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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영 Jul 19. 2023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아이가 새끼손톱보다 더 작을 때부터 누누이 남편과 말로 나눴던 이야기가 있다.

이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 그저 '행복한 사람'이면 좋겠다.

그때는 정말 내가 욕심 없다고 생각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 재능이 뛰어난 아이처럼 특정한 모양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에 비해 욕심이 적다고 여겼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차라리 공부 잘하는 아이가 더 나은 바람이었을지 모른다.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처음 그 말을 뱉을 당시엔, 명랑하고 사람들과 잘 섞이며 상처에 굴하지 않고 사랑받은 티가 뚝뚝 떨어지는, 그래서 항상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명량 드라마 캐릭터 같은 사람을 떠올렸던 것이 분명하다. 나처럼 작은 일에 주눅 들고 자주 우울해하고 기분이 오락가락하며 사람들에게 잘 엉겨 붙지 못하는 내 성격과 정확히 반대되는,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무언가 나를 닮지 않아서 사랑스러운 캐릭터.

그런 형체도 없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 혼신을 다해 공을 들였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나는 그런 캐릭터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 당시 무척이나 엄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구에 소환당한 아이를 행복한 사람으로 키워야 했다. 행복한 아이가 될 조건이 뭐였을까? 내가 자라온 환경부터 훑어봐야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 나를 길러준 주 양육자.

엄마와 살갑고 따뜻하고 라는 단어와 거리가 멀었다. 눈치 보고 숨기고 되도록이면 멀리 하고 싶었던 사람.


아이 낳기 전에 시작한 심리치료사 과정을 아이를 기르며 이어 갔다. 치료사가 되기 위해 개인 상담은 필수였다. 상담을 하면서 친정엄마가  심리에 차지하는 비율은 그야말로 놀라웠다. 거의 엄마가 만들어 놓은 현실 안에서 나고 자라고 살아 나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엄마에게서 애착이 문제가 온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은 엄마와 관련된 일들이 계속 따라다녔다. 잊힌 줄 알았던 기억들이 아직도 나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었다.


책으로 읽은 몇 줄의 지식이 아닌, 삶을 통한 지식이 온몸에서 강렬하게 느껴질 때. 사람은 초인적으로 배운 지식을 실제로 행동할 수 있다.


  나의 더러운 성질은 아기에게 가 닿지 않았다. 쉽게 말해 아기에게 내가 받은 스트레스를 전가하지 않았다. 부글거리는 마음이 어쩔 수 없을 땐 이를 꽉 깨물었다. 몇 년 만에 본 친동생이 나의 온화해진 얼굴을 보고 화들짝 놀랄 정도였다. 누나가 화를 폭발해도 골백번도 더 폭발했을 시점에 아기와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며 매번 놀라워했다. 실제로 그것이 가능했다. 주변 육아 동지들도 나를 신기해했다. 어떻게 소리를 한번 안 지르고 아이를 키울 수 있냐고 물었다.

  그때 나는 화를 삭이지 못해 죽을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보다 아이가 이 시기에 받은 상흔들이 죽을 때까지 따라다닌다는 두려움이 압도적으로 컸다. 그리고 그 행동을 '내'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의 모든 들끓음을 잔잔하게 만들었다.

   나는 아직도 어릴 적 엄마에게 받은 표정 말투 눈빛 모두가 어젯밤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니까.

그것들이 지금의 나를 빚어내고, 그 기억에서 한 번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으니까.

생애 최소 3년, 체력이 허락한다면 최대 6년까지 못 참고 못 할 이유가 없었다. 내 생애 단 6년만으로 그 아이가 평생을 이 세상을 믿을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값진 시간이라 위안했다.

이런 사명감은 그 어떤 직업이 와도 옆에 와 비빌 수 없었다. 너무 멋진 일이라 여겼다.










 어느 날, 나는 갑자기 고갈되었다.

다른 것은 아이가 크면서 수월해졌는데, 유독 잠자리에 드는 것을 거부했다.

선천적으로 체력이 좋은 아이는, 하루 종일 엄청난 활동량을 자랑하고도 어쩐지 꿈나라에 가는 것에 대해 굉장히 억울해했다. 아니면 엄마의 일탈이 얼마 남지 않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모든 아이 모두 공통으로 싫어하듯 '씻자'라는 말부터 이 고요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하루 종일 모든 에너지를 다 쓴 양육자는 아이가 잠들고 난 후, 목이 타들어 가는 소주 한잔 넘기며 하루를 환기하고 잠에 들고 싶은 사소하고도 간절한 소망을 품었다. 그것이 이 삶을 겨우 지탱했다. 그런 나의 간절한 마음을 아는지. 아이는 무덤가의 좀비처럼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우고, 말을 걸었다.

 

 햇수로 7년, 문자 그대로 매일 밤, 한 시간씩 어둠 속에서 꼼짝없이 누워 아이가 잠들 때까지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해야 겨우 잠이 들었다. 그동안 다양한 시도를 해보았다. 하지만 며칠 지속되지 못했다.

어느 날도 한 시간 넘게 누워있다 견디지 못한 나는 방을 뛰쳐나와 베개를 들고 화장실로 뛰어갔다. 문을 걸어 잠그고 베개를 힘껏 두들겨 패고 땅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그때 내 목에서 나온 소리는 흡사 야생동물이 위험할 때나 나올법한 소리였다. 의지와 상관없이 소리가 제멋대로 튀어나왔다. 그 기분은 평생 느껴보지 못한 이상하고도 강렬한 감정이었다.


   내 안에 그렇게 많은 공격성이 살고 있는지, 아마 아이를 키우지 않았더라면 절대 알 수 없었을 거다.

구석에서 몰래 숨어서 욕도 많이 했다. 꼭 다른 누군가가 내 몸에 빙의해서 계속 열을 방출해 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욕을 한다고 해서 시원하지 않다. 

   나중에야 인지심리학 발달로 인해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 글을 보고 위로받았다. 인간은 하루치 감정을 참을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는데, 낮 동안 아낌없이 정해진 인내심을 소진하고 나서, 하루가 끝나가는 저녁엔 모든 인간이 그렇듯 고갈과 폭발만 남아있는 구조적 결함이 있다는 걸.

내가 엄마가 되었다고 신이 된 것이 아니라 한낱 인간일 뿐이라는 걸.

   마치 엄마는 신처럼 아무 타격 없이 아이를 기르는 것이 당연히 해야 할 몫이라고 스스로를 무한하게 여기며 참으라고  스스로 억압했다는 걸.

   그것이 마치 행복한 아이의 조건인 마냥 동아줄을 잡고 그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하루하루를 버텨갔다는 것. 그 줄에 겨우 매달리는 동안 힘을 다 소진해 나 자신은 어디 구석에 팽개쳐 놓고 존재를 보이지 못하게 했다는 것. 그것이 좋은 엄마의 조건이고 죽어도 사수해야 할 삶의 빛처럼 여겼다.

아이에게 소리 지르는 대신 베개와 격투를 하는 것으로 대체하며 지내던 하루를 지나 결국 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킨다. 시간은 어찌어찌 지나갔다.


  이제는 그 강렬했던 시간을 놓아두었다. 나는 더 이상 이 아이의 어떤 것도 모른다.

다만 매 순간 만나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아이의 존재를 느낀다. 그 순간만큼은 아이도 나도 행복한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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