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허정 Oct 29. 2019

캐나다 할로윈에서 한국 호박전을?

내 생에 첫 할로윈

10월의 마지막 날은 할로윈데이이다. 할로윈의 상징인 호박 장식과 함께, 주위가 온통 주황과 검정으로 물들며 할로윈이 다가왔음을 알린다. 최근 몇 년 새 우리나라에도 할로윈 문화가 급격히 확산되었다. 할로윈 복장을 입은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눈에 띄고, 놀이 공원이나 여러 가게들에서 할로윈 파티를 연다. 여기저기 불이 켜진 잭 오 랜턴을 보니 캐나다에서의 할로윈이 떠올라 내 마음이 두근거린다.




내 생에 첫 할로윈


내가 제대로 된 할로윈을 경험했던 건 5년 전, 캐나다 유학 시절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할로윈을 크게 기념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로윈이란 내게는 다소 생소한 문화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이한 할로윈에 어린아이처럼 기대에 부풀어 파티 전 날 잠을 설치기도 했다. 스무 살을 넘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잠을 설칠 정도로 설렐만한 처음이 내게는 너무도 오랜만이었다.


할로윈 경연대회라도 하듯 집집마다 거미줄과 호박, 해골들로 장식을 하고 저마다의 솜씨를 뽐낸다. 캐나다의 10월은 그렇게 할로윈으로 잔뜩 들떠있었다.


캐나다 토론토의 할로윈 풍경




캐나다에서 한국의 맛을 선보이다


수많은 할로윈 장식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호박이었다. 저마다의 개성에 따라 호박을 파서 다양한 표정을 만들고, 안에 촛불이나 등을 넣어 불을 밝힌다. 이 장식을 우리는 '잭 오 랜턴(Jack O"Lantern)'이라고 하는데, 나도 홈스테이 가족들과 함께 잭 오 랜턴을 만들기 위해 호박을 열심히 파고 장식했던 그 날이 떠오른다.


파낸 호박 속으로 홈스테이 엄마가 만들어주신 호박파이의 맛 또한 캐나다의 할로윈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 중에 하나다. 계피 향 가득했던 호박 파이의 맛은 잊지 못할 캐나다의 맛 중에 하나로 손꼽는다. 나도 이에 질세라 한국식 호박 파이, '호박전'을 선보이기로 했다. 어렸을 때 엄마가 해주셨던 호박전의 맛이 그리워서, 그리고 지구 반대편 한국에 있을 부모님이 그리워서였다.


아빠와 열심히 숟가락으로 호박을 파내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열심히 호박을 파냈다. 엄마가 호박전을 해주기로 한 날에 호박 속을 파내는 건 아빠와 나의 임무였다. 야무지게 숟가락을 잡고 아빠를 따라 신나게 호박을 파던 그 날들과 함께 따뜻했던 그 시간도 떠올라 마음 한편이 뭉클했다.


아쉬운 대로 부침가루 대신 밀가루 조금을 넣고 소금 간을 한다. 노릇노릇하게 기름에 구워내면 짭 자름하고 고소한 호박전 완성. 떨림 반, 기대 반으로 홈스테이 가족들에게 한국식 호박 파이를 선보였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홈스테이 엄마, 아빠와 캐나다 출신의 아들. 정말 게 눈 감추듯 나의 호박전을 먹어 치웠고,. 호박파이보다 몇 배는 더 맛있는 것 같다며 'good'을 외쳐댔다. 이 정도면 아메리카 대륙을 감동시킨 한국의 맛 아닐까. 엄마가 해준 호박전에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였지만 내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내가 홈스테이 집을 떠나던 날, 홈스테이 엄마는 앞으로 다가올 할로윈 마다 내 호박전이 그리워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많은 한국인 학생들을 만나고 또 보냈지만, 한국 음식을 직접 만들어 자랑스럽게 선보인 학생은 내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나는 그들의 마음속에 또 하나의 추억을, 그리고 한국을 새겨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에 틀린 레시피는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