대출과는 다릅니다. 법인이 회사채를 발행하면 만기일까지 이자만 내고, 원금은 만기일에 한꺼번에 갚습니다. 개인 대출처럼 원금을 분할해 갚지 않습니다. 그런데 공공연한 비밀은, 대부분의 법인이 만기일에 원금을 상환하지 않습니다. 대신 새로운 채권을 발행해 기존 채권을 상환하는 방식, 곧 ‘차환’(refunding)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회사채는 만기가 와도 사라지지 않고, 사실상 계속 유지되는 부채입니다.
대법원이 기업을 ‘법으로 정한 사람’으로 인정하면서, 기업에 대한 태도는 급변했습니다. 기업은 다른 회사를 사고팔 권한을 얻었고, 과장된 내용의 광고조차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표현의 자유를 지닌 ‘집단적 개인’이 된 기업은, 공익에 대한 책임은 벗어난 채 사익 추구에 몰두할 수 있는 법적 지위를 얻었습니다. 결국 법은 개인에게는 요구하는 책임을 기업에는 면제하는, 새로운 특권 체제를 만든 셈입니다.
2010년 미국 대법원은 수정헌법 제1조의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법인도 개인처럼 정치 캠페인에 무제한 기부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당시 노동자계급의 힘이 커지자, 대기업들은 선거 자금을 지원해 정치 지형을 바꾸려 했습니다. 연방대법원은 이를 ‘표현의 자유’로 인정해 합법화한 것입니다.
더구나 법인은 개인과 달리 기부 금액을 공개할 의무도 없습니다. 이 판결 이후 2012년 연방 선거 자금의 40퍼센트 이상이 최상위 부유층에서 나왔습니다. 여기서 최상위층은 상위 1퍼센트나 0.1퍼센트가 아니라 0.01퍼센트에 해당합니다. 그 결과 대기업과 부유층이 점차 정치권을 장악해 나갔습니다.
미국 대통령 예비선거는 경선 기간이 길어 초기 자금이 특히 중요합니다. 2016년 대선에서 공화·민주 양당 후보에게 기부된 자금의 절반은 부유한 158개 가문이 댔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금융과 에너지 산업에서 막대한 재산을 모은 가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대중과 부유층이 정부에 바라는 바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대의 민주주의에서 하층계급도 형식적으로는 선거에 참여하지만, 대중과 부자의 이해가 서로 갈릴 때 부자 의견이 정책으로 채택됩니다. 시민 다수 목소리는 사실상 반영되지 않습니다.
정치학자 벤저민 페이지(1940~ )와 마틴 길렌스(1945~ )는 1981년부터 2002년 사이 제안된 2,000여 건의 정책을 분석해, 이익단체와 부유층, 일반 시민 중 누가 실제로 공공정책에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일반 시민은 연방정부 정책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시민의 3분의 1 만이 자신 뜻을 관철할 수 있었는데, 그마저도 이익단체나 부유층과 의견이 일치할 때뿐이었습니다. 일반 시민은 정책 수립 과정에서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실제로 시민의 목소리는 부유하고 조직된 이익집단, 특히 기업 목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습니다. 이처럼 21세기 미국에서 대기업과 금융기관은 자신들만의 특권을 확보하며 국가 권력을 사실상 장악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 재임 시절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클린턴은 원래 원대한 포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모든 시민이 저렴하게 필수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의료보험 제도를 포함한, 야심 찬 경제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경제 참모, 특히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출신 로버트 루빈(1938~ )은 클린턴에게 그런 경제정책은 실행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클린턴이 이유를 묻자, 루빈은 단호히 대답했습니다. “월스트리트가 그렇게 두지 않을 겁니다.” 충격을 받은 클린턴은 되물었습니다. “내 원대한 경제정책과 내가 4년 후 재선되는 게 모두 그 빌어먹을 월스트리트 브로커들 손에 달렸단 말입니까?” 그러자 루빈의 답은 간단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결과적으로 클린턴 임기 중 실질적인 성과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뿐이었습니다. 사회보장제도 개혁은 복지 수혜자에게 가혹한 개악이었고, 실업자 복지 혜택 축소와 저임금 수용을 강제하는 법이 시행했습니다. 형사사법제도 개편으로 수감자 수는 크게 늘었습니다. 임기 말에는 투자은행 규제의 마지막 보루였던 글래스-스티걸법(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 원칙)을 폐지했습니다. 클린턴 이후 거의 모든 재무부 장관은 골드만삭스 출신이었습니다. 이 사례는 대기업이나 금융기관이 국가권력을 어떻게 좌지우지하는지 보여주는 분명한 사례입니다.
법인은 막대한 부와 권력을 휘두르면서도, 일반 시민처럼 대접받길 원하고 모든 권리를 주장합니다. 국가 경제를 능가하는 거대 법인과 힘없는 개별 자연인 사이의 차이가 모호해졌습니다. 법인은 책임과 의무에서는 자유로운 반면, 개인은 제한된 자원과 권리 속에 갇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법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혼란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법인이 ‘사람’인지, 아니면 권력과 부를 감싸는 단순한 제도적 허울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2018년 우리나라 대법원은 자연인뿐 아니라 법인도 명예훼손죄의 보호 대상이 된다고 판시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사람’이라는 표현에 자연인뿐 아니라 법인도 포함된다고 해석했습니다. 법인은 살아 있는 인격체처럼 권리를 누리지만, 정작 우리 모두에게 강제되는 책임에서 면제됩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책임지는 자유’의 원칙과 충돌합니다.
권리만 보장되고 책임은 묻지 않는 존재를 사회가 인정할 때, 기업들은 법적 인격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사회를 장악합니다. 그들은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허위 정보를 퍼뜨리고, 세금을 회피하며, 정치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윤리적인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사람처럼 대우받는 법인은 정말 사람인가?’ ‘책임 없는 권리는 과연 정당한가?’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권리만을 가진 존재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체제는 정의로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