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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Jun 21. 2020

뉴노멀 시대, 좌절 속 희망 찾는 유럽

유러피언들은 코로나19가 초래한 '새로운 일상'과 어떻게 공생하고 있나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한 지 1년이 지나간다. 새로운 유형의 호흡기 질환 정도로 여겨지던 코로나19는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WHO에 의해 역사상 세 번째로 팬데믹으로 선포되었다. 2020년 3월에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로 확산되면서 유럽 전역을 패닉 상태로 빠트렸다.  


세계에서 가장 안정된 정치 경제 시스템을 갖추었다고 평가받던 유럽 주요 국가들이 코로나19라는 호흡기 전염병에 추풍낙엽처럼 무너지는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감춰졌던 유럽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는 조롱도 쏟아졌다. 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위기상황이라는 코로나19 사태를 유럽인들과 함께 겪었다. 이 글은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유럽에서 내가 직접 체험한 경험과 성찰을 담고 있다.


유러피언들의 일상생활과 여가문화는 코로나19 이후 크게 바뀌었다. 아침에 회사에 출근하거나 등교를 하고, 동네를 산책하면서 장을 보기도 하고, 가끔 외식을 하고 주말에는 근교를 여행하는 일상의 당연한 모습들이 사실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코로나19가 초래한 일상의 새로운 기준, 즉 뉴노멀에 유럽 시민들은 어떻게 적응하고 극복하며 더 나아가 공생하고 있는지 지금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유럽 현지에서 살펴본 코로나19 사태의 진실

 

그동안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유럽 국가들에 대한 정보는 단편적인 뉴스 보도와 과도하게 일반적인 해설이 전부였다. 현지에서 각종 SNS로 전해지는 내용은 그 지역만의 소식으로 국한되었다. 구체적이면서도 종합적인 분석을 찾기란 힘들었다. 여기에 근대 이후 세계 질서를 주도하고 일종의 롤모델 역할을 자임하던 유럽 국가들이 전염병 확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휘청거리자 이에 따른 공포와 혼란이 더욱 심해졌다.    


기본적으로 유럽은 인종과 지역을 기준으로 크게 네 부류로 구분할 수 있다. 남서부 지역의 라틴계, 중북부 지역의 게르만계, 동부 지역의 슬라브계 그리고 영국을 중심으로 한 앵글로색슨계. 여기에 코로나19에 대한 대응방식과 인구구성 등을 함께 비교하면, 코로나19가 유럽 국가들에게 끼친 파급력을 보다 입체적으로 세밀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하고 치사율도 높게 나타난 국가들은 이탈리아와 스페인, 프랑스와 벨기에 등 남서부 라틴지역에 속한다. 이곳은 전통적으로 볼거리 먹을거리가 풍부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과도할 정도로 개인주의가 만연한 반면, 국가권력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공공의료 인프라가 부실하고 고령인구의 비중이 높다. 비쥬라 불리는 볼 키스가 상징하듯 스킨십 문화에 익숙하다.


이 모든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했을 때, 코로나19의 확산속도와 파급력이 어떠했을지는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일본 다음으로 고령화 비율이 높은 이탈리아는 북부 롬바르디아와 베네토 지역을 중심으로 병원 집단감염이 발생했고, 이후 확진자와 사망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3월 중순에 확진자 수가 4천 명을 넘어선 스페인은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이동제한과 비필수 사업장 출퇴근 금지를 실시했다.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관광지 베네치아 운하


라틴계 국가들의 전통적인 인사방식인 비쥬는 정상 간 만남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다음으로 코로나19 타격이 컸던 국가는 앵글로색슨계 영국과 게르만계 스웨덴이다. 인종과 지역이 상이한 이 두 나라의 공통점은 코로나19 초기대응 시 집단면역(herd immunity) 방식을 추진하면서 사회적 통제를 느슨하게 했다는 점이다. 대규모 검사장비와 방역체계를 미처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코로나19가 급속하게 확산되자 노약자와 기저질환자들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스웨덴식 집단면역의 성패를 둘러싸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나는 집단면역의 조건을 이해한다면 이 문제의 해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웨덴은 단위면적당 인구밀도(명/㎢)가 21명으로 세계 195위다. 영국은 255명으로 53위이며, 한국은 509명으로 23위다. 게다가 런던은 인구 9백만 명, 서울은 인구 1천만 명이 거주하는 메트로시티다. 스웨덴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인 스톡홀름의 인구는 1백만 명도 되지 않는다.


정리하자면, 국토면적이 넓은데 비해 인구밀도가 적고 상호이동도 빈번하지 않은 나라가 선진적인 의료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면 과도한 통제 없이 집단면역을 통해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다. 하지만 런던이나 서울 같이 인구가 밀집해 있는 거대도시에서 집단면역을 채택한다면 이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집단면역의 성공 조건을 갖추었다고 판단되는 스웨덴조차 초기에는 요양시설에서 많은 노약자들이 사망하는 비극을 겪어야 했다.  

  

반면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중북부 게르만계 국가들과 헝가리, 루마니아 등 동부 슬라브계 국가들은 초기의 충격을 빠르게 수습하고 국가 주도의 사회적 통제를 엄격하게 실시하여 피해를 최소화했다. 3월 중순부터 약국과 대형마트 등 생활 필수시설을 제외하고 모든 장소를 폐쇄하는 이른바 락다운(lockdown)에 돌입했다. 대중교통 이용 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오스트리아는 유럽 최초로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실시했다. 복면금지법이 있을 정도로 마스크 착용에 거부감이 있는 유럽에서 이를 강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든 시민이 착용할 만큼 마스크 유통이 잘 되고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마스크 구입 대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마스크를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을 신속하게 확보한 후, 대형마트에서 무상으로 배포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마스크 착용을 강제했다.


락다운을 완화하는 과정에서도 2주 단위로 단계적인 지침을 내리고, 확진 상황과 시민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여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차분하게 대응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3월 16일부터 두 달 동안 진행된 락다운이 단계적으로 완화되어, 이제 야외에서는 코로나19 이전과 같이 마스크 없는 활기찬 모습들로 회복되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니는 도나우 젠트룸(대형 쇼핑몰) 방문객들(좌)과 지하철 승객들(우)


일상으로 다가온 코로나 위협, 유럽인들의 대처방식


코로나19는 발병이 보고된 지 9개월 만에 사망자 100만 명을 넘어섰다. 초기의 급격한 확산세가 잠시 주춤한 듯하더니 여름휴가철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면서 다시 재유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조만간 북반구가 겨울을 맞이하고 계절성 독감이 창궐하면 코로나19의 기세가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한편에서는 빠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상반기 중에는 백신이 개발될 수 있을 거라는 낙관적인 예측이 제기된다.


어쨌든 2020년을 상징하는 단어가 코로나19라는 점은 분명하다. 훗날 내가 언제 어디서 코로나19를 겪었고 어떤 고통과 좌절을 경험했는지가 서로를 확인하는 대화의 핵심 주제가 될 것이다. 때로는 암울한 비극적 상황에서 뛰어난 예술혼이 발휘되기도 한다. 아마도 지금의 힘든 시기가 지나고 나면 인류는 보다 성숙하고 아름다운 문화예술 작품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코로나19가 확산일로에 있던 지난해 2월 말 서울을 떠나 비엔나에 왔다. 한국에 있는 가족 친지들이 무사하기를 기도하면서, 어찌 되었든 위기의 한국을 떠나온 것에 안도하며 유럽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1달 여가 흐른 뒤 상황은 역전되었다. 한국은 빠르게 진정되었지만, 유럽은 대혼란에 빠졌다. 한국에서 연락 온 분들마다 우리의 안부를 걱정했다. 전세기 편으로 유럽을 탈출해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교민들도 있었다.


2020년 봄에 유럽 시민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외부 출입이 통제되는 전례 없는 봉쇄 상황을 견뎌내야 했다. 영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에서는 마트에서 사재기가 발생하고 생활필수품이 동이 나는 등 불안이 지속되었다. 그나마 비엔나는 최악의 사태 속에서도 물류를 정상적으로 유지하여 대형마트에서 원하는 물품을 구매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락다운으로 경제적인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와 노동자들에게 적절한 지원방안을 마련했다. 자영업자를 비롯한 개인사업자는 직전 2년 중 원하는 연도의 소득금액을 선택하여 제출하면 최대 80%까지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월급을 받는 직장인들의 경우에는 정상적으로 지급될 금액을 코로나19 때문에 일부 못 받았다면 그만큼 정부가 대신 지급했다.      


이와 같은 재정지원이 가능한 것은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 주요 국가들이 사회민주주의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세와 각종 사회보험료 공제액이 전체 소득의 40%를 웃도는 강력한 조세정책을 통해 사회복지 재원을 충분히 마련해 놓았다. 특히 코로나19 같은 위기상황에는 국가가 주도하는 지원제도가 시민들에게 마치 보험금처럼 긴요하게 활용될 수 있다.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코로나19는 유럽의 일상을 변화시켰다. 직장은 재택근무가 확대되었고 화상회의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학교 역시 온라인 화상수업으로 발 빠르게 전환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비엔나 국제학교에서는 구글 미트(Google Meet)를 통해 교사와 학생이 수업을 진행했고, 중요 사안이 발생하면 교장이 학부모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명회를 개최하곤 했다.  


코로나19가 초래한 뉴노멀 시대에는 온라인을 통한 화상회의와 원격수업이 활발하게 활용될 것이다


뉴노멀 시대의 이른바 언택트(untact) 환경에서는 SNS를 활용한 온라인 소통과 원격 화상회의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는 구글과 시스코, 줌 같은 글로벌 회사들이 솔루션 시장을 장악하고 있지만, 첨단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 고기능 시스템이 속속 출시될 것이다. 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의 스마트 기술력과 문화적 감수성이 이 분야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충분히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름이 지나면서 유러피언들은 실내 밀집지역이나 대중교통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마스크 없이 돌아다니고 있다. 유럽인들에게 가장 큰 행복인 한 달 이상의 여름휴가를 맘 놓고 다녀온 후에는 재유행하는 게 아닌지 모두들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정부도 시민도 확진자 수를 적당히 유지하면서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글로벌 팬데믹 상황에서도 지켜야 할 가치


코로나19 이후에 과연 우리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 간 전염되는 호흡기 질병이 세계 대공황보다 더 큰 경제적 충격과 문화적 박탈을 가져올 수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코로나19를 완전히 극복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그 이상의 파괴력을 지닌 또 다른 전염병이 언제든 전 세계를 패닉에 빠트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코로나19가 가져온 새로운 풍경인 뉴노멀에 익숙해지고 공생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정부의 일사불란한 통제에 따르기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소중히 여기고, 스마트한 디지털 세상보다는 자연과 함께 하는 아날로그 일상에 익숙한 유러피언들은 코로나19를 계기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모색하게 될 것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비롯한 라틴계 국가들은 공공의료서비스 확충과 일상 방역에 지금보다 많은 예산을 투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전대미문의 비극 속에서 나는 한국과 유럽의 대응방식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한국은 발병 초기부터 확진자가 확인되면 구체적인 동선과 장소를 공개하고 조금이라도 접촉이 있는 사람들을 모두 조사하여 더 이상의 확산을 차단하고자 했다. 강력한 국가적 통제 속에서 프라이버시 보호는 실종되었다.


이에 비해 유럽, 구체적으로 현재 내가 거주하고 있는 오스트리아에서는 확진자에 대한 세부 정보를 공개하는 일이 거의 없다. 우리 아이가 다니고 있는 비엔나 국제학교는 학생 중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 즉시 학부모에게 이메일로 공지한다. 하지만 메일을 읽어보면, 몇 학년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정도만 알려주고 나머지 문단에서는 이 학생의 프라이버시가 철저하게 보호되어야 한다는 점을 신신당부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대혼란 속에서 패러독스 상황에 빠져 있다. 프라이버시를 과도하게 보호하려다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초래한 비상상황에서 프라이버시 보호 운운이 무슨 한가한 소리냐는 강력한 담론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국민의 생명보호라는 대의명분 때문에 개인에 대한 행정권력의 과도한 통제를 용인하다가 결국 조지 오웰이 소설 <1984>에서 경고한 디스토피아 감시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그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전쟁이 발발하고 언론보도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실종되는 게 진실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절체절명의 순간에 소중한 가치를 지키는 것은 힘들다. 코로나19가 일시적인 위협이 아니라 우리 곁에 뉴노멀로 자리 잡은 지금, 어떻게 하면 프라이버시 보호와 개인의 행복권 추구라는 가치를 지키면서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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