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소재로 한 일상 표현과 속담에 대한 비판적 고찰
우리 가족의 비엔나 생활을 행복하게 만드는 비타민 같은 존재는 말티즈 퍼피 자두다. 강아지를 입양하고 직접 키우다 보니, 유럽의 애견 문화에 새삼 감탄할 때가 많다. 한국도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강아지를 입양하고 등록하는 법제도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교육시설 등 앞으로 보완하고 개선해야 점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하고 훌륭한 시설을 갖추어도 개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자체가 바뀌지 않는다면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사고를 전환한다는 것은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힘든 과제다.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과 관행적인 표현에서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우리말에는 개와 연계된 복합명사가 제법 많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개'는 '나쁜', '쓸데없는', '더러운' 심지어 '쓰레기 같은'이라는 최악의 형용사 역할을 하며 뒤의 명사를 수식한다. 당연하게도 우리가 가장 즐겨 사용하는 욕에는 '개'가 아무 거리낌 없이 섞여 들어간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개의 새끼인 강아지가 사람의 새끼인 아기보다 몇 배 더 귀엽다. 태어난 직후의 모습만 비교하면 거의 하늘과 땅 차이다. 이처럼 예쁘고 앙증맞은 강아지와 동의어인 '개새끼'가 사람의 입에서 거칠게 나오면 천하의 몹쓸 놈으로 전락한다. 사랑스러운 강아지에 대한 엄청난 모독인 셈이다.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개는 유순하고 사람을 잘 따른다. 주인에 대한 신뢰와 충성심은 그 어떤 동물보다 뛰어나다. 지구 생태계의 잔인한 포식자인 호모 사피엔스가 그나마 개를 곁에 두고 기른 까닭도 여기에 있다. 수많은 동물들이 인간에게 멸종당하고 먹잇감이 되었지만, 그 와중에 개는 인간에게 도움과 위안을 주는 소중한 존재로 사랑받아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에 포함되는 '개'는 더할 나위 없이 부정적이다. 개와 소리가 합쳐지면, 들을 가치조차 없는 '개소리'가 된다. 술잔을 주고받는다는 뜻의 '수작' 앞에 개가 붙으면, 엉뚱하고 쓸데없는 말이나 행동을 낮게 부르는 '개수작'이 된다. 맛있게 잘 차린 음식인 '차반'을 '개'가 형용하면, 개가 먹는 똥에서 막 돼먹은 사람으로 뜻이 확장된 '개차반'으로 불린다.
꿈에 돼지가 나타나면 길몽이라고 좋아한다. 여차하면 로또복권이라도 구입할 태세다. 그런데 꿈에 개가 나오면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는 애매한 해몽이 나온다. 심지어 개와 꿈이 합쳐지면 헛되고 쓸데없는 '개꿈'으로 치부된다.
정치권에서 흔히 언급되는 논평 중에 "정권의 주구가 되어 횡포를 부린다"는 표현이 있다. 이때 '주구'는 직역하면 '달리는 개'이지만, 통상 '물불 안 가리고 상대방을 무는 천하의 나쁜 놈'을 의미한다. 주인에게 충직하고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을 무는 법이 절대 없는 개가 유독 한국에서 개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수모를 겪고 있다.
이처럼 '개'가 들어가는 단어와 표현이 한결같이 부정적인 이유를 분석해보면,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이 개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세월이 변하면 의미도 달라진다. 개를 방치해서 기르거나 식용으로 사용했던 문화가 애완견, 반려견의 시대로 전환되고 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는 일상용어에 대해 조금만 더 세심한 관심을 기울인다면 개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도 크게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속담에는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그렇지만 동물을 소재로 한 속담 중에는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의미를 전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미련함의 대명사로 속담에 자주 등장하는 곰은 실제로는 매우 영리하고 준비성이 치밀하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한다"는 속담은 아무리 못나도 자기 자식은 좋게 보인다는 의미인데, 사실 고슴도치 새끼는 모든 동물 새끼 중에서 톱 5에 들 정도로 원래부터 예쁘다.
"개 발에 땀나게 뛴다"는 속담도 마찬가지다. 땀이 잘 나지 않는 개 발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열심히, 부지런히 움직인다는 뜻이다. 하지만 개는 발바닥에 땀샘이 있어서 오히려 땀이 잘 난다. 땀냄새를 뜻하는 '꼬순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로 개 발바닥의 땀은 유명하다.
안타깝게도 개와 관련된 우리 속담은 일상용어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안 좋은 경우에 사용된다.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개 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개 꼬리 삼 년 묵혀도 황모 못된다" 등이 대표적이다.
가장 안 좋은 표현은 "미친 개는 몽둥이가 약이다"라는 속담이다. 우리는 '미친개'나 '광견병' 같은 용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다. 광견병을 뜻하는 영어 병명은 레이비즈(rabies)다. 분노나 광기라는 뜻이 담겨 있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을 포함한 포유류 동물의 뇌에 염증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성 질병을 의미한다.
개로부터만 전염되는 병이 아니며, 설사 개한테 물리더라도 파상풍 위험이 있을지언정 레이비즈에 걸릴 확률은 거의 없다. 심한 경우, 뇌세포와 신경에 문제가 생기면 발작을 일으키거나 이상행동을 할 수 있는데, 이것을 미쳤다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한국에서는 2005년 이후 한 번도 발병되지 않았으며, 영어권 국가에서는 미친개를 특정하는 광견병이란 단어 자체가 없다.
'미친개'라는 표현이 말 그대로 미쳤다기보다는 미친 것처럼 막무가내로 나댄다는 의미로 이해해도 여전히 문제는 심각하다. 가장 안 좋은 해결방법이 개를 몽둥이로 때리거나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행동을 보이고 컨트롤이 안 되는 개에게는 지속적인 훈련과 보상을 통해 교정하는 것이 최상의 대응법이다.
영어권 국가들의 속담에서도 개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와 반대로 중립적이거나 긍정적인 사례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Every dog has his day"(모든 개는 자신만의 날을 가지고 있다), "Barking dogs seldom bite"(짖는 개는 거의 물지 않는다), "Let sleeping dogs lie"(잠자는 개를 가만히 두어라), "All are not thieves that dogs bark at"(개가 짖는다고 모두 도둑은 아니다) 등이 있다.
이 글을 다 읽고 나서도 여전히 개와 관련된 일상 표현과 속담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궁예 역을 맡은 김영철처럼 묵직하고 서늘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해줘야 할 것이다.
"지금 누가 개소리를 내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