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인 세상

- 9장 사회과학

by 북다이제스터



두 번째, (2) 경제학을 정치학과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시장이 정부 개입 없이 자율적으로 움직일 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믿음에 기반합니다. 시장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스스로 움직이면, 가장 효율적인 결과가 나온다는 입장입니다. 애덤 스미스는 이러한 시장 자율성을 강조했고, 이는 후에 ‘자유방임’(laissez-faire) 이론으로 체계화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애덤 스미스보다 700여 년 앞서 중국 송나라의 역사가이자 정치가 사마광(1019~86) 역시 시장 자유방임주의를 지지했습니다. 그는 시장이 개인의 타고난 경제적인 본성에 따라 운영될 때 가장 잘 작동한다고 믿었으며, 당시 개혁 정치가인 왕안석(1021~86)이 실행한 정부의 산업 통제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왕안석은 철학자이자 시인으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한 명입니다. 1070년 재상이 되어 국가가 백성의 후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신념 아래 적극적인 정부개입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는 국가가 상업과 산업, 농업을 완전히 장악해야 백성이 부자들에게 착취당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위해 전국에 관리들을 파견해 노동 임금과 생필품 가격을 규제하고, 상업을 국유화했습니다. 정부는 지역 산물을 사들여 일부는 비축하고, 나머지는 전국 국가 저장소로 보내 판매했습니다. 또한, 예산위원회를 설치해 예산 편성과 집행을 계획적으로 관리했습니다.


왕안석은 농번기 강제 부역을 폐지하고, 홍수 방지를 위한 대규모 토목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상비군을 자원 낭비로 보고 군대 규모를 줄였습니다. 농민을 노예로 만들던 고리대금업자에 맞서 저리로 농사 자금을 빌려주었습니다. 실업자에겐 훗날 자기 땅에서 거둔 생산물로 갚는 조건으로 무상 정착을 도왔습니다. 노인과 실업자, 극빈자에게는 연금을 지급하고, 청년에게는 교육과 과거 제도 개혁으로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왕안석의 정책으로 만성 적자였던 국가 재정은 흑자로 돌아섰고, 정부 창고에 금전과 미곡이 쌓였습니다. 국가 재정이 너무 건전해지면서 경기가 침체된 듯 보였지만, 하층민에게는 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거지가 줄고 반란도 일어나지 않았던 사실이 이를 보여줍니다. 문제는 기존 자유방임 정책으로 이득을 누리던 자산가 계급이었습니다. 왕안석의 정책은 오늘날 관점에서 보면 사회주의 성격을 띠었고, 정부 통제가 엄격해 투기로 돈을 벌 여지가 없었습니다. 자산가들은 이를 심각한 불경기로 받아들였습니다.


부자들은 높은 세금과 정부의 상업 독점에 불만을 품었습니다. 그들은 조직적으로 왕안석의 정책을 비난하며, 황제에게 압력을 가했습니다. 마침 하늘에 불길한 혜성까지 나타나자, 황제는 어쩔 수 없이 왕안석을 파면하고 그의 정책을 모두 철회했습니다. 이후 사마광 같은 시장 자유방임주의자들이 요직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자유방임주의 경제 철학은 비간섭 원칙을 중시합니다. 세상은 자율적으로 움직일 때 가장 잘 돌아가며, 더 낫게 하려고 시도해 봤자 더 나빠질 뿐이므로 그대로 두는 편이 좋다는 권고입니다. 18세기 서구 경제학자들은 신이 경제법칙을 자연법칙처럼 창조했기에, 경제는 스스로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가정했습니다. 따라서 정치가 경제에 개입해선 안 되며, 경제학은 정치학과 분리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사상가들은 신이 이성적인 계획에 따라 세상을 창조했으며, 뉴턴이 그 뜻을 이성을 통해 밝혀냈다고 새롭게 인식했습니다. 따라서 하찮은 인간이 신의 무한한 뜻, 특히 ‘선한 신이 왜 악(惡)을 창조했는지 인간은 결코 헤아릴 수 없다’는 전통적인 믿음은, 새로운 뉴턴 시대의 이성과 더 이상 양립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뉴턴의 발견 위에 세워진 새로운 자연신학의 핵심은, 뉴턴이 신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를 수식으로 증명해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었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18세기 사상가들은 악의 문제를 이성적인 관점에서 설명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의 추론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신은 지극히 선하며, 본성상 악을 행할 수 없다.

· 신은 뉴턴이 밝혀낸 것처럼 이성과 논리, 수학 같은 법칙에 따라 우주를 창조했다.

· 위 두 가정은 모순될 수 없다. 만약 모순된다면 전능한 신은 이를 미리 알았을 것이고, 선한 존재로서 이성에 어긋나게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을 것이다.

· 또한 신이 이성의 법칙에 따라 여러 가능한 세계 중 선택할 수 있었다면, 선한 존재로서 가장 최선의 세계를 만들었을 것이다.

· 따라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가능한 모든 것 중 가장 최선이다.


이 세상이 가능한 모든 세계 중 가장 최선이라면, 신이 이 세계를 창조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모든 것에 이유가 있다는 ‘충족 이유율’을 지지했습니다. 당시 많은 사상가는 세상이 최선이라면,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악과 고통조차 신의 계획 일부로, 전체 질서 안에서 결국 이로울 것이라 믿었습니다. 신이 무언가를 고쳐야 한다면 이 세상은 애초에 최선일 수 없으므로, 신이 이런 세계를 창조했을 리 없다는 논리입니다.


정치적으로 보면, 충족 이유율은 현존 질서를 옹호하는 논리로 작용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가능한 세계 중 최선이라면, 우리가 겪는 고통과 결핍도 가장 적다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사회를 바꿀 이유도 사라지며, 이는 현존하는 사회 체제와 생활 조건, 권력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됩니다.


신은 인력이나 척력 같은 자연법칙으로 물리세계를 창조해, 우주가 스스로 작동하도록 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은 인간 사회에도 상호작용 법칙을 부여해 가장 조화로운 최선의 사회 질서를 이미 마련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의 최종 결론이 바로 자유방임주의 경제철학입니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자유방임주의 사상은 청교도주의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며, “하지만 중세나 근대와 달리 신학적인 기반이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 자유방임과 같은 자연 상태 이론은 충분한 공감대를 얻지 못해 불완전한 이론에 머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밀이나 마르크스 같은 정치경제학의 창시자들은 경제를 연구할 때 수학 같은 과학적인 방법론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경제와 정치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리법칙처럼 딱 떨어지는 시장의 법칙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오늘날 경제학자들은 ‘리스크’와 ‘불확실성’을 구분합니다. ‘리스크’는 어떤 일이 발생할 확률을 계산할 수 있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반면 ‘불확실성’은 확률 자체를 부여할 수 없는 상황을 가리킵니다. 미국 전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1932~2021)는 불확실성을 “알려지지 않은 알려지지 않은 것”(unknown unknown)이라 표현했습니다.


이론상 ‘리스크’와 ‘불확실성’을 구분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쉽지 않습니다.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사건 목록을 아무리 치밀하게 만들어도, 실제로는 일어날 수 있는 결정적인 사건이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케인스는 이 점을 지적하며, “리스크 문제에 대해 계산 가능한 확률을 도출할 과학적인 기반은 없다. 다시 말해, 우리는 리스크를 그냥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keyword
이전 24화팩트풀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