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장 화폐
경제학자 케인스는 인플레이션을 ‘숨은 세금’이라 지적했습니다. 정부가 화폐를 과도하게 발행해 물가가 오르면, 그 자체로 세금을 걷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면 정부는 시민의 재산 일부를 눈에 띄지 않게 몰래 압수할 수 있다. 이 방법은 단순한 압수일 뿐 아니라 독단적인 수탈이기도 하다. 그 결과 다수는 가난해지고, 일부는 오히려 부유해진다.”
경제학자 헨리 해즐릿(1894~1993)은 인플레이션을 “특히 나쁜 세금”이라 불렀습니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1912~2006) 역시 이를 “숨은 세금”이라 지칭하며, “법 없이도 부과할 수 있는, 정말로 (미국 독립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대표 없는 세금”이라 말했습니다.
우리는 인플레이션을 흔히 물가 상승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석유나 식료품 회사가 가격을 올리면, 그들을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비난하곤 합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은 물가 상승이라는 결과가 아니라 원인, 곧 양적 완화나 통화 팽창에서 비롯됩니다. 국가는 통화량을 늘려 물가 하락을 막습니다. 그 과정에서 물가가 오르면 각종 세수는 늘고, 국가 부채는 줄어듭니다. 가령 오늘 발행한 국채 1,000원이 10년 뒤 인플레이션으로 실질 가치가 700원으로 떨어지면, 국가는 그만큼 빚 부담을 덜게 됩니다. 대신 그 부담은 근검절약하는 사람들이 떠안습니다.
통치자들은 오래전부터 화폐 가치를 떨어뜨려 ‘인플레이션 세금’을 부과하는 기법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한(漢) 나라를 세운 유방은 기존보다 무게를 4분 1로 줄인 화폐를 주조했습니다. 그 결과 쌀 한 가마니 값이 1만 전까지 치솟았습니다. 로마 황제들도 동전 속 금·은 함량을 줄이는 ‘동전 깎기’를 했고, 중세 군주들도 같은 수법을 썼습니다.
1914년 서유럽 국가들은 전쟁 자금을 마련하고자 화폐에 대한 금이나 은의 보장[금본위제]을 폐지했습니다. 독일 바이마르공화국과 제2차 세계대전 후 헝가리와 짐바브웨는 지급 보장 없는 화폐를 남발했습니다. 사실상 금본위제에서 화폐량은 국가가 보유한 금에 연동됩니다. 더 많은 화폐를 찍으려면 금을 더 캐거나 다른 나라에서 빼앗아 오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한계 탓에 화폐 공급은 제한되고. 물가는 완만히 오르거나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내려갑니다. 물가가 낮아지면, 화폐의 구매력은 커지고, 소비자와 노동자의 권한도 그만큼 강화됩니다.
오늘날 중앙은행들도 금리를 낮게 유지하며, 모호한 인플레이션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방식만 달라졌을 뿐 본질은 같습니다. 돈 가치를 떨어뜨려 국채의 실질 가치를 낮추고 정부 부채 부담을 덜려는 것입니다.
인플레이션은 새로 발행된 돈을 먼저 손에 넣는 이들에게 유리합니다. 물가가 오르기 전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돈을 확보하는 주체는 대개 국가나 은행, 기업입니다. 특히 기업은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자동으로 이익을 챙깁니다. 빌린 돈으로 원료와 설비, 노동력을 사들여 상품을 만들어 팔고, 나중에 값이 떨어진 돈으로 빚을 갚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봉급자나 연금 생활자처럼 돈을 가장 늦게 받는 이들은 인플레이션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습니다. 그들이 돈을 손에 쥘 즈음엔 이미 물가가 크게 올라 있기 때문입니다. 인플레이션은 빈곤을 심화시키는 동시에, 은행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소수 부유층만 더 부유하게 만듭니다. 은행은 새로 찍어낸 돈을 신용도가 높은 부유층에 우선 대출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플레이션은 부의 불평등을 확대하고, 다수 희생 위에 소수 이익이 쌓이는 구조를 만듭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는 ‘양적완화’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돈 풀기에 나섰습니다. 중앙은행은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해 경제를 지탱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풀린 돈은 실물경제보다 자산시장으로 흘러들어 가, 부동산과 주식 가격만 끌어올렸습니다. 임금은 함께 오르지 않았고 양극화는 심해졌습니다. 화폐는 단순한 교환 수단이 아닙니다. 계층 격차를 키우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2007년부터 2017년 사이 미국 연방준비은행은 설립 이후 100년간 발행한 것보다 다섯 배나 많은 돈을 찍어냈습니다. 이 정책으로 부채시장에 자금이 몰려 기업들이 3조 1천억 달러의 이득을 봤다고 맥킨지 글로벌 연구소는 추산했습니다. 반면 가계는 저축 이자를 거의 받지 못해 3조 6천억 달러를 손해 보고, 연금기금도 2조 7천억 달러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산됩니다. 통화 확대의 혜택은 금융시장과 기업, 부유층에 집중된 반면, 다수의 노동자·서민·은퇴자는 피해를 떠안았습니다.
우리는 물가가 오르는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경제학자 카르멘 라인하트(1955~ )는 지난 100년 간 세계 평균 물가가 30배 이상 뛰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원래 그런 거야. 물가는 늘 오르는 거지. 옛날엔 짜장면이 500원도 안 했잖아”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국가는 의도적으로 통화량을 늘려 물가 하락을 막아왔습니다.
지난 30년간 ICT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저개발국가의 값싼 노동력이 국제 분업 체제에 편입되면서 인건비는 내려갔습니다. 지금처럼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고 사람이 남아도는 현실에선 상품 가격이 30~40퍼센트 이상 떨어져야 합니다. 그럼에도 물가는 매년 계속 오릅니다.
물가 상승은 결코 당연하지 않습니다. 16세기 이전 유럽에서는 300년 넘게 물가가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미에서 쏟아져 들어온 금속화폐가 과도하게 유통되면서 물가는 폭등했습니다. 스페인 군주들은 정복 전쟁 자금을 마련하려고 금 180톤과 은 1만 6,000톤을 들여왔고, 그 결과 귀금속 화폐 가치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당시 경제학자 마르틴 곤잘레스 데 셀로리고(1570~1620)는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스페인에 돈과 금, 은이 없는 이유는 그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부유하기에 가난하다.”
18세기 산업혁명 초기 유럽은 물가가 급격히 올랐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1726년부터 1789년 사이 물가는 65퍼센트 상승했습니다. 곡물 가격이 올라 가난한 사람들의 부담은 커졌고, 지대는 갑자기 올랐지만 임금은 물가상승을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지대는 1730년대 대비 1780년대 평균 98퍼센트 올랐으나, 실질임금 상승은 22퍼센트에 그쳤습니다.
당시 인플레이션으로 노동자의 실질 소득은 줄어든 반면, 지주와 상인 수입은 늘어났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인플레이션 시기의 최대 수혜자는 자본가 계급이었습니다. 그들은 낮아진 실질임금으로 노동자를 고용하고, 원료를 사서 재고로 보관하는 것만으로도 가치를 높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자본가들의 수입 증가가 산업혁명을 촉진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반면 19세기에는 금본위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인플레이션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 약 100년 간 유럽과 미국 물가는 사실상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영국의 소비자 물가는 19세기 초보다 말에 30퍼센트 낮아졌고, 미국은 40퍼센트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남북전쟁 동안 일시적으로 인플레이션을 겪었지만, 이후 다시 금본위제로 돌아가 물가 안정이 유지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지난 30년간 일본 노동자 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은 점에 놀라지만, 사실 일본은 물가가 별로 오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인들은 우리나라 직장인이 점심에 만 원 이상을 쓰는 걸 보고 놀라곤 합니다. 일본에선 여전히 6~7천 원이면 점심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지난 30년 간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며, 통화정책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용해 왔습니다. 문화인류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1937~ )는 일본 정부의 이런 인플레이션 관리 능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화폐 역사는 정부가 통화 공급을 늘리고자 끊임없이 새로운 화폐 유사 수단을 만들어온 사실을 보여줍니다. 17세기 전쟁이 한창일 무렵 서유럽은 병사 급여와 전쟁 물자 조달 방안을 찾고 있었습니다. 영국은 이때 새로운 ‘신용 제도’인 국가 영구채권을 고안했습니다. 정부는 상환 기한이 없는 채권을 일반인에게 발행하고, 무기한 이자를 지급했습니다.
국가는 필요한 만큼 돈을 빌리면서도 갚을 의무가 없었고, 채권을 산 사람은 원할 때 시장에 팔아 돈을 회수할 수 있는 ‘신기한’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국가는 국민 세금으로 이자만 지급하면 되었고, 정부 재정이 나아지면 이전에 발행한 채권을 사들여 소각해 이자 부담을 줄였습니다. 이렇게 전쟁 비용을 여러 해에 걸쳐 나눠 갚을 수 있게 되자, 영국 국력은 급격히 커졌습니다.
『로빈슨 크루소』(1719)의 저자 대니얼 디포(1660~1731)는 “국가 채권이 전쟁을 낳고, 평화가 오면 다시 군대를 일으키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신용이 돈 자체보다 더 강력한 전쟁의 동력”이라며, 무한한 신용은 결국 무한한 전쟁으로 이어진다고 보았습니다. 칸트 역시 세계 영구평화를 위한 조건 중 하나로 국채 발행 금지를 제안했습니다. 그는 “국가가 대외 분쟁과 관련해 국채를 발행해선 안 된다. 자금력이 곧 전쟁으로 쉽게 이어져 평화를 위협하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