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영 Aug 25. 2023

엄마를 만났다

결혼을 축하해요 엄마




엄마가 뒤늦게 결혼 했다.


   엄마가 새로운 가족을 만들고 난 뒤, 겉으로는 의연해 보이던 나는 속으로 혼란스러웠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나의 잘못은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매번 그 순간으로 돌아가 아쉬워하고 또 다른 이야기의 가능성을 상상했다. 

누구도 이 상황에 대해 정리된 말을 하지도 해주지도 않았다. 맞다. 문제 될 건 하나도 없었다.

엄마는 이혼한 상태였고, 불법을 저지른 게 아니었다. 어떤 사람이 나타났고, 그 사람과 가족을 이뤘다.

그저 그뿐이었다. 남은 건 내 속에서 자리 잡지 못하는 폭풍 같은 혼란이다.  



   이혼한 엄마 아빠가 다시 왕래를 시작한 것은 내가 결혼하고 나서부터다. 

원수로 헤어진 것이 아닌 부모님은 자연스레 내 결혼식에도 함께 혼주석에 앉아 결혼식을 치렀고, 

명절마다 사위와 함께 나중에는 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함께 했다.

아빠 환갑 엄마 환갑 때 함께 간 여행에서도 두 분은 함께였고,

살림만 따로 있었지 서로 필요한 부분을 조금씩 챙겨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7년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보냈다.

   시간이 오래 지나고 나니 주변에서도 엄마 아빠의 재결합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엄마는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했지만, 딱히 누군가를 만나지도 않았다.

두 분의 속내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아빠는 내심 엄마도 재결합에 관심이 있다고 느끼며 점점 더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런 미묘한 분위기는 일 년 일 년이 더 지나면서 짙어졌다. 


   이제는 결심할 순간이 온 것만 같은 긴장감이 조금씩 흘러가던 무렵. 

조용히 과거 무너진 사업의 뒷수습하며 평범하게 사는 듯 보였던 아빠가 다시 큰일에 손을 댔다. 

이제 겨우 안정을 찾은 듯한 상태가 지속되던 차였다. 

엄마는 본인과 더 이상 상관없다는 것에 대해 안도하는 듯 보였지만 슬쩍 짜증 나하는 것도 같았다. 

우리 핑계를 앞세워 투덜거리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자식들한테 부담 주는 것 아니냐며 불안을 내비칠 때마다 엄마가 과연 아빠와 상관없다고 느끼는 것이 맞을까 의문이 들었다.


   어려운 길 위에 다시 놓인 아빠의 사업이 두 번째라고 갑자기 탄탄대로일 리가 없었다. 

점점 일들이 꼬여가고 풀리고 꼬여가고 풀리고 다시 아슬아슬한 상황들에 홀로 놓인 아빠를 우리는 모두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저 아빠가 예전 경험이 깊이 내면에 자리 잡아 이번에는 '안전한 위험함'을 감수하게 된 것이라고 간절하게 믿고 지켜봐 주는 것 외에는.


   그 지점에서 엄마는 이혼 전처럼 아빠와의 만남에서 자주 불만을 쏟아냈고, 만남은 점점 불편해져만 갔다. 

그리고 이듬해 홀로 사는 것이 맘 편하다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조차 거부하던 엄마가 

우연히 이뤄진 자리에서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게 된다. 함께 사니까 남편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강한 부정을 했던 과거의 기운들을 모아 샴페인 터트리듯 초고속 동거의 길로 들어섰다. 


   그 우발적인 결정에는 아빠에 대한 원망과 분노 과거의 울분이 연료제가 되었다고 나는 짐작한다. 

온 우주가 엄마의 새로운 시작을 펌프질 하는 그런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이것을 그들의 두 번째 이혼이라고 부른다. 

   아무도 공식적으로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내가 옆에서 목도한 바는 그렇다. 

나는 그들의 두 번째가 처음보다 더 아팠다. 그것은 명백히 숨 쉴 때마다 폐부로 파고드는 감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가족을 잃은 것만 같았다. 이제 돌아오는 생일날 명절에 함께 만날 가족들이 없다.

뿔뿔이 흩어진 상황에 또 다시 익숙해져야 한다. 

    잠시나마 사이가 좋아 보이는 시간을 함께 보내서 추억이 생겼다고 위로하기엔 끝이 너무나 씁쓸했다. 

아빠는 엄마의 전화번호를 즉각 지워버렸다. 마치 지구에 처음부터 엄마라는 존재가 없었던 것처럼

그리고 그것을 바라본 자식이 얼마나 마음에 상처가 될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나 조차도 내 마음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가슴 깊이 골이 난 것들이 곪아 터져 나와 아물어 가던 와중에, 엄마와 다시 만났다. 

마주 앉아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걱정과 다르게 우리는 평소처럼 농담하며 인사를 했고 

차를 마시고 밥을 먹었다. 모든 것이 똑같았다. 

   엄마는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불쑥 미안하다고 하셨다

어릴 때 오래도록 전공시키느라 미안했다고, 그것이 어린 나에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한 번도 그것에 대해 위로해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했다. 

그것에 뒷바라지 끝까지 해줘서. 그것은 나의 선택도 있는 것이니 너무 괘념치 말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엄마가 떠나간 자리에 남은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엄마는 한 번도 못 보았던 지난 이야기를 가만히 귀 기울여 들으셨다. 

내 입장에서 바라보지 못한 그 시간을 조용히 한탄하시며 딸이 우는 것을 바라보셨다. 


   엄마 앞에서 이것이 숨김없이 드러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는 나를 바라보다 엄마가 말했다. 그때는 자신이 십대인 것 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갔다고. 

자식들 입장에서 고요히 생각하고 돌아보며 선택하고 행동하지 못했다고. 부모답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내가 항상 쿨하고 씩씩해서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고. 

그 해맑은 고백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웃음이 터져버렸다. 

   마음속으로 짐작했던 것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내 엄마는 아이와 같이 천진난만하다. 

곧 마흔이 될 나이가 되어가는 나는, 어린애의 마음으로 사는 주름진 60대 노 앞에서 마지막으로 흘릴 눈물을 흘려냈다. 

 이제부터는 내가 선택할 차례인 것이다. 앞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고 살 것인지 울고 살 것인지는

엄마 손에 달린 것이 아니라 내 손에 달린 사실이라는 것을 투명한 엄마의 표정을 보며 알게 되었다. 


엄마도 시집보냈고, 아빠는 혼자 무소의 뿔처럼 혼자 잘 가는 사람이다. 더 이상 신경을 빼앗을 인물들은 없다. 자연스럽게 드는 이 허전함과 분리됨도 애써 누르지 말고 그대로 두고 싶어졌다.


결혼을 축하한다는 말도 아주 나중에 할 수 있게 되겠지. 










이전 03화 꿈꿨던 우리 집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