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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일 Sep 28. 2022

3개월 당근 수익 250만 원의 정체



아이들이 태권도장에서 받은 꽃송이들에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매해 어버이날마다 두 송이씩. 아이들 양손에 들려온 꽃들. 세어보니 모두 12송이였다. 비록 조화이지만 비닐을 벗기자 되살아난다. 과연 필요한 사람이 있을까 당근에 나눔을 올리자, 이내 연락이 왔다. 물건들이 쓸모를 되찾는 순간은 언제나 기쁘다.



32평에서 24평으로의 이사가 결정되었다.  미니멀하게 산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지금에서 1/3정도의 공간을 잘라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먼저 우리가  아파트와 구조가 비슷한 평면도를 찾았다.  방에 들어갈 최소한의 가구들만 남겨야 했고, 붙박이 수납공간이  하나뿐이어서 물건도  줄여야 했다. 일단 시작해야 한다. 이사 일까지 3개월. 불필요하다고 확신이 드는 물건들부터 당근에 팔기 시작했다.



“얘들아, 누구 당근이야?”



주말마다 아빠 당근, 엄마 당근이 울리기 시작한다. 채팅 알림음이 헷갈리기 시작하자, 남편은 다른 알림음으로 바꿨다. 나는 아이들 책이나 장난감 위주로, 남편은 가구나 자기 물건들 위주로 올렸다. 볼링, 축구, 야구, 지금은 골프까지. 운동을 좋아해서 집안 곳곳에 각종 운동 용품과 의류, 신발들이 쌓여 있었다.




남편의 물건들은 꽤나 인기가 많았다. 일할 때 쓰던 마우스와 키보드, 모니터 등. 일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위해(?) 개인적으로 구입했던 것들이었다. 어떤 물건은 올리자마자 채팅 알람이 계속 울렸다. 저렇게 인기 많은 물건을 사는 것도 재주인가 싶을 정도로 잘 팔았다. 사진 찍는 실력도 수준급이었고, 시세보다 더 좋은 가격으로 팔기도 했다. 이제는 나보다 당근의 달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흘러가야 하는 물건들이 있다. 인생의 시기마다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드디어' 로봇에서 졸업할 순간이 왔다. 깨끗하게 닦아 조카에게 물려주고, 부피가 작거나 고장 난 장난감은 코끼리 공장에 택배로 보냈다. 여기저기서 받아 쌓인 학용품들은 나눔코리아로, 유치원에서 받았던 단행본들은 도서관으로 보냈다. 이 모든 과정들은 시간을 필요로 하고, 약간의 수고로움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니 이사란 내 주변을 천천히 둘러볼 좋은 시간이자, 반성의 기회이기도 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제습기였다. 아마 유일하게 시기를 타는 가전제품이지 않을까. 남편이 고모집에서 가져온 것인데, 더 이상 우리에게는 필요가 없었다. 조용히 베란다 한 구석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뿐. 6월의 어느 날, 장마로 유난히 습했던 한 주였다. 그날도 세차게 장맛비가 내리고 있었다. 불현듯 제습기의 존재가 떠올랐다. 혼자 낑낑대며 가지고 나와 작동 여부를 확인하고, 필터와 물통을 깨끗이 닦아 말려 두었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말했다.


“바로, 오늘이야!”


그렇게 3시간 만에 제습기는 우리 집을 떠났다.




당근 거래에서 조연이지만 꼭 필요한 건, 바로 이 쇼핑백이 아닐까 싶다. 몇 개월간 판매만 하다 보니 종이 가방이 동이 났다. 양해를 구하고 유치원에서 받았던 부직포 교구 주머니까지 동원되었지만, 부족해서 이웃에게 SOS를 보냈다. 간간이 들어오는 택배 상자와 충전재들은 그대로 두었다가, 또 다른 택배 거래에 잘 쓰이기도 했다. 무엇 하나 버릴 게 없었다.






끝내 팔지 못한 것도 있다.

바로 침대 프레임과 공기 청정기였으니.



“얘는 우리랑 좀 더 인연이 있나 봐!”



무거운 원목의 프레임 없이 매트리스로만 살아볼까 했지만, 끝내 우리가 생각하는 가격에 팔 수 없었다. 안 가져왔으면 어쩔 뻔했을까! 침대는 이사 온 집에서 제 자리를 잘 찾았다. 도시에서는 의외로 팔기 어려웠던 공기 청정기는 이곳에서 인기가 많았다. 이것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32건의 나눔과 250만 원의 수익.



J형인 나는 물건이 팔릴 때마다 금액을 적었다.

물건 하나의 값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더하면 의미의 무게가 달라진다.



정리에는 비법과 도구보다
지난한 과정을 견디는 마음이 필요하다.
어질러지고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
정리는 결과보다 과정에 마음을 쓰는 일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순간 정리를 시작했다> 중에서



4년 전, 내가 밟았던 과정을

이번에는 남편과 함께 건넜다.


250만 원을 덜어내고 얻은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가벼움과 앞으로의 가능성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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