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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Dec 20. 2020

반려견 놀이터의 천국, 비엔나 훈데존

자연친화적으로 구성된 비엔나 개 전용공원에서 마음껏 뛰놀다

요즘 한국에서는 개들이 줄을 풀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어디에 마련하느냐 문제로 갑론을박 중이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일단 집단행동으로 막고 보는 강성 주민들 때문에 기껏 조성한 반려견 놀이터가 운영도 못하고 폐쇄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반려견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애견인들 여전히 혐오스럽고 더러운 동물로 취급하는 시민들이 아슬아슬하게 공존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다.


이에 비해 유럽인들은 개를 당당한 가족의 일원으로 간주한다. 굳이 반려견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처음 입양 단계부터 우리의 주민등록증과 유사한 팻 패스포트를 발급받아 개 이름과 종, 주인 이름과 주소를 비롯해 상세한 접종기록을 기록한다. 핵심 정보가 담긴 마이크로칩을 개 몸 안에 이식했기 때문에 행여 잃어버리더라도 쉽게 찾을 수 있고 무단 유기는 꿈도 못 꾼다.


유러피언의 진정한 개 사랑은 하루에도 몇 번씩 함께 산책하고 교감하는 데서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비엔나 거리를 거닐다 보면 항상 개와 산책하는 시민들을 보게 된다. 집 주위에는 개들을 위한 잔디공원과 야생 벌판이 곳곳에 조성되어 있다. 흙냄새와 풀내음을 마음껏 맡으며 배변도 자연스럽게 해결하는 최고의 산책 환경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반려견 놀이터 또는 애견 공원에 해당하는 곳을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는 훈데존(Hundezone)이라고 부른다. 개들이 마음 놓고 뛰어다니며 놀 수 있는 전용공간을 의미한다. 현재 서울에 있는 공공 반려견 놀이터가 6곳인 반면, 서울의 3분의 2 크기인 비엔나에는 20곳의 훈데존이 운영되고 있다. 자기 집에서 걸어서 가거나 차로 10분 정도만 이동하면 도착할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서 접근성이 뛰어나다.


서울(605㎢) 보다 작은 비엔나(415㎢)는 공원을 비롯한 녹지가 50%를 차지하며 훈데존이 20곳 있다


유럽에서는 훈데존이 조성될 장소를 놓고 주민들이 반대하는 상황을 상상하기 힘들다. 아이들 놀이터와 같은 개념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집 근처에 만들어진다면 대환영이다. 이곳에서 훈데존 운영과 관련된 고민은 얼마나 개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자연스러운 환경으로 꾸미느냐에 집중된다. 빈 공간에 단지 직사각형의 펜스를 치고 흙과 잔디로 구색을 갖춘 훈데존은 애견인들의 외면을 받기 십상이다.


나와 내 딸 주니가 자두와 함께 종종 방문하는 훈데존은 도나우 강변에 자리 잡고 있다. 훈데바서팔(Hundewasserparl)이라 불리는 이 개 전용공원은 우리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비엔나에 있는 여러 곳의 훈데존을 경험한 바 있는 나는 훈데바서팔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일반적인 훈데존보다 서너 배 이상 큰 규모도 그렇지만, 공원 안 이곳저곳에 개들을 위한 놀이시설을 정성스럽게 설치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줄겨 방문하는 훈데존인 훈데바서팔은 다양한 종류의 개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놀이터다


무엇보다도 훈데바서팔의 매력은 넓은 잔디밭과 함께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강이 있다는 점이다. 공원 안쪽으로 들어가면 나지막한 경사의 맑은 도나우강변이 나온다. 물을 좋아하는 우리 자두는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다가 자기에게 다가온 청둥오리와 어울려 수영을 하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우람한 대형견들이 사냥 물어오기 놀이를 하고, 사이즈가 비슷한 개들끼리 정신없이 장난치고 도망치며 놀다 보면 어느새 해가 저물곤 했다.


훈데바서팔은 흙과 잔디, 강과 수목이 어우러진, 비엔나에서 가장 아름다운 훈데존이다


지난주 금요일 오후에 우리는 자두와 자두 친구인 휘핏 코라와 함께 훈데바서팔을 방문했다. 자두와 코라는 넓디넓은 잔디밭을 마음껏 뛰놀며 자유를 만끽했다. 훈데존을 찾은 다른 개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려 놀았다. 공원 중앙에 마련해놓은 어질리티 시설에서 모험심을 기르기도 했다. 오후 4시만 되면 일몰이 찾아와 어두워지는 이곳 겨울 날씨 때문에 우리는 아쉽게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훈데바서팔에서 원통 어질리티 놀이를 하는 자두와 코라


비엔나를 대표하는 도시공원인 슈타트파크 안에도 훈데존이 있다. 슈타트파크는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하천을 따라 동서로 나뉘는데, 메인 공원인 서쪽 편에서 계단을 따라 다리 밑으로 내려가면 길게 직사각형 모양으로 펼쳐진 개 놀이터가 있다. 이곳의 특징은 슈타트파크에서 개와 산책하고 난 후, 바로 아래에서 다른 개들과 어울려 놀 수 있게 공간 구성을 했다는 데 있다.


매주 일요일 오전에 슈타트파크 인근의 과외쌤 집에서 주니가 독일어 과외를 받는 동안, 나는 자두와 슈타트파크를 산책하곤 했다. 전문가의 손길로 정성스럽게 관리된 수목과 잔디, 넓은 호수와 다양한 조류가 있는 슈타트파크는 살아 있는 생태계 그 자체다. 나와 자두는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풍경과 향긋한 내음을 만끽하며 공원을 거닐다가 계단 아래 훈데존에 가서 자유롭게 뛰어놀았다.


슈타트파크를 동서로 잇는 다리 밑에 조성된 훈데존에서 호젓하게 거닐고 있는 자두

           



비엔나에서 훈데존이 다양한 모습으로 활기차게 운영되고 있는 것은 이곳의 애견 문화가 안정적으로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 브리더에 의해 관리되는 강아지들은 엄마 품에서 충분한 사회화 과정을 거치고 난 후 입양된다. 대부분의 강아지들은 생후 3개월이 지나면 훈데슐레라는 개 학교에서 훈련과 놀이를 통해 다시 한번 훈육된다. 식당에서 얌전히 주인 곁에 앉아있고, 훈데존에서 함부로 다른 개를 물지 않는 것은 이런 지속적인 교육 덕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견 중에서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고 다른 개를 무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처벌은 냉정하다. 만일 상대 개를 죽이면 손해배상은 당연하고 바로 안락사를 당한다. 크든 작든 상처를 입히면 치료비를 전액 배상해야 한다. 이런 경우에 대비해서, 오스트리아에서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집보험에 개보험을 특약으로 포함시켜 놓는다. 자신의 반려견을 위한 개 의료보험은 별도로 가입해야 한다.


자두를 데리고 산책하다가 대형견과 마주친 적이 종종 있다. 혹시라도 자신의 개가 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주인은 아예 멀찌감치 자두를 피해 지나친다. 그게 자두뿐만 아니라 자신의 개를 보호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입마개를 착용하고 산책하는 개들도 많다. 특히 사람들과 함께 이동하는 대중교통에서는 입마개 착용이 필수다.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른다. 이곳에서는 "어머 우리 개가 물 줄 몰랐어요" 같은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철저한 교육과 보호 시스템을 통해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노력한다. 그 결과, 훈데존에서 대형견과 마주치더라도 우리 자두가 물리지 않을까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놀다가 대형견의 큰 발에  밟히는 경우도 있어서, 가급적 비슷한 체형의 개들끼리 어울리도록 유도한다.


비엔나의 반려견 놀이터, 훈데존에서 오늘도 개들은 마음껏 뛰어놀며 행복한 추억을 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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