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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Jul 30. 2020

너와 나의 연결고리~ 뮤지컬로 서로를 확인하다

합스부르크와 조선, 뮤지컬로 그려낸 두 나라 마지막 왕가의 비운

유럽에 사는 동안, 나는 지난 40여 년 살아온 한국과 현재 살고 있는 유럽의 연결고리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항상 호기심 어린 눈으로 주위를 관찰해왔다. 한국과 다른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제도 속에서 우리에게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 줄 만한 주제를 찾고자 노력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오스트리아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격변의 시기를 보냈다. 오스트리아는 한때 유럽을 지배하던 합스부르크 왕가가 쇠락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수모까지 겪어야 했고, 한국은 500여 년 지속되어온 조선왕조가 몰락하고 대한제국을 거쳐 일본에게 식민지배를 당하는 치욕을 당해야 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문화예술적으로 두 나라가 상당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서로를 알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왔다는 점이다. 지금부터 여러분에게 들려드릴 이야기는 대중문화의 꽃이라 불리는 뮤지컬 장르에서 한국과 오스트리아가 어떤 스토리로 서로를 확인하며 이해해 왔는지에 대한 나만의 흥미로운 관찰기다.     


국내 티켓 점유율 1위를 차지한 비엔나 뮤지컬 


일반적으로 뮤지컬은 국내 창작물과 외국 오리지널/라이선스 작품으로 구분된다. 특히 외국에서 흥행을 거둔 작품의 판권을 구입하여 국내 연출진과 배우들이 새롭게 각색한 라이선스 뮤지컬은 높은 성공확률과 소재 확장성 덕분에 뮤지컬계의 블루칩으로 통한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 동안 티켓 판매 점유율 기준 랭킹을 살펴보면(인터파크 기준),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인 <레베카>와 <엘리자벳> 그리고 <모차르트!>가 최상위권에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세 작품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비엔나에서 오리지널이 만들어지고 첫 공연을 한 오스트리아 뮤지컬이라는 사실이다.


1992년 <엘리자벳>이 시어터 안 데어 빈(Theater an der Wien)에서 초연을 했다. 같은 장소에서 1999년에는 <모차르트!>가 첫 선을 보였다. 그리고 2006년 <레베카>가 라이문트 시어터(Reimundtheater)에서 처음으로 관객을 만났다. 그리고 이 세 작품 모두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Sylvester Levay)와 극작가 미하엘 쿤제(Michael Kunze)의 합작품이다.


2017년 국내 티켓 판매 전체 1위를 차지한 <레베카>는 2006년 9월 라이문트 시어터 초연 이후 3년 동안 전석 매진을 기록한 비엔나 최고의 히트 뮤지컬이다. 그 여세를 몰아 2013년 1월 LG아트센터에서 라이선스 공연을 시작한 <레베카>는 비평가들의 찬사와 대중적인 인기를 동시에 얻으며 국내 뮤지컬 팬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원작은 영국 소설가 겸 극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가 1938년에 출간한 소설 <레베카>이고, 1940년 앨프리드 히치콕이 같은 제목의 영화로 제작하여 그다음 해 아카데미 작품상과 촬영상을 수상했다. 죽은 레베카가 마치 살아 숨 쉬고 있는 것 같은 맨덜리 저택을 배경으로, 그로테스크한 무대 연출과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는 뮤지컬 넘버가 돋보이는 <레베카>의 인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뮤지컬 <레베카>는 2013년 국내 초연 이후 지금까지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또 하나의 오스트리아 출신 히트 뮤지컬은 2020년 7월 현재 티켓 판매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는 <모차르트!>다. 1999년 10월 비엔나에서 초연을 한 <모차르트!>는 독일, 스웨덴, 헝가리, 일본 등을 거쳐 2010년 1월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국 관객들과 처음 만났다. 특히 올해에는 국내 초연 10주년을 맞이하여 강렬한 임팩트를 주는 화려한 무대로 팬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밀로스 포만 감독이 1985년에 만든 영화 <아마데우스>가 살리에리의 시각에서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시기하고 감탄하는 장면을 절묘하게 그려냈다면, 뮤지컬 <모차르트!>는 어린 볼프강과 성인이 된 모차르트를 이야기의 중심에 두고 아버지와 대주교 등 주위 사람들과의 인간적인 갈등과 파괴적인 음악 천재성을 중독성 강한 곡들로 가득 채웠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된 뮤지컬 <모차르트!>는 국내 초연 10주년을 맞이한 2020년 다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뮤지컬 <레베카>와 <모차르트!>는 라이선스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원작자인 실베스터 르베이와 미하엘 쿤제가 감탄할 정도로 완성도 높은 무대를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인 것은 두 작품의 타이틀 롤을 맡은 옥주현과 김준수다. 아이돌 그룹 출신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노래와 연기 모두 완벽하게 소화했다. 대중스타로서의 매력과 소름 돋는 열창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관객들은 생생한 뮤지컬의 매력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다.

   

뮤지컬로 재조명받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비극


앞의 두 작품과 달리, 뮤지컬 <엘리자벳>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실존 황후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뮤지컬 장르로서의 예술적 완성도와 합스부르크 가문의 몰락이라는 역사적 배경지식을 동시에 전달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의 주인공인 엘리자벳은 바이에른 공국의 공주로 태어났다. 1854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프란츠 요제프 1세와 결혼하여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황후가 되었다. 프란츠 요제프 1세는 68년 동안(1848~1916) 재위한 최장수 황제로서 격동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16살에 황후가 된 엘리자벳의 인생은 드라마 그 자체였다. 시어머니인 소피 대공비의 무시와 핍박 속에서 아이 양육권마저 빼앗긴다. 뛰어난 미모와 자유로운 사상을 지닌 엘리자벳은 네 번째 아이 출산 이후 감옥 같은 왕실 생활에서 탈출하여 요양을 핑계 삼아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돌아다녔다. 아들 루돌프 황태자의 자살 이후 실의에 빠져 검은 옷만 입고 다니던 엘리자벳은 스위스 여행 중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칼에 찔려 사망했다.


엘리자벳은 씨씨 공주라는 애칭으로 지금도 오스트리아 사람들에게 애틋한 사랑받고 있다. 비엔나 호프부르크 왕궁에 있는 씨씨 박물관에는 그녀의 드레스룸과 화장을 하던 방,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운동하던 공간 등이 전시되어 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자리에 올랐지만, 스스로 자유를 선택한 엘리자벳의 인생역정은 두고두고 많은 예술가들의 뮤즈가 되고 있다.

   

비엔나 호프부르크 왕궁 안에 위치한 씨씨 박물관의 화려한 내부


1992년 9월 비엔나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오른 뮤지컬 <엘리자벳>은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일본 등 전 세계 12개 국가에서 공연되고 누적관객 1천만 명을 돌파하는 등 글로벌 흥행 대작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2012년 2월 블루스퀘어에서 역사적인 국내 초연을 했다. 2018년 뮤지컬 분야 티켓 판매 1위를 차지했고, 매년 연출과 캐스팅에 변화를 주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뮤지컬 <엘리자벳>은 그녀를 암살한 아나키스트 루이지 루케니가 극 전체를 소개하고 안내하는 방식을 취한다. 엘리자벳의 어린 시절부터 그녀의 주위를 감도는 죽음이 토트라는 이름으로 캐스팅되어 극 중 중요한 순간에 등장한다. 프란츠 요제프 1세와 루돌프 황태자, 소피 대공비도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이다.   


<레베카>에서 댄버스 부인 역으로 열연한 옥주현과 <모차르트!>에서 주인공 역으로 찬사를 받은 김준수가 <엘리자벳>에서 남녀 주인공을 등장하여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했다. 신영숙과 김소현, 박형식과 정택운 등 뮤지컬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배우들도 그에 못지않은 포스를 발휘했다.   

   

뮤지컬 <엘리자벳>은 티켓파워를 지닌 뮤지컬 스타들과 화려한 무대 연출이 돋보인 작품이다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점은 2012년 2월에 <엘리자벳>이 초연된 후 9개월 뒤인 그해 11월  <황태자 루돌프>도 국내에서 첫 선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엘리자벳 황후의 아들인 황태자 루돌프는 아버지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사상적인 갈등을 겪으며 정략결혼까지 해야 했다. 우연히 만난 17살의 남작부인 마리 베체라와 비극적인 사랑에 빠졌고 1889년 1월 마이어링에 있는 사냥 별장에서 함께 자살한다. 그의 나이 31살이었다.


뮤지컬 <루돌프 황태자>의 오리지널 작품은 프랭크 와일드혼과 비엔나극장협회(VBW)가 공동 제작하여 2006년 헝가리에서 초연되었다. 프랭크 와일드혼의 작품답게 브로드웨이의 대중성과 화려함, 유럽 왕실문화의 웅장함 그리고 너무도 드라마틱한 비극적 서사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프로듀서 엄홍현, 연출 로버트 요한슨 등 최고 수준의 스태프들이 2년여 동안 참여하여 오리지널을 뛰어넘는 완성도 높은 라이선스 무대를 만들었다. 2017년부터는 뮤지컬 제목을 <더 라스트 키스>로 변경하고 한층 더 화려하고 웅장한 연출을 선보였다.


시대와 국가를 뛰어넘는 가교 역할을 하다


어린 시절 텔레비전으로 방영되던 만화영화를 넋을 잃고 보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열광했던 그 시절 TV 애니메이션 대부분이 일본에서 만든 작품이란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 깜짝 놀랐다. 우리 상황에 맞게 주인공 이름이나 장소가 각색되고, 친숙한 성우 목소리를 더빙하여 방송되니 당연히 한국 애니메이션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지난 7~8년 동안 국내 뮤지컬 무대에서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은 작품들이 오스트리아에서 초연한 뮤지컬이고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비극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어린 시절의 TV 애니메이션만큼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엘리자벳>이나 <황태자 루돌프>와 비슷한 역사적 배경을 지닌 한국 창작 뮤지컬은 과연 존재하는가? 


1995년 초연 이후 무대에 오를 때마다 수정과 보완을 거듭해 완전체로 성장해 온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나는 답을 찾는다. 한국 뮤지컬의 산증인이자 공연 한류를 이끈 선구자로 불릴 만한 이 작품은 당시의 열악했던 창작 뮤지컬 수준을 한 단계 도약시켰다는 평가를 받기에 전혀 어색하지 않다.


뮤지컬 <명성황후>는 한국 창작 뮤지컬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주었다.

  

조선의 25번째 왕비이자 대한제국의 첫 황후였던 명성황후의 시해 100주기를 기념해서 제작된 <명성황후>는 역사 속에서 사악하고 부정적인 존재로 여겨지던 ‘민비’를 비운의 국모 ‘명성황후’로 전환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명성황후를 비롯해 역사 속에서 죽어간 원혼들이 비장하게 부르는 마지막 아리아 <백성이여 일어나라>는 관객들의 마음을 뜨겁게 적셔 주었다. 


성공적인 국내 초연 이후, 1997년 8월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 첫발을 내디딘 <명성황후>는 열광적인 기립 박수를 받으며 높은 객석 점유율을 기록했다. 2001년 런던 웨스트엔드 해머스미스 아폴로 극장, 2003년 LA 코닥 극장에 이어 2004년 토론토 허밍버드센터에 오른 공연은 해외 공연 사상 최초로 흑자를 기록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사실 오스트리아는 1897년 5월 비엔나 궁정오페라하우스에서 <코리아의 신부(Die Braut von Korea>라는 발레극을 자체 제작했을 정도로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청일전쟁을 배경으로 전쟁에 참여한 조선 왕자와 그를 사랑한 여인을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일본 배경의 <나비부인>(1904)이나 중국 배경의 <투란도트>(1926) 보다 앞선 시기에 비엔나 관객들에게 선보였다. 


바라건대 뮤지컬 <명성황후>가 애국심에 호소하는 스토리라인보다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감수성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보완하여 <엘리자벳> 못지않은 글로벌 흥행 작품이 되었으면 한다. 이 두 뮤지컬이 오리지널 작품으로 교류를 하고 라이선스 작품으로 각색되어 활발하게 무대에 오르게 된다면, 한국과 오스트리아 시민들은 서로를 보다 잘 이해하고 공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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