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장 사회과학
9장 사회과학
“경제법칙과 도덕법칙은 원래 하나다.”
- 헨리 조지
17세기까지 유럽에서 경제학은 독립된 학문이 아니었습니다. 사업 경영은 대학에서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중심으로 도덕 철학의 일부로 다뤄졌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제를 윤리학의 한 갈래로 보았습니다. 그는 경제 활동이 인격을 드러내므로 마땅히 도덕 규율로 제약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중세 스콜라 학파 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이어받아 상품 가격이나 사유재산 같은 경제 문제를 도덕 신학의 과제로 삼았습니다. 당시 도덕적인 ‘공정 가격’은 상품을 만드는 데 든 비용으로, 그 이상을 받는 건 부당하다고 여겼습니다. 이익을 남긴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신학자들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는 성 마태오의 가르침에 따라, 거래는 쌍방이 동등한 이익을 얻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매매 차이로 이득을 남기는 상인은 비난받았습니다. 아퀴나스는 상품을 실제 가치보다 비싸게 파는 행위를 이웃을 속이는 사기라고 단죄했습니다.
중세 경제학은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관점에서 금융 거래를 억제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돈은 새끼를 낳을 수 없다”(money does not breed)는 ‘화폐 불임(不姙)설’을 주장한 것처럼, 중세 교회도 이자 부과를 금지했습니다. 따라서 대출에 이자를 붙일 수 없었습니다. 시간은 신이 창조한 것이므로 이를 이용해 이득을 얻는 행위는 도둑질로 여겨졌습니다. 특히 여유 있는 자가 여윳돈을 빌려주고 대가를 받는 건 어떠한 희생도 치르지 않았으므로 부당한 처사로 간주되었습니다.
교황은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려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큰 상을 받을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라는 <누가복음 6:35>의 말씀에 따라, 고리대금업을 ‘죽음에 이르는 대죄(大罪)’로 규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고리대금업자는 사회에서 추방되었습니다. 누구도 그들에게 집을 빌려줄 수 없고, 이를 어기면 파문당했습니다. 고리대금업자는 고해성사가 허용되지 않고, 교회 묘지에 묻히지 못했으며, 유서도 법적인 효력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고리대금업을 옹호하는 이들마저 이단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돈이 돈을 낳는 일은 한때 상상조차 어려웠지만, 오늘날에는 당연한 상식이 되었습니다. 이런 걸 보면 우리 경제 상식이 얼마나 독특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슬람교의 <코란> 또한 정당한 상거래로 얻은 이익과 이자로 얻은 이익을 엄격히 구분하며, ‘알라는 거래를 허락하시되 고리 취득은 금하셨다’고 규정합니다. 원금 외 1퍼센트의 이자도 고리로 간주합니다. 이자를 받는 행위는 오늘날에도 죄악으로 여겨지며, 이를 반영한 ‘무금리 은행’(interest-free bank)이 존재합니다. 자본주의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현재 이슬람 경제권에 무금리 은행이 150개 이상 운영 중이며, 그 수는 계속 늘고 있습니다.
이슬람 은행은 이익과 손실을 고객과 공유한다는 원칙에 따라, 투자 수익을 나눕니다. 대출 시에는 은행이 고객 대신 상품을 구입해 수수료를 붙여 되팔거나, 설비나 기재를 임대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이처럼 이슬람 은행은 교리와 경제 활동이 공존합니다.
조토 <애도>(1305)
화가 조토는 고리대금업자인 엔리코의 의뢰로 <애도>를 그렸습니다. 대부업을 가업으로 이어온 엔리코는 가문이 지옥에 떨어질까 두려웠습니다.
엔리코는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해 예배당을 짓고, 당대 최고 화가 조토에게 벽화를 의뢰했습니다. 조토는 엔리코의 불안을 꿰뚫은 듯, 그림 주제를 ‘구원’으로 정했습니다.
18세기 들어 근대 국가는 인구 규모와 생산성, 무역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주체가 되고, 이에 따라 유럽 일부 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이 탄생했습니다. 정치경제학은 한 사회의 경제를 정치나 법률, 사상, 문화까지 함께 고려해 이들 간 관계를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정치경제학은 국가와 시민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판단할 토대를 제공합니다. 나아가 정치경제학은 경제학이 실천적인 학문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또 시민이 어떤 경제학을 얼마나 배워야 하는지도 규정합니다. 이 과정에서 정치경제학은 경제학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정치경제학이 19세기 중반 정치학과 경제학으로 분리되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1806~73)과 칼 마르크스가 마지막 정치경제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1870년대 들어 경제학계는 ‘개인’의 경제 행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이론을 내세우며, ‘정치경제학’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경제학’으로 바뀌었습니다.
경제학은 이제 개인(소비자나 생산자, 투기꾼 등)이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고자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축소되었습니다. 경제활동에 담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의미는 은폐되고, 경제적인 가치는 사회 전체가 아닌 개인에게 주어진 자산의 ‘한계적인’ 증가분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엘프리드 마셜(1842~1924)은 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종합해 『경제학 원리』(1890)를 저술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역사학 등 인문학이 학문의 중심이고, 주로 과거를 탐구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자본주의가 심화되면서, 정치 지도자들은 현재 상황을 중시하며 경제학과 정치학, 사회학 같은 이른바 ‘사회과학’을 따로 발전시켰습니다. 이러한 사회과학은 자본주의의 작동 원리를 정당화하는 지식을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경제학은 점차 추상적인 ‘순수’ 이론으로 바뀌었습니다. 정치와의 연결이 끊기면서, 경제학에 미분 같은 수학이 광범위하게 도입되었습니다. 1872년 경제학자 레옹 발라(1834~1910)는 미분 방정식을 이용해 경제학을 수학화한 첫 인물로, 경제 시스템의 균형점이 자연계의 균형점과 유사하다고 보았습니다. 자연계에서는 모든 힘이 상쇄될 때 균형이 이루어집니다. 예컨대 행성이 별 주위를 돌 때, 행성을 안으로 끌어당기는 별의 중력과 행성을 밖으로 밀어내는 원심력이 만나 균형을 이룹니다.
발라는 다양한 경제 시스템, 특히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균형점을 수학적으로 예측하려 했습니다. 그렇기에 예측 가능한 안정적인 균형점만 고려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 현상에는 균형점이 아예 없거나, 여러 개가 공존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문제로 지적된 부동산 가격 폭등, 특히 서울 강남 아파트가 그렇습니다. 많은 경제학자와 정부는 아파트 공급량을 늘리는 해결책을 제시해 왔습니다. 논리는 단순합니다. 아파트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 집값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점에 이를 때까지 오르므로,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논리에 따라 새 아파트를 짓거나 저층 아파트를 고층으로 재개발하는 정책이 반복되고, 역대 정권도 신도시 개발로 공급 확대를 추진해 왔습니다.
물론 현실은 교과서처럼 단순하지 않습니다. 30년 넘게 아파트 공급을 늘렸지만, 집값은 여전히 균형점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서울 강남의 집값 문제는 단순한 수요와 공급의 균형점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실러(1946~ )는 부동산 가격 폭등을 자본주의에 내재한 문제로 보았습니다. 부동산 거품의 핵심 원인은 바로 가격이 오를 거란 기대 심리에 있습니다. 초과수요나 공급부족 문제가 아닙니다. 투기 세력이 조장한 가격 상승의 기대심리와 이에 쉽게 휩쓸리는 대중 심리가 맞물린 결과입니다. 자본주의의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속성을 무시한 채, 수요와 공급이라는 단순한 균형 논리로는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시장은 사람들이 현재 상황과 앞으로 일어날 일을 어떻게 예상할지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래서 시장은 때때로 나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1933~ )은 이를 보여주는 사례를 제시했습니다. 그는 홍수나 가뭄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굶어 죽는 이유가 단순한 식량 부족 때문이 아님을 밝혔습니다. 실제로 기근 지역에서 식량 공급이 오히려 늘어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식량 부족을 예상하고, 농민이나 상인들이 식량을 시장에 내놓지 않으면서 가격이 오릅니다.
센의 분석은 수요와 공급이라는 자유시장 철학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시장 가격은 때때로 가장 강한 동기를 지닌 소수에 의해 결정될 수 있습니다. 꼭 팔아야 하는 매도자 한 명만 있어도 가격이 크게 떨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50조 달러가 넘지만, 2008년 사례에서 보듯 0.2퍼센트도 안 되는 매도 주문이 시장 가치를 10퍼센트 이상 증발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