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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Jun 24. 2020

도나우강에서 맞이하는 일상의 행복

유럽 도시들은 강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학교도 직장도 모두 서울에서 다녔다. 그렇게 40여 년을 서울에서만 보내다가 유럽에서 2년 여 거주했고, 서울과 지방을 오고 가며 직장생활을 하기도 했다. 서울을 떠나서 바라보니 그동안 나에게 당연하게 보였던 모습들이 낯설어지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거대도시 서울 한복판을 유유히 흐르고 있는 한강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에게 한강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같은 존재였다. 한강변 럭셔리 고층아파트에 사는 주민이나 88 고속도로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은 매일 무심하게 바라보겠지만,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편하게 거닐고 휴식을 취하기에는 불편한 존재였다. 간혹 고수부지에 놀러 간 날이면 먼발치로 보이는 한강을 바라보며 워낙 강폭이 넓고 물이 깊으니 가까이 접근할 수 없겠다고 이해했다.


비엔나에 살면서 나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을 꼽으라면, 도나우강에 발을 담그고 물놀이를 하거나 강가 산책길을 거닐던 때가 떠오른다. 흐르는 강물을 바로 앞에 두고 식사를 하던 추억과 시원한 강바람 맞으며 4인용 요트를 타고 물줄기를 가르던 시간이 기억에 맴돈다. 도나우강에는 고층아파트가 없었고, 거대한 강변 고속도로도 존재하지 않았다. 언제든 걸어서 또는 자전거나 트램을 타고 방문할 수 있는 친근한 이웃이었다.   


비엔나에서 도나우강을 바라보며 느낀 경이로움은 유럽의 다른 도시에서도 경험할 수 있었다. 도시를 흐르는 강은 시민들의 편안한 휴식처이자 자연생태계였다. 나의 체험을 바탕으로 유럽의 주요 도시들이 강을 어떻게 활용하고 보존하는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다.  


강과 함께 성장하고 발전한 유럽 도시


지금으로부터 7천 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인류 문명이 발원되었다. '두 강 사이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 '메소포타미아'가 의미하듯,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었다고 밝혀진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티크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배경으로 발전했다. 이후 약 2천 년의 시차를 두고 발생한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 유역에서 탄생했고, 인더스 문명과 황하 문명은 아예 강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이처럼 초기 인류가 공동체를 형성하고 정치와 종교를 발생시킨 지역은 어디도 예외 없이 거대한 강과 비옥한 땅을 기반으로 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이름난 도시, 살기 좋고 경제가 풍요로운 도시에는 대부분 강이 흐르고 있다. 특히 유럽은 강과 함께 도시가 성장하고 발전했다. 강은 도시의 상징이기도 했다.


런던 하면 템즈강, 파리 하면 센강이 떠오른다. 독일의 눈부신 경제성장은 라인강의 기적으로 불리고, 암스테르담은 도시를 면면히 흐르는 암스텔강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벨기에 브뤼헤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운하도시로 손꼽힌다. 동유럽 도시들도 예외는 아니다. 체코 프라하는 블라타강과 함께 존재가 더욱 빛난다. 헝가리 부다페스트는 다뉴브강의 진주라고 불릴 정도로 강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돌이켜보면, 런던이나 파리에서 대형 유람선을 타고 강 주위를 둘러보았던 경험보다 암스테르담과 브뤼헤에서 아담한 배를 타고 운하를 따라 도시 관광을 하던 추억이 더 소중하게 남아있다. 강의 좌우에 늘어선 고풍스러운 건물들, 간절한 소망 열쇠로 가득 채워진 석조 다리, 자유분방한 모습으로 강가 언덕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민들. 찰나의 순간까지도 아련한 기억으로 저장되어 있다. 


프랑스 파리를 상징하는 센강


유럽 서북부의 베네치아로 불리는 벨기에 브뤼헤 운하 트립 


그러나 개인적으로 평가하자면, 유럽 도시들을 빛나게 해주는 아름다운 강 중에서 단연 백미는 도나우강이다. 영어로 다뉴브강이라고 불리는 도나우강은 독일 남부에서 시작하여 루마니아 동쪽 해안을 통해 흑해로 나가는 길이 2850킬로미터의 거대한 강이다(참고로 유럽에서 가장 긴 강은 러시아의 볼가강으로 길이가 무려 3700킬로미터다).


도나우강의 긴 여정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오스트리아 북부의 뒤른슈타인과 크렘스 그리고 비엔나와 부타페스트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지난여름에 뒤른슈타인의 아름다운 마을을 거닐다가 언덕 위 고성에서 내려다본 도나우강의 황홀한 모습을 잊지 못한다. 어느 화창한 계절에 적당한 유속과 깊이를 유지하는 도나우강과 강 주위의 동화 같은 풍경을 함께 바라보게 된다면, 훗날 당신은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알프스 북부 슈바르츠발트에서 발원하여 유럽 중동부 9개 국가를 거쳐 흑해에 도달하는 도나우강


비엔나에서 도나우강의 매력은 그 자체의 자연미와 함께 시민들의 여유로운 이용을 통해 더욱 빛을 발한다. 스트랜드 카페를 비롯한 도나우 강변의 유명 식당들은 멋진 풍광 속에서 맛있는 해산물과 립 요리를 제공한다. 나는 어스름한 저녁에 강가 카페에 앉아 옅은 붉은빛을 띤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아인슈패너라 불리는 비엔나커피를 마시던 순간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비에니즈에게 도나우강은 먹고 마시는 즐거움의 배경이자 직접 물살을 가르고 온몸을 담그는 수상스포츠의 공간이기도 하다. 강변 식당에서 직접 다양한 종류의 배를 대여해주기도 하고, 요트 강습을 하기도 한다. 한여름에는 물살 잔잔한 강가를 중심으로 소박한 규모의 강가 수영장이 오픈한다. 햇살 좋고 바람이 적당히 부는 날, 도나우강에는 전동배와 요트, 카약 그리고 수영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도나우강을 바로 앞에서 바라보며 식사를 하고 수상스포츠를 즐기는 비엔나 시민들


지난여름, 우리 가족은 비엔나 인터내셔널 시티(VIC) 바로 앞에 있는 도나우강을 자주 놀러 갔다. 코파비치라고 불리는 강가 물놀이 시설에 가기 위해서다. 그곳에는 비치파라솔과 인공으로 조성한 모래사장이 있고, 누구나 수영복을 입고 강물에 뛰어들어 수영을 했다. 우리는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강아지는 열심히 모래 파기 놀이를 하며 즐거운 여름 한나절을 보냈다.  


여름에만 도나우강에 오픈하는 코파비치(좌)와 이곳에 만들어진 모래사장에서 열심히 놀고 있는 우리 강아지(우)

  

도시의 상징이자 친근한 휴식처로 사랑받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도시들에는 도심을 흐르는 유려한 강이 있다. 시민들이 강과 함께 경험하는 일상의 희로애락은 어떤 관점에서 강을 바라보고 무엇을 중심으로 강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관리와 통제의 관점에서 접근 자체가 불편한 강이 있는가 하면, 개방과 공유의 관점에서 친근한 행복으로 담아지는 강이 있다.


내가 비엔나에 살면서 경험한 도나우강은 트램이나 전철역에 내려서 5분 정도만 걸으면 도착하는 곳에 존재했다. 그곳에는 산책을 하거나 식사를 하거나 배를 타거나 그저 앉아서 쉬거나 하는 시민들로 항상 북적였다. 템즈강이나 센강에도 유람선 중심의 수상관광과 함께, 시민들이 강가에서 먹고 마시고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공간들이 마련되어 있다.


많은 역사기록물들을 보면, 중세 시대와 근대 초기까지도 유럽의 주요 도시들이 하수시설을 갖추지 못해 매우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지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산업혁명 후 급속한 도시화로 인해 심각한 환경오염을 겪어야 했다. 이런 힘든 시기를 겪는 과정에서 유러피언들은 자연의 소중함과 관리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특히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유럽 중북부 게르만 국가들은 시민들의 자유로운 이용과 자연환경의 보존이라는 어찌 보면 상반된 가치를 함께 유지하고자 심혈을 기울였다. 그 결과 나를 포함해서 도나우강을 찾는 비엔나 시민들은 맑은 강물에 손과 발을 담그기도 하고, 강가를 노니는 고니와 청둥오리에게 빵을 주기도 한다.

    

도나우강에 가면 맑고 청량한 수질에 놀라고, 언제나 반갑게 다가오는 고니에 한번 더 놀란다


발상의 전환으로 도시 강을 살리는 방법


풍수지리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우리 조상들은 배산임수를 갖춘 천혜의 장소로 한양, 지금의 서울을 택하고 한 국가의 수도로 정했다. 한강이 서울의 존재 근거이자 도시의 상징인 셈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에게 한강은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제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이 우선이 아닌, 차량이 중심이 된 도로 환경에서 걷거나 자전거를 탄 시민들이 한강에 손쉽게 접근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강변을 따라 적당한 간격을 두고 고수부지가 마련되어 있지만, 시민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과 자동차를 위한 주차공간의 비중이 거의 비슷하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힘들게 한강에 도착해도 강의 풍경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과도한 인공미보다 친자연적인 구조를 갖춘 식당이나 카페를 찾기가 매우 힘들다는 사실이다. 어찌 보면 강이라는 소중한 자연환경을 잘 보존하기 위해 엄격한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질의 청량함이나 물새와 어족의 풍부함 모두 한강보다 도나우강이 월등히 우수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발상의 전환이다. 강은 시민들의 소중한 쉼터이자 추억의 공간이다. 대다수 시민들이 한강에서 일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먹을거리 볼거리 즐길거리 충만한 장소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강에 누구나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구름다리 인도와 자전거길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에서 한강 공원을 오고 가는 청정 미니버스를 운행하고 주차공간은 최소한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   


한강에 가면 유려하게 흐르는 강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야외 테라스 카페와 서울 시민뿐만 아니라 외국 관광객들도 반드시 방문하고 싶은 핫플레이스 맛집을 곳곳에서 발견하고 싶다.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산책하고, 앉아서 이야기 나누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일상의 행복을 만끽하는 장소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비단 한강뿐이랴. 우리는 낙동강, 영산강, 금강 등 아름다운 지역 강들을 보유하고 있다. 토목건설을 위한 강 유역 개발이 아니라 시민들이 주인이 된, 시민들이 언제든 친근하게 찾아갈 수 있는 그런 강으로 기억되길 희망한다. 오늘도 도나우강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선율에 맞춰 아름답고 푸르게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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