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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Sep 29. 2020

육아전쟁은 오늘도 계속된다

주니와 아빠의 달콤 살벌한 강아지 양육 일기

"아빠! 자두 아침 먹였어?!"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주니는 나에게 소리를 지른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되는 훈데슐레 교육에 자두가 허기진 상태로 가야만 사료 보상에 적극 반응하며 훈련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주니 생각이다. 그래서 전날 밤에 나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절대 자두에게 아침을 먹이지 말라고.


나도 주니에 말에 동의한다. 이성적으로는. 하지만 일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강아지와 함께 놀다 보면 자두의 애잔한 눈빛이 내 감성을 찌른다. 얼마나 배고파서 저런 눈으로 나를 쳐다볼까. 그깟 교육이 무슨 대수라고 아이를 굶기나 하는 마음이 들 때쯤이면 이미 내 손은 로열 캐닌 봉지 속에 들어가 있다.


지금 우리 집에서는 자두의 주보호자인 내 딸 주니와 다년간의 육아 경력을 자랑하는 내가 사사건건 부딪히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충돌은 옆에서 보다 못한 엄마의 한마디로 정리되곤 한다.  


"둘이 또 시작이네. 제발 육아전쟁 좀 그만 해~"

     



따지고 보면, 주니와 나의 소망은 오직 하나다. 자두를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키우는 것.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에서 발생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먹이 주기다. 나는 자두가 포만감을 느낄 정도로 많이 주는 편이다. 주니는 이와 달리 습식과 건식 사료를 섞어가며 음식량을 조절한다. 


간식을 줄 때에도 서로를 견제한다. 나는 자두와 산책을 갔다 온 직후이거나 유난히 애교를 부리거나 하면 간식을 준다. 하지만 주니는 훈데슐레에서 배운 훈련을 잘 따랐을 때 보상용으로만 간식을 배급한다. 주니는 아빠가 사료를 너무 많이 주고 간식을 아무 맥락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준다고 항상 핀잔을 준다.


마뜩잖은 표정으로 주니가 주는 사료 그릇을 바라보고 있는 자두 


우리의 갈등은 자두와 놀 때 최고조에 달한다. 유튜브를 통해 강형욱과 설채현의 가르침을 섭렵한 주니는 어려서부터 안 되는 건 하지 못하게 엄격하게 교육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두가 너무 기분이 좋아서 손가락을 깨물거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면 교육 차원에서 크게 소리를 지르고 등을 돌린다.


내가 보기에는 사람이든 짐승이든 때가 되면 저절로 깨닫게 되는 것이 세상 만물의 이치다. 강아지는 입으로만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 그나마 유치가 거의 빠져서 아프지도 않게 무는데 그걸 못하게 하는 것은 너무 야박하다고 생각한다. 자두가 내 손가락을 물 때, 입술을 들춰서 치아 상태를 확인하는 것도 숨겨진 미션 중 하나다.


참고로 우리 자두는 생후 4개월부터 5개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어린 치아가 빠졌다. 인형 물기 놀이를 하다가 입안에서 뭘 우물거리고 있길래 확인해보니 어금니였다. 형제지간인 만두와 만나면 항상 격렬하게 노는데 만두 털에 피가 묻어 있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알고 보니 자두 앞니가 빠져서 생긴 해프닝이었다.


주니와 나는 자두를 위해 1일 3산책을 원칙으로 삼았다. 아침은 내가, 하교 후에는 주니가 산책시키고 저녁에는 함께 나갔다. 우리의 행복한 산책길은 이내 강아지 줄을 끄냐 마냐로 소란스러워진다. 나는 가급적 자두가 원하는 대로 따라가 주는 편이고, 주니는 주인의 통제를 느낄 수 있게 힘 조절을 하며 줄을 당기는 편이다.


주니는 자두와 산책을 하며 수시로 교감을 시도한다



"주니야, 그렇게 줄을 세게 당기면 자두가 아프잖아?" 내가 아무리 뭐라 해도 주니는 꿋꿋하게 줄을 당기며 강아지가 제멋대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제어한다. 자두의 앙증맞은 빨간색 가슴 줄을 놓고 우리가 실랑이를 벌이는 와중에도 자두는 코를 바닥에 밀착시키고 킁킁거리며 연신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리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의견 차이가 전면적인 육아 전쟁으로 비화한 데에는 주니의 위기의식이 상당 부분 작용했다. 7월 초에 강아지를 입양하고 난 후, 거의 두 달 동안 주니는 자두의 주보호자로서 일심동체처럼 지내왔다. 자두도 주니를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며 밤에는 주니의 침대에서 함께 잠을 잤다.


빨간 가슴 줄을 차고 산책을 기다리는 자두(좌)와 공부하는 주니 곁을 지키고 있는 자두(우)


주니와 자두의 화목했던 시절은 개학과 함께 막을 내렸다. 아침에는 주니가 등교하기 전에 내가 자두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오후 늦게 주니가 집으로 돌아오면 자두가 신이 나서 맞아주었지만 반가움의 강도가 영 예전만 못했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내가 자두와 지내다 보니, 주보호자로서 주니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난 토요일 오후 우리 가족은 자두와 함께 인근 도나우 파크로 나들이 갔다. 드넓은 잔디밭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자두가 흙에서 뭔가 발견하고 먹기 시작했다. 입을 억지로 벌리고 빼내 보니 날카로운 뼈 조각이었다. 천만다행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주니의 손가락이 세게 물렸다. 뼈인 줄 알고 문 모양이었다.


며칠 뒤 자료를 찾아본 주니가 나에게 말했다. 그런 경우에는 입을 강제로 여는 것보다 사료로 유인해서 저절로 떨어트리게 해야 한다고. 괜히 빼내려고 무리하다가 주인과 개의 신뢰관계가 깨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산책을 하다가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고 나는 주니의 조언대로 자두에게 사료를 보여주며 뼈다귀를 치울 수 있었다.


주니와 아빠의 강아지 육아전쟁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 치열함은 예전만 못할 것 같다. 충분히 믿음직스러운 주보호자 주니의 일관성 있는 교육방식에 어느새 내가 감동했기 때문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 우리의 육아전쟁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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