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너머의 기업**
ESG라는 용어는 불과 20년 전만 해도 없던 단어였습니다. 20세기 후반까지 기업의 목표는 단순하고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가능한 많은 이윤을 내는 것. 하지만 이 과정에서 환경오염, 인권 침해, 노동문제와 같은 사회적 갈등이 커졌고, 결국 “기업도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영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때 등장한 것이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입니다. 초기 CSR은 기부나 봉사활동처럼 자발적이고 이미지 중심의 활동에 가까웠습니다. 예컨대 1990년대 나이키(Nike)는 동남아시아 하청공장에서 아동노동 문제가 드러나며 불매운동에 직면했습니다. 나이키는 CSR 프로그램을 강화해 공급망 관리와 인권 보호를 약속하면서 위기를 넘겼습니다. 하지만 이런 CSR은 체계적인 평가나 비교가 어렵다는 한계를 지녔습니다.
**세 가지 성과로 기업을 보다**
1994년, 영국의 경영 사상가 존 엘킹턴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했습니다. 기업의 성과를 단순히 재무제표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트리플 바텀 라인(Triple Bottom Line, TBL)이라는 개념을 통해 기업이 재무(Financial)성과 뿐 아니라 사회(Social), 환경(Environmental) 성과까지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개념은 1997년 저서 《Cannibals with Forks》에서 널리 알려지며, “기업은 돈을 얼마나 벌었는가”뿐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었는가”까지 평가받아야 한다는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비교 가능한 보고서의 시작**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있었습니다. 기업마다 CSR과 TBL 보고 방식을 제각각 사용하다 보니, 투자자나 시민단체가 기업을 비교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이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2000년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가 첫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습니다. 2002년에는 정식 버전(G1)이 나왔고, 환경·사회·지배구조를 공통 지표로 제시함으로써 기업의 지속가능 보고서를 표준화했습니다. 덕분에 이해관계자들은 서로 다른 기업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되었고, ESG 보고 문화의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ESG라는 이름의 탄생**
전환점은 2004년이었습니다. UN과 금융기관이 발표한 「Who Cares Wins」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라는 단어가 공식적으로 등장했습니다. CSR이 기업의 도덕적 선언이었다면, ESG는 투자자와 규제기관이 기업을 평가하기 위해 만든 객관적 기준이었습니다. 아래에서 다루겠지만 여러가지 사건들로 ESG의 중요성이 커져갔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ESG를 기업의 필수 조건이 되게 했습니다. 투자자들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당장의 수익과 이익보다 중요하게 받아들였고, 다양한 측면의 리스크를 관리하는 기업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는 “기후위기는 투자 리스크”라며 ESG를 고려하지 않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순간, ESG는 단순한 보고의 언어에서 전략의 언어로 바뀌었습니다.
**왜 기후공시가 중요한가**
ESG의 세 축 중에서도 환경(E), 특히 기후변화 대응은 가장 뚜렷한 수치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량과 감축 실적, 감축 목표로 이어지는 기업의 온실가스 정보는 강화되는 기후변화 규제에 대한 기업의 대응력을 보여주고, 기업이 기후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투자자의 질문에 응답하는 지표가 됩니다. 공시 지표로 인해 공개되는 수치가 비교가능해지면서 업종 내에서 얼마나 경쟁력있게 대응하고 있는지 표준화 하여 평가할 수 있게 됩니다. 기업의 경쟁력을 따지는 지표로서 명확히 비교되는 또 하나의 수치가 되는 겁니다. 따라서 기후 공시는 단순한 정보공개가 아닌 기업의 미래 전략이자 경쟁력 지표입니다.
**ESG를 키운 사건과 사고들**
[1984년 인도 보팔 화학사고] 대표적 화학사고이자 환경관리 실패로 인한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사고입니다.
미국 기업 유니온 카바이드의 인도 보팔 공장에서 독성 가스가 누출되어 수천 명의 사망자와 수십만 명의 피해자를 낳았습니다. 기업의 안전 불감증과 환경 관리 부실이 빚어낸 참사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안전 관리의 중요성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습니다.
[2001년 미국 엔론 사태] 회계부정과 지배구조 붕괴는 초대형 기업조차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미국 에너지 기업 엔론이 거액의 분식회계와 회계 부정으로 파산한 사건으로 복잡한 재무 구조와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가 원인이었으며, 미국 기업 역사상 가장 큰 파산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기업의 투명한 지배 구조와 회계 감사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습니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 단순한 재무제표만으로는 기업의 리스크를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사건입니다.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로 파산하면서 글로벌 금융 위기를 촉발했습니다. 복잡한 금융 상품과 부실한 자산 관리가 파산의 직접적인 원인이었으며, 금융 시장의 상호 연결성과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습니다.
[2013년 방글라데시 라나플라자 붕괴] 발주기업이 협력업체의 안전, 노동환경까지 관리해야 한다는 기준을 정립하고 기업이 공급망 실사를 실시하게된 배경이 된 사건입니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인근의 의류 공장 건물인 라나플라자가 붕괴하여 1,1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로, 열악한 노동 환경과 안전 규정 무시가 원인이었으며, 공급망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글로벌 기업도 책임을 피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제2장 마무리 ― 새로운 시대의 언어**
CSR은 기업의 윤리적 선언이었고, TBL은 그 철학을 사회와 환경까지 확장했습니다. GRI는 이를 표준화했으며, ESG는 그 모든 흐름을 투자와 규제의 언어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오늘날 기업은 단순히 “얼마나 돈을 벌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돈을 벌었는가”**로 평가받습니다. 이것이 ESG가 기업의 언어가 된 이유이며, 앞으로도 기업의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 키워드로 남을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