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과다시대의 착각: 취향은 나를 대변해주는가?
틴더(소개팅 앱)를 하다가 만났던 사람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이라면 당연 C를 꼽을 것이다. 그는 만화를 찢고 나온 것 같은 외모의 소유자도 아니었고, 수영장의 라이프가드와 같은 잘 빠진 몸매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오히려 외모는 여태껏 만나보았던 사람 중에서 가장 평범한 축에 속했다. 꾸미고 나왔다는 인상을 주려고 나름 코트를 입고 나왔지만 네모난 검은 뿔테 안경을 끼고 나온 모습은 어딘가 특별하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그에 대해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취향의 일치’에 놀라울 정도로 집착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로 만나보기 전부터 어떤 취향이 얼마나 겹치는지 열심히 찾으려고 하였다. 으레 첫 만남 전에는 공통점을 확인해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고는 하므로 나도 열심히 그 ‘공통 취향 찾기’에 응했다. 그럭저럭 좋아하는 것에 대해 “정말요? 저도 그거 진짜 좋아하는데!”와 같은 반응을 보이면서. 그러다가 서로 이상형이 어떤지 물어보게 되었고, 그 사람의 이상형이 “음악 취향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교해보니, 그 사람과 나의 음악 취향은 비슷했으므로 일단은 호감을 주는데 성공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그것이 일종의 메타포 정도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지만, 그 사람과 만나고 헤어질 때 즈음에도 거기에 집착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한 끼하고, 와인을 한 잔 하며, 딱히 중요하지 않지만 시간을 떼우기 위한 이야기들을 주고 받다보니 서로의 휴대폰에서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게 되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어떤 노래를 자신이 좋아하는지, 자신의 플레이리스트에서 내가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지를 찾으려고 했다.
지금은 그저 친구-절대 서로 먼저 연락을 하지 않지만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워’’라는 서로 이어져 있는 관계-일 뿐이지만, 음악 취향에 그토록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직도 특이했던 경험으로 기억이 남는다. 사실 취향이라는 것이 겹치면 할 이야기가 많아지고, 그 사람이 어떠한 문화자본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인지에 대해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기 때문에 확인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라고는 생각한다. 음악으로 예를 들면, 개인적으로 알게 된 많은 사람들 중 힙합/EDM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볼드하고 터프하거나 적어도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았고,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들에 비해 감수성 있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 같다. 이처럼 취향은 분명 그 사람의 분위기를 읽어내는데 어느 정도 일조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취향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분명컨대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취향은 그 사람으로 환원될 수 없다. 취향은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면모 중 일부를 드러내 보여줄 뿐이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해 전적으로 알게 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틴더와 같은 어플로 100명 이상을 만나보았으나, 취향이 다르다고 해서 친해지지 않는 것이 아니었으며, 취향이 같다고 해서 친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여기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자신만의 취향을 가지고, 취향을 드러내는 것이 강박적으로 요구되는 ‘취향과다시대’이긴 하지만, 거기에 매몰되다 보면 자기와 이야기하고 있는 자기 앞의 사람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 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