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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Sep 03. 2020

도로와 건축으로 가치를 창조하는 유럽의 도시 풍경

전통과 첨단 건물, 트램과 자전거가 어우러진 유럽 도시의 매력 탐구

낯선 도시를 방문했을 때 당신은 가장 먼저 무엇이 보이는가? 아마도 사람들의 시선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모습은 도시를 구성하는 거리와 건물 풍경이 아닐까? 도로를 오고 가는 차들과 그 옆을 거니는 시민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그 도시만의 색깔을 상상한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다양한 건축물을 바라보며 우리는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읽는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유럽 도시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바르셀로나와 아테네를 꼽는다. 그 어떤 유럽 도시보다 화려한 역사유적을 간직하고 있고, 시대를 초월한 건축미로 보는 이를 황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건축은 회화와 함께 당대의 미술사조를 대표하는 걸작들을 후대에 남겼는데, 특히 유럽의 도시에서 축복 같은 선물을 만날 수 있다.


그 어떤 환상을 갖고 방문하든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파리는 에펠탑과 개선문, 루브르 박물관과 노트르담 대성당 등 아름다운 건축물과 함께 시원하게 뚫린 방사형 도로로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문화예술의 도시 비엔나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것은 도심 순환도로 링 슈트라세와 그 주위에 건설된 아기자기한 건물들이다. 고풍스러운 성과 다리, 돌길과 트램이 조화를 이룬 프라하는 또 어떠한가.


자 그럼 도로와 건축을 통해 놀라운 가치를 만들어낸, 마법 같은 유럽 도시들로 여행을 떠나 보자.      


19세기 도시 대개조 사업으로 재탄생한 파리


1862년 발간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은 지금도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으로 각색되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바로 그 <레미제라블>의 배경이 된 1850~60년대 프랑스 파리는 좁은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친 노동자와 시민들의 저항이 연일 계속되고 제대로 된 하수시설이 없어서 시궁창에서 악취가 풍기는, 혼돈스럽고 불결한 도시였다.


1848년 2월 혁명으로 수립된 제2공화국의 대통령이자 1852년 친위쿠데타로 세운 제2제정의 황제인 나폴레옹 3세 집권 시절, 파리는 대대적인 도시 정비작업에 돌입했다. 파리 시장 유젠 오스만의 진두지휘 아래, 개선문과 콩코드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형 도로를 설계하고 도시를 관통하는 50개 대로를 만들었다. 도로 지하에는 600킬로미터에 걸친 하수도망을 설치하여 도시 위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파리가 혁신적인 개조작업을 벌인 20여 년 동안, 도시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었고 빈민들은 도시 외곽으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레미제라블>에 등장하는 바리케이드를 친 도심 게릴라 전투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혁명을 막고자 하는 숨은 의도와 모두를 힘들게 한 장기간의 공사에도 불구하고, 결국 파리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했고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로 사랑받고 있다.

      

19세기 중후반에 진행된 파리 대개조 사업 결과,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개의 방사형 도로가 만들어졌다.

  

파리를 파리답게 만든 5층짜리 건물과 1층 노천카페 역시 파리 대개조 작업의 결과다.


파리의 도시 가치를 더욱 빛내주는 것은 전통적인 예술미와 현대적인 파격미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건축이다. 한편에는 중세 고딕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노트르담 대성장의 웅장함과 17세기 바로크 양식의 결정체 베르사유 궁정의 화려함이 빛을 발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는 324미터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엄청난 논란 속에도 파리의 랜드마크가 된 에펠탑과 현대적인 디자인 감각으로 루브르 박물관을 새롭게 탄생시킨 유리 피라미드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나는 벨기에 브뤼셀에 거주하던 2013년 파리를 자주 방문했다. 서울과 브뤼셀 직항 편이 없는 까닭에 우리를 찾아오는 지인이나 친척이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내리면 차로 데리고 가고 데려다주고 했다. 특히 환송 길에는 간 김에 아예 며칠 더 머물면서 파리를 혼자 여행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파리의 거리와 공원을 모두 경험하게 되었다.


도심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눈길이 가는 노천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는 순간, 나는 파리의 매력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정성스러운 수목 관리를 통해 샹젤리제 거리에 건강한 모습으로 도열해 있는 플라타너스 나무를 바라보며 도시와 자연의 조화를 감상하기도 했다. 한걸음 두걸음 을 내딛을 때마다 파리는 나에게 자신만의 매력을 속삭이듯 전해주었다.


아름답고 독창적인 바르셀로나 외관의 비밀


파리 못지않게 건축과 도로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도시가 바르셀로나다. 이베리아 반도의 북동쪽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광역 자치주 카탈루냐의 주도다. 자신만의 언어와 국기를 가진 카탈루냐 인들은 정치적으로 스페인과의 분리독립운동을 펼치고 있고, 문화적으로 개방적이면서 세련된 분위기 속에서 천재적인 예술가와 건축가들을 탄생시켰다.


무엇보다도 바르셀로나의 도시 외관을 경이롭게 만든 사람이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다. 평생의 후원자 구엘의 의뢰로 디자인한 구엘공원과 카사 바트요, 카사 밀라 등 도시 건축물 그리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까지, '가우디의 바르셀로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거리를 걷노라면 곳곳에서 그의 걸작을 만날 수 있다.


가우디의 건축양식은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동심과 자연을 소재로 한 파격적인 표현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곡선과 타원, 총천연색 타일과 기괴하게 휘어진 철제 난간은 그의 작품을 독특하게 만들어주는 소재다. 가우디의 건축물들을 보노라면, 단지 새롭다는 수준을 뛰어넘어 충격적일 정도로 참신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내가 바르셀로나를 여행한 것은 2014년 늦여름 무렵이었다. 1926년 사망한 가우디의 사후 100주년에 맞춰 완공할 계획으로 지금도 공사 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앞에는 표를 사서 입장하려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중세 고딕 양식의 웅장한 성당 정면에 작지만 강렬하게 매달려 있는, 어쩌면 신성모독일 수도 있는 처연한 예수의 모습을 본 순간 나는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우디의 대표적인 작품인 구엘공원. 그 너머로 바르셀로나 시내와 지중해가 보인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외관도 충격적이지만, 내부의 예수 십자가상은 처연함 그 자체다.


바르셀로나 도시 형태가 천재 건축가 가우디에 의해 빛나고 있다면, 도로 풍경을 상징하는 것은 라 람블라(La Rambla)로 불리는 대로다. 카탈루냐 광장에서 콜럼버스 동상이 서 있는 바닷가로 이어지는 1.2킬로미터의 가로수길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항상 북적인다. 하몽이 주렁주렁 매달린 전통 재래시장 보케리아에서 컵 과일을 사 들고 길거리 예술가들의 다양한 퍼포먼스를 감상하며 걷다 보면, 거리의 넘치는 활력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여진다.     


파리가 유젠 오스만 시장 주도로 도시를 정비했다면, 바르셀로나는 일데폰스 세르다라는 건축가의 기획 하에 신시가지 확장 계획을 실시했다. 무분별한 도시 확장을 막기 위해 네모난(정확하게 팔각형) 블록(113.3 ×113.3미터)이 횡과 열을 맞춰 건설되었다. 블록 안쪽은 도넛처럼 비워 놓고 공원이나 주차공간으로 활용했다. '카탈란 정신'을 이어받은 바르셀로나 특유의 독창적인 도시구조가 완성된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바르셀로나의 건물과 거리 풍경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유럽의 명품도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비엔나 역시 도로와 건축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대표적인 유럽 도시 중 하나다. 13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을 명실상부하게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중심 도시답게 비엔나에는 바로크 양식의 벨베데레 궁전과 쇤부른 궁전, 성 슈테판 대성당과 오페라하우스 등 중세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멋진 건물들이 많다.


오늘날의 비엔나 모습은 19세기 중반 도시 외곽 성벽을 허물고 건설한 5.2킬로미터의 순환도로 링 슈트라세를 통해 완성되었다. 파리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건물들이 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퍼져 있다면, 비엔나를 빛내주는 기념비적인 건축물들은 링 슈트라세를 따라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시청사와 국회의사당, 슈타트파크 등이 모두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지시로 1858년에 착공해 1865년에 완공한 비엔나 도시순환도로 링 슈트라세


도나우 강가를 천천히 산책하는 것과 링 슈트라세를 따라 트램을 타고 돌면서 도시 풍경을 감상하는 것. 내가 비엔나에서 가장 즐겁게 보내는 시간이다. 잠시 가는 길을 멈추고 오페라하우스의 야경을 감상하거나 20세기 아르누보의 거장 오토 바그너가 설계한 우편저축은행 같은 현대 건축물을 보게 되면 기쁨은 배가 된다.  


비엔나 도심에서는 편도 2차선 도로를 따라 시속 50킬로미터 정도로 서행하는 차들과 그 옆을 함께 지나가는 트램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많은 라이드족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시내의 카페와 음식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바로 앞 인도에 야외 테이블을 설치하여 지나가는 시민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곤 한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아름다운 건축물이 보행자 중심으로 건설된 도로와 연계되어 상상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유럽의 명품도시들은 거주하고 있는 시민과 방문한 관광객 모두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한다. 19세기 후반 도시의 성곽을 허물고 전면적인 재정비를 하는 과정에서 도로와 건물이 시민 친화적으로 탈바꿈했다는 역사적 배경도 유사하다.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효율성 중심으로 설계된 한국의 대도시들은 교통 흐름을 원활하게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운영 원칙이 되었다. 하지만 인구 1~2백만 명의 지역 도시가 추진력 갖춘 행정가와 탁월한 능력의 건축가를 만난다면,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한국형 명품도시의 탄생을 기대할 수도 있다. 과연 언제쯤 우리는 사람 중심의 걷기 편한 도로와 주위에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눈길을 끄는 아름다운 도시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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