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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Aug 06. 2020

친환경 재생에너지, 유럽 사례를 통해 본 성공의 조건

유럽 주요 국가의 에너지믹스 전략과 한국의 그린 뉴딜 정책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정부-기업-가정의 전력에너지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5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불을 발견하고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생태계를 지배했듯이, 21세기 현대 인류는 에너지원에 따른 전력생산 비중을 적절하게 조정하면서 지속 가능한 친환경 경제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지구 문명은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로 대표되는 화석에너지를 기반으로 유지되어 왔다. 풍부한 매장량과 저렴한 가격 덕분에 화석에너지에 대한 글로벌 의존도가 크게 증가했고, 그 결과 석유 수출을 무기로 한 중동 국가들의 경제적 헤게모니 역시 무시 못할 정도로 커졌다.


그러나 1970년대 심각한 오일 쇼크를 경험한 세계 주요 국가들은 안정적인 대체에너지를 찾기 위해 전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와 함께 환경파괴와 이상기후를 야기하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이 지목되면서, 최근에는 친환경 재생에너지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거세졌다.


유럽은 친환경 재생에너지를 발굴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앞서 있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오스트리아는 산림자원을 활용한 바이오매스를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방식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었다. 오스트리아의 면적이 한국의 80% 정도이고 두 나라 모두 국토의 50% 이상이 산악지형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훌륭한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   


다만 산업발전과 경제성장의 핵심 기제인 에너지 전력을 어떤 목표와 전략으로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에너지 정책은 단순히 환경보호라는 당위성만을 우선순위로 삼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고차방정식이자 냉철한 판단을 요구하는 백년지계이기 때문이다.


국가마다 다양한 에너지 정책 실시


유럽은 자국의 정치 환경과 전력 상황에 따라 매우 상이한 에너지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예컨대, 프랑스는 2015년 기준 원전 비중이 75%를 차지할 정도로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비중이 크다. 2025년까지 원전 비율을 50%로 축소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을 32%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국가 안보와 에너지 자급 차원에서 원자력 의존도는 여전히 높을 전망이다.


반면, 녹색당이 연립정부에 참여하여 강력한 환경보호 정책을 펼치고 있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략을 추진 중이다. 독일은 2022년까지 모든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독일의 에너지 비중은 석유, 석탄,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75%, 재생에너지 15%, 원자력 10% 수준이다. 1980년대부터 재생에너지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꾸준히 진행했고, 석탄 매장량이 풍부하며 원전 비중이 적은 편이다.


프랑스 파리 근교 노장슈르센에 위치한 원자력발전소


독일 뮌헨 근교 바이오에너지 마을에 설치되어 있는 3만 2천 개의 태양광 모듈


오스트리아는 유럽 국가 중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가장 높다. 전력 사용 현황을 살펴보면, 수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비중이 80%에 육박하며, 나머지 20%는 화력발전에서 얻는다. 1978년 오스트리아 첫 원자력발전소의 가동을 놓고 국민투표에서 부결(반대 50.47%, 찬성 49.53%)된 이후, 원전 사용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비엔나에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위치한 오스트리아가 정작 원자력과는 전혀 무관하게 된 것이다.   


영국은 천연가스 비중이 약 40%로 가장 높다. 재생에너지(풍력, 태양광, 바이오매스, 수력)가 30%, 원자력이 20%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영국의 재생에너지 활용전략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해상풍력을 이용한 에너지 공급이다. 터빈과 풍차를 비롯한 해상풍력 기자재 개발과 단지 설계, 유지보수 등에서 세계 최고의 전문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영국 남동부 브라이튼에 조성된 램피온 해상풍력단지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유럽의 부문별 전력 생산 비중은 재생에너지 30%, 원자력 25%, 천연가스 20%, 석탄 20%로 분포되어 있다(EU 통계청 자료). 재생에너지를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풍력(11%), 수력(9%), 바이오매스(6%), 태양에너지(4%) 순으로 나타났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가장 높은 가운데, 원자력과 화석에너지 의존도가 점차 감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친환경 재생에너지의 성공사례, 오스트리아


“몇천 톤이나 되는 목재가 이용되지도 않은 채 숲 속에서 썩어 없어지는데, 왜 힘들게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천연가스와 석유를 운반해와서 아파트를 난방하고 공장을 돌리고 있을까?”


오스트리아가 일찌감치 재생에너지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런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오스트리아는 세계적인 임업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풍부한 산림자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목재팰릿을 활용한 바이오매스 에너지를 지역 단위에서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비엔나는 세계 최고의 녹색도시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다채로운 숲과 공원이 존재한다. 비엔나 외곽으로 차를 타고 나가면, 드넓은 잔디언덕 위에 벌채한 목재들이 가지런히 놓인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국립산림연수원에서 양성한 산림 마이스터가 산림의 전체적인 자원량 관리, 즉 1년 동안 벌채할 수 있는 목재의 양을 조절하기 때문에, 부족함 없이 항상 평균량을 유지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목질 바이오매스 에너지의 핵심 재료는 목재팰릿(wood pellet)이다. 목재팰릿은 톱밥을 압축해 원통형으로 만든 6~8밀리미터 길이의 청정연료다. 목재를 압축하고 다양한 공정을 거쳐서 건조하고 다시 압축해서 엄격한 규격에 맞도록 제조한다. 이렇게 만든 팰릿을 전용보일러에서 연소시키면서 에너지를 생산하게 된다.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재생에너지 목질 바이오매스의 핵심 재료인 목재팰릿


작년 7월의 마지막 주말, 나는 오스트리아 제2의 도시인 그라츠를 방문했다.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 아름다운 도시는 '착한 바이오에너지의 도시'라는 애칭을 갖고 있기도 하다. 폐식용유를 활용한 바이오디젤을 차량 연료로 황용하여 저렴한 가격에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절반 이상으로 줄이는 효과를 보았다. 시 차원에서 폐식용유 수거와 재활용 홍보를 적극적으로 했고, 에코 서비스라는 사회적 기업이 운송을 책임지고 있다.


슐로츠베르크 언덕 위에 찍은 그라츠시의 전경. 배산임수의 아름다운 도시이자 수준 높은 바이오에너지 시티다.


너도나도 친환경 재생에너지에 주목하고 있는 지금, 오스트리아는 세계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이 가장 높을 정도로 다양한 친환경 에너지들을 활용하고 있다. 사양산업으로 치부되던 임업, 즉 목재산업이 화석연료에 기초한 기존 산업의 운영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만큼 뛰어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깨닫고 소규모 지역 단위에서 목재팰릿을 통한 에너지 자립에 성공했다. 폐식용유에서 바이오디젤을 추출한 그라츠의 도전정신 역시 오스트리아 재생에너지 산업을 빛나게 해주고 있다.


냉정하고 전략적인 에너지 믹스 정책 필요


2020년 7월 14일 우리 정부는 이른바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두 축으로 하는데, 그린 뉴딜은 '경제 기반의 친환경-저탄소 전환 가속화'라는 부제를 달았다. 구체적으로 신재생에너지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기 위해 2025년까지 총사업비 35조 8천억 원을 투자하여 일자리 20만 9천 개를 창출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만들었다.


환경파괴와 지구온난화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저탄소, 더 나아가 탄소제로의 에너지 사회를 목표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얼마나 전략적인 고민을 하느냐, 어떤 에너지믹스 전략을 채택하여 국가 이익과 인류 보편의 이상을 함께 이루어 나가느냐인 것이다. 국가 에너지 전략이야말로 뜨거운 가슴보다는 차가운 머리가 필요한 대표적인 분야다.


앞서 유럽 주요 국가의 에너지 정책을 살펴보았다. 친환경 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과 비중이 날로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이미 1980년대부터 환경보호를 위한 에너지 전환이 사회적 의제가 되었고 따라서 지금까지 태양광, 풍력, 수력, 바이오매스 등 다양한 세부영역에서 고효율 첨단기술을 개발해왔다.


이에 비해 한국은 치밀한 사전분석과 추진계획 없이 목표의 정당성만 믿고 전시성 행정을 추진하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목재팰릿을 활용한 바이오매스 사업이 대표적이다. 2009년부터 시행되어 2017년까지 850억 원의 국가예산이 투입되었지만, 공공기관용과 산업용 모두 현장에서 외면당하고 있다. 지역 소도시를 중심으로 차분하게 자발적으로 진행해야 하건만, 정부 주도의 정책 드라이브가 되려 사업을 표류하게 만들었다.


한국에서 보수와 진보 간 진영 대결 양상으로 번진 탈원전 문제에 대해서도 냉철한 접근이 필요하다. 에너지 비중을 결정하는 3대 핵심 기준은 안정적인 공급, 합리적인 비용, 독자적인 기술이다. 훌륭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재생에너지는 기준에 모두 미흡한 반면, 원자력 에너지는 기준을 모두 충족하고 있다. 프랑스가 에너지 자급 차원에서 원전 비중을 최소 50% 이상 유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친환경 재생에너지로의 성공적인 전환을 하기 위해서도 전략적인 에너지믹스가 필요하다. 특히 안정적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원자력이 있어야 날씨와 계절에 따라 발전량이 들쑥날쑥한 재생에너지도 자리를 잡고, ‘탄소배출 제로’라는 기후변화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 하물며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 보유국인 한국이 원전을 스스로 축소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국가경쟁력과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근본적으로는 경제학자 장하준이 <사다리 걷어차기>와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냉정하게 분석하고 있듯이, 선진국들은 과거에 보호무역주의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다른 국가들에게 신자유주의라는 게임의 법칙을 강요하고 있다. 자신들은 이산화탄소를 과도하게 배출하며 경제를 성장시켰어도, 추격자들에게는 탄소세를 부과하며 친환경 에너지를 통한 제품 생산을 강제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국가 에너지 비중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의 문제는 고귀한 이상과 냉정한 현실이 교차하는 난제임에 틀림없다. 에너지 자립이라는 거시적 전략목표 아래, 친환경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우리의 강점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정부와 전문가 집단의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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