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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Jun 30. 2020

클림트와 BTS, 세기말 문화예술의 꽃을 피우다(상)

100년의 간격을 두고 세계를 홀린 오스트리아와 한국의 천재 아티스트들

예전에 엠넷에서 방영했던 프로그램 중에 <비틀즈 코드>라는 예능 오락물이 있었다. 서로 다른 두 게스트의 운명 반복 평행이론을 억지로 주장하면서 간혹 절묘하게 일치하면 소름 돋는 리액션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사실 비틀즈 멤버를 패러디한 진행자들이 다빈치코드의 비밀을 파헤친다며 두 단어를 한데 엮어 만든 프로그램 제목부터 엉뚱하기 그지없다.


19세기 말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유럽의 문화예술이 활짝 꽃을 피웠다. 그리고 그 중심에 비엔나가 낳은 천재화가 구스타프 클림트가 있다.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20세기 말 한국에서는 대중문화의 글로벌 트렌드를 선도하는 매력적인 아티스트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7인조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부터 여러분에게 들려드릴 이야기는 100년의 간격을 두고 오스트리아와 한국에 등장한 문화예술의 힘 그리고 이를 대표하는 클림트와 BTS의 흥미진진하면서도 무시무시한(?) 평행이론이다. 엠넷의 <비틀즈 코드>가 황당하고 웃긴 주장으로 인기를 모았다면, 이 글은 알면 알수록 감탄을 자아낼 수밖에 없는 브런치판 <비틀즈 코드>다.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한 세기말 비엔나


19세기 말, 즉 189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약 20년 동안 비엔나는 구시대의 상징 합스부르크 왕가의 급격한 쇠락과 세기말 음울한 시대 분위기 그리고 프랑스혁명 이후 유럽 대륙을 휘몰아치고 있는 급격한 변화에의 열망이 뒤섞여 있었다. 보수와 진보, 반동과 개혁, 전통과 근대의 가치가 충돌하면서 혼돈과 퇴폐, 희망과 생기가 가득했다.


이러한 사회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유럽 문화예술의 중심이었던 비엔나에는 음악, 미술, 건축, 문학, 심리학, 철학 등 각 분야의 걸출한 인재들이 당대를 풍미했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활동영역을 뛰어넘어 카페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서로에게 자극을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비엔나를 음악의 도시라고 기억하는 이유는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등 18세기부터 19세기 초중반까지 활약했던 천재 음악가들 때문이다. 그러나 19세기 말 비엔나에는 그에 못지않게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음악가들이 등장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구스타프 말러다. 그는 후기 낭만주의의 화려한 구성을 갖춘 9개의 교향곡과 다수의 가곡을 완성했으며 지휘자로서 탁월한 해석을 선보였다. 백여 년이 지난 지금, 말러의 곡들은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클래식 레퍼토리가 되었고, 탄생 160주년을 맞이하여 말러의 음악성을 재조명하는 열풍이 불고 있다.


말러의 작품 중에서 개인적으로 큰 감명을 받은 곡은 <교향곡 5번 올림 C단조>와 연가곡 <대지의 노래>다. <교향곡 5번>은 말러가 '영혼을 담아', '진심 어린 감정으로' 같은 악상 지시를 적어 놓았을 만큼 뜨거운 사랑의 감정을 표현한 곡이다. 서사적 연가곡집인 <대지의 노래>는 이태백의 시를 모티브로 한 말년의 걸작이다. 말러는 이 곡이 연주되는 것을 듣지 못하고 1911년 세상을 떠났다.  


탄생 160주년을 맞아 재조명 열풍이 불고 있는 구스타프 말러


말러와 함께 낭만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또 한 명의 위대한 지휘자이자 작곡가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다. 그는 교향시와 오페라 분야에서 창의적이면서도 화려한 곡들을 많이 만들었다. 강인한 캐릭터를 지닌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로맨틱 코미디 오페라 <장미의 기사>와 '바그너의 후계자'라는 칭송을 받은 <살로메> 그리고 23대의 현악기를 위한 현악합주곡 <메타모르포젠> 등이 대표작이다.


안톤 부르크너와 아널드 쇤베르크 역시 세기말 비엔나를 빛낸 음악가들이다. 부르크너는 오르간 연주자이자 작곡가로서 당대 교회음악의 대가로 인정받았다. 쇤베르크는 선율과 화성의 기본 문법이라 할 수 있는 조성(tonality)을 깨트린 무조음악을 추구하며 12음기법을 창시하여 20세기 음악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클림트, 실레, 코코슈가 : 세기말 비엔나의 천재 미술가들


사실 세기말 비엔나 문화예술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분야는 음악이 아닌 미술이었다. 당시 '빈 미술 아카데미'로 대표되는 구시대의 권위주의적 아카데미즘에 반발하여 이른바 '빈 분리파'(정확한 명칭은 '오스트리아 조형미술가 연맹')가 만들어졌고 1897년 구스타프 클림트를 초대 회장으로 추대했다. 클림트를 중심으로 젊고 패기만만한 미술가, 건축가, 공예가들이 자신의 재능을 자유롭게 펼치게 된 것이다.


먼저 세기말을 대표하는 화가 클림트의 작품세계를 살펴보자. 클림트는 기존의 회화 문법을 무시한 채, 평면적인 묘사와 화려한 금박 장식을 통해 몽환적이고 퇴폐적인 시대 분위기를 반영했다. <키스>와 <유디트>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의 작품세계는 지금도 많은 미술애호가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벨베데레 궁전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


다음으로 주목받는 작가는 클림트와 함께 표현주의 화풍을 이끈 에곤 실레다. 자화상과 빈민가 여자아이들 대상의 초기 그림에서 영혼과 종교를 주제로 한 중기 작품으로 넘어가면서 그의 명성은 클림트를 뛰어넘기 시작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숨겨진 욕망, 생존을 위한 고통스러운 투쟁 등을 묘사한 그의 회화를 보는 내내 나는 시각적인 충격 속에서 인간의 실존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오스카 코코슈가는 초상화의 새로운 차원을 개척했다.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을 미술에 구현하여 겉으로 드러난 밝은 모습이 아닌 영혼의 어두운 그림자를 묘사했고, 얼굴뿐만 아니라 손을 섬세하게 묘사했으며 2인 초상화를 통해 인물이 아닌 관계를 표현하려 했다.


28세에 요절한 천재화가 에곤 실레의 대표작 <가족>


오스카 코코슈가의 대표작 <바람의 신부> : 자신과 알마 말러와의 사랑을 격정적으로 표현했다.

 

100년 만에 만난 모던 빈과 한류 서울


19세기 말 비엔나는 200만 명 이상의 시민이 거주하던 유럽 최대의 도시이자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다(2020년 현재 비엔나 인구는 약 190만 명이다). 귀족 중심의 문화에서 재력 있는 시민들이 주도하는 신흥 상류사회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었다. 이른바 '모던 빈(Wiener Moderne)'이라 불리던 문화예술과 학문의 황금기였다. 


이 시기 비엔나에는 음악과 미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걸출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했다. 청동이 부식된 초록색을 시그니처로 사용하여 비엔나의 대표적인 건축들을 설계한 당대 최고의 조형예술가 오토 바그너와, '가장 아름다운 것은 기능에 충실한 것이다'라는 모토로 세기말 건축과 문학 분야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아돌프 로스는 건축 분야를 대표한다.


정신분석학을 통해 인간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한 심리학계의 거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일상 언어를 논리적으로 분석한 <논리철학 논고>를 발간하여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철학자로 꼽히는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역시 세기말 비엔나가 배출한 탁월한 학자다. 이들은 앞서 언급한 문화예술인들과 밀접하게 교류하며 그들의 작품세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1899년 아돌프 로스가 설계한 <카페 무제움>은 세기말 비엔나를 빛낸 문화예술계 아티스트들의 아지트였다.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인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무렵, 유럽을 대표하는 도시 비엔나는 합스부르크 왕가로 대표되는 구시대 질서와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는 문화적 열망이 충돌하면서 혼돈과 희망이 교차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왕실과 귀족 중심의 후원 시스템이 쇠락하고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이끄는 시민사회의 정치 경제적 파워가 강해지면서, 문화예술의 자율성이 높아졌다.  


바로 그 시기 비엔나를 중심으로 문화예술과 학문 분야에서 당대를 주름잡는 그리고 지금까지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천재 예술가와 학자들이 대거 등장했다. 그들은 비엔나 링 슈트라세 인근에 속속 문을 연 카페에서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영향을 주고받았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장르를 초월하여 아이디어를 얻고 융합하기도 하는 놀라운 현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가치와 문화가 충돌하는 세기말 풍경을 바탕으로 전대미문의 문화예술 전성기를 구가하는 또 하나의 극적인 사례가 백여 년 만에 대한민국 서울에서 다시 등장했다. K팝과 온라인게임, 드라마와 영화, 웹툰과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대중문화 분야에서 글로벌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는 한류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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