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장 화폐
화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시장 역시, 그 기원은 흔히 이렇게 설명됩니다. 인간의 물물 교환 성향 때문에 마을에 장터가 생기고, 점차 교역이 필요해져 대외무역이나 원거리 교역으로 발전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순서는 정반대입니다. 시장은 마을 장터가 아닌, 국가 간 원거리 무역에서 시작됐습니다. 이후 대규모 지역 상업이나 수공업 시장이 형성되고, 마지막으로 농촌 마을에 시장이 들어섰습니다.
칼 폴라니는 19세기 유럽의 ‘거대한 전환’(great transformation: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출현) 이전까지 세계 어디에도 제대로 된 시장은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마을 장터는 본질적으로 경쟁이 아닌 호혜에 기초했으며, 핵심 기능은 식량 공급이었습니다. 따라서 마을 장터에서 식량 가격이 폭등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공급되도록 교역은 철저히 통제되었습니다. 실제로 과거 대부분의 사회는 시장 발달을 오히려 억제했습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철학자들도 시장경제에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급자족을 이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들이 살던 후기 고대 그리스 시민사회에 화폐경제가 침투하자 경제적인 충격이 닥쳤습니다. 경쟁적인 시장 때문에 빈부 격차가 커지고, 많은 시민은 채무노예로 전락했습니다.
플라톤은 자유민이 상업에 종사하면 위신이 크게 실추된다고 보고, 이를 범죄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고대 그리스 부족인 보이오티아 인들도 상업에 종사해 자신을 욕되게 한 자에게 10년간 공직을 금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시장에서의 영리 활동을 비난했습니다. 교환이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고 믿는 현대 ‘정통’ 경제학자들과 달리, 그는 거래가 본질적으로 한쪽의 이익이 다른 쪽 손해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국경을 넘나들며 물건을 사고팔아 이윤을 취하는 영리 활동을 반사회적이라 했습니다. 도시 상업 세력은 사치에 돈을 탕진할 뿐 아니라, 전쟁을 벌이고자 돈을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전통 인도 사회는 성직자와 전사, 상인, 하인 등 네 계급으로 나뉘었으며, 돈으로 성직자 계급에 오를 수 없도록 ‘바르나’(varna)라는 장벽이 있었습니다. 하층 바르나에 속한 사람만 돈놀이라는 비천한 상업에 종사할 수 있었습니다. 물건을 파는 사람은 고객이 누구 건 아첨해야 했기에 경멸받았습니다.
중세 유럽에서 경제활동의 목적은 기본적인 필요 충족이었고, 그 이상의 자본 축적은 죄악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잉여가 생기면 교회에 기부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거나, 성당 같은 공공 건축물 건립에 사용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두어 모아 버리거나 기근 시 사용했습니다. 토머스 아퀴나스는 잉여를 가난한 이들의 공동 자산으로 보았습니다.
아퀴나스는 상업 자체에 죄를 지을 유혹이 내재해 있어 상인이 구원받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상인은 대금업자나 환전상, 조폐공, 용병, 창녀와 함께 기독교 금기 중 탐욕의 죄를 짓는 자로 간주되었습니다. 중세 유럽의 상인들은 자신처럼 장사꾼이 되는 함정에 빠지지 말라고 아들에게 유서로 당부했습니다. 또한 생전에 자선기관에 유산을 기부해 장사로 지은 죄를 씻으려 했습니다.
동양에서도 토지를 소유한 귀족[士]은 상인[商] 세력을 억제하려 2,000년간 사농공상(士農工商) 이념을 유지했습니다. 상인은 농부나 장인보다 못한 사회 최하층으로 간주됐습니다. 유교를 신봉한 중국 지배층은 상업을 제한했습니다. 맏아들은 문관, 둘째는 무관, 셋째는 상인을 시키는 게 상식이었습니다. 이처럼 나이에 따른 위계질서가 상업을 억제했습니다.
시장은 언제든 국가 이상과 충돌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정치권력은 개인의 부 추구에 한계를 두었습니다. 중국 자본가들은 오랫동안 이윤을 자유롭게 재투자할 수 없었습니다. 재산이 모이면 관청의 감시를 받았습니다. 다수의 중국인은 상공업을 통한 치부를 매우 부도덕하게 여겼습니다. 사업이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 곧 남을 속이는 행위로 간주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행상인들도 돈을 벌기 어려웠고, 번다해도 제약이 많았습니다. 동전은 너무 무거워 끈에 꿰어 갖고 다녀야 했고, 이를 나르려면 나귀나 하인 서너 명이 필요했습니다. 조선의 관료들은 동전이 가벼우면 사람들이 탐욕스럽게 쌓아둘 것이라 우려했습니다. 그들은 어디서든 상업의 싹을 잘라버리려 했습니다. 상업이 널리 퍼지면 통제가 어려워져 졸부가 늘고, 농민들이 다른 생계 수단을 찾을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관료들은 상업이 신분제 사회질서를 무너뜨리지 않도록 시장을 철저히 단속했습니다.
시장은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습니다. 사회에 시장이 자리 잡으려면 인위적인 설계와 관리가 필요합니다. 도량형이나 결제 수단 등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하고, 그때까지 보편적이지도 영원하지도 않을 계약을 맺어야 합니다. 또 무엇을 팔지, 누구에게 판매 자격을 줄지, 누가 분쟁을 중재할지도 미리 정해야 시장이 작동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