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숲 Jul 07. 2022

나도 모르는 사이 주고 받았을 상처

코시국은 카카오톡과 함께



친한 언니의 남편은 서울에서 가게를 여러개 운영하신다. 워낙 잘되는 가게들이지만 코로나 시국에 아무렇지 않았을리 없으나, 언니나 형부께서는 워낙에 앓는 소리 안 하고 긍정적인 사람들이라 우리는 어느 정도로 형부가 고생하시고 언니도 마음 졸였을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방역조치가 완화되고 이제야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언니네 부부. 코로나 때문에 시작된 (말도 안되는) 방역조치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생계를 책임지는 직장을 잃었고, 또 누군가는 가족을 잃기도 했다. 무시무시한 터널을 빠져나와 힘들었음을 겨우 인정하는 말들이었을 것이다. 괴롭고 힘들었지만, 겨우 빠져 나왔다, 하고



2년에서 3년 가까이 되는 시간동안 우리도 모르는 사이, 방역 조치의 부당함으로 자영업자들이 떠 안았을 괴로움을 가까이에서도, 미처 못 헤아린게 있지 않았을까 마음이 많이 쓰이는 오전이다. 남편의 재택근무에서 오는 나의 편안함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코로나라고 딱히 큰 타격은 없다는 나의 말이 누군가에게는 이또한 상처였을 거라고 생각하니 아이를 데려다주고 오는 내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었을 말들이 떠올랐다. 듣기에 따라서는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사람과 사람의 대화는 말에서만 오는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대를 바라보는 다정한 눈빛과 말투, 제스쳐, 뉘앙스까지 모든 게 대화를 구성하는 요소라고 생각하는데 코시국에 사람들은 만날 수 없었으니, 서로의 다정한 눈짓과 표정을 볼 수 없었다. 만나서도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있으니 이전같은 온전한 대화가 이뤄질리 만무하다. 우리는 반만 드러낸 채 대화를 나눈 것과 마찬가지다. 전화로 목소리나 들을 수 있으면 덜할텐데, 대부분 카카오톡이라는 편리한 수단으로 인간관계를 이어가는 지경에 다다랐다. 요즘 젊은 애들은 전화 포비아가 생겨,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던데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일 마저도 만남은 고사하고 줌 회의라는 그럴듯한 수단과 잘 적은 몇 줄의 글로 가능해진 시대가 되었다. 무려 새로운 디지털 시대가 코시국과 함께 도래하였고 우리는 카카오톡에서 읽혀지는 상대의 텍스트에서 그 사람이 전달하고자하는 모든 뉘앙스와 눈빛과 제스쳐, 속마음까지 읽어 내야하는 실력이 요구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서로의 깊은 심중을 오해없이 헤아리려면 심미안에 가까운 눈을 가져야 하고 이로써 지속하고 싶은 사람과는 가끔의 오프라인 만남이 이뤄지고 야트막했던 인연은 쉽게 끊기고 사라졌다. 반대로 참 지속하기도 쉽다. 몇 번의 자판만 두드리면 인연은 지속되고 서로의 생일을 챙기고 틈날 때마다 서로를 생각해주고 챙겨주는 소중한 인연이라고 상대방에게 쉽게 인식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깊고 친했던 사이일지라도 몇 번의 말실수가 반복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코로나의 긴 터널은 카카오톡과 함께 보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연의 모든 끈은 노란색 플랫폼이 이어주고 있는데, 그 작은 세상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고 받았을 상처가 잠깐의 생각만으로도, 이미 몇 개나 세어지니 마음이 안 쓰일 수 없다.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 2년 반, 인간관계가 침전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