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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 누나의 엄마를 뵙고 가족공원을 다시 나오는 길에 누나가 제안을 했다.
“모처럼 멀리 인천까지 왔는데 그냥 가기 아쉽다. 우리 월미도 가볼래?”
“월미도가 뭐야? 섬이야?”
“하긴, 인천도 처음 온 거니까 월미도도 안 가봤겠네. 바닷가 근처 놀이공원이 있는 곳이야.”
“놀이공원?”
어차피 할머니에겐 점심 지나서 오후 늦게 집에 들어간다고 말해놓긴 했다. 그러나 나는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다연 누나와 놀이공원에 함께 가는 건 좋았지만, 놀이공원에 처음 가본다는 사실을 다연 누나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왜 그런 게 부끄러웠을까.
“누나가 가보고 싶으면 가.”
“별로 안 내키니?”
“아니야. 월미도가 어떤 덴지 잘 몰라서 그래.”
“한 번은 가볼 만할 거야. 너도 웹툰 작가 되려면 다양한 곳에 가서 경험을 쌓아야지.”
그렇게 해서 우린 부평삼거리역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월미도에 갔다. 각종 테마파크들이 모여 있는 월미도 놀이공원은 주말 오후라 그런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테마파크의 휘황찬란한 놀이기구와 사람들의 환호성 소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대관람차와 바이킹, 범퍼카와 회전목마도 보였다. 디스코팡팡 주변으론 흥겨운 음악소리와 디제이의 익살스러운 멘트가 울려 퍼지고 있어 놀이공원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내 눈을 끄는 것 중 또 하나는 놀이공원 옆 갯벌을 따라 펼쳐진 바다였다. 뻘 너머로 펼쳐진 바다의 수평선과 드문드문 눈에 띄는 작은 섬들. 사실 나는 바다를 직접 본 것도 처음이었다. 이런 게 바다의 느낌이구나. 짠 내음과 주변 하늘을 어슬렁거리며 수놓는 갈매기의 끼륵끼륵 울음들. 모든 게 신기하기만 했다.
“여긴 갈매기 진짜 많다.”
“그치? 여기 특징이야. 새우깡 던져주면 막 몰려들어.”
“진짜?”
“한 번 해볼래?”
편의점에서 새우깡 한 봉지를 산 다연 누나가 새우깡 한 개를 공중을 향해 던져 올렸다. 어느새 날아온 갈매기 한 마리가 정확히 새우깡을 채 가는 모습을 나는 넋 놓고 바라봤다.
“오, 대단하네.”
“너도 해봐. 손에 들고만 있어도 정확히 과자만 물고 갈 걸.”
다연 누나의 말처럼 새우깡 한 개를 들고 팔을 올려봤다. 혹시나 갈매기가 내 손을 물지도 몰라서 과자의 끄트머리를 간신히 잡고서 말이다. 내가 뭘 느낄 새도 없이 새우깡을 탁 채 가는 갈매기의 뒷모습이 보였다. 몇 개의 새우깡을 공중으로 더 던져줬다. 우리 주위로 갈매기 떼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이 많은 갈매기들이 갑자기 어디서 몰려든 걸까. 신기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정민아, 너 바이킹은 타봤니? 월미도 바이킹은 진짜 무서운데.”
“누나는 타봤어?”
“너 만할 때 엄마랑 여기 와서 종종 타봤지. 아니, 조금 더 어렸을 땐가. 그때만 해도 엄마랑 사이가 좋았네.”
그렇다면 월미도는 다연 누나 엄마와의 옛 추억이 깃든 곳이구나. 나에게는 다연 누나와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곳이 되겠지. 다연 누나 역시 나와 함께 온 지금 이 시간을 오래 기억해 주면 좋을 텐데, 라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바이킹 탑승구에 섰다. 바이킹의 탑승 가능 키는 120센티미터 이상이라는 안내문이 보였다.
“너 120센티는 넘지?”
“이거 왜 이래? 나 145이야.”
“어이구,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놀리지 마.”
다연 누나 앞에서 센 척을 했지만 사실 그때부터 내 심장은 심한 긴장으로 마구 쿵쾅거리고 있었다. 생애 처음 타보는 놀이기구가 말로만 듣던 바이킹이라니. 다연 누나 앞이 아니었다면 나는 절대로 바이킹을 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바이킹을 타자는 다연 누나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다연 누나가 이끄는 대로 우리는 끝에서 두 번째 줄 좌석에 탑승했다. 바이킹이 움직이기 전 안전바가 내려올 때 나는 온몸이 굳어졌다.
“하하, 너 긴장했구나?”
“아… 아니야.”
바이킹을 탄 첫 경험은? 굳이 길게 묘사하고 싶지 않을 만큼이었다. 공중으로 높이 솟구친 바이킹의 함선이 바닥을 향해 빠르게 내려갈 때, 나도 모르게 ‘으악’하고 소리를 지르며 눈을 감았다. 눈을 떠보려고 해 봤지만 그럴수록 꼭 소변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만큼 두렵고 무서웠다. 다연 누나는 그런 내 반응이 재밌는지 깔깔거리면서 나보고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어보라 말했다. 그럼 더 짜릿하고 재미있다고. 누나의 담력이 센 건지 내가 겁쟁이인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지옥 같은 몇 분의 시간이 지나고 내뱉은 내 첫마디는 ‘다시는 바이킹 안 탄다’는 말이었다.
햄버거로 간단히 점심을 먹은 우리는 그 후로 범퍼카, 회전목마 등 비교적 타기 쉬운 놀이기구를 몇 개 더 탔다. 다연 누나는 디스코팡팡을 타보고 싶어 했지만, 그때까지도 어지럼증이 남아 있던 나는 그것마저 탄다면 속이 더 안 좋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 뭐 탈까? 이제 시간상으로 하나만 타고 슬슬 출발해야 저녁 전에 집에 도착할 거 같은데.”
나는 그때까지 마음에 두고 있던 놀이기구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놀이공원의 또 하나의 상징 같은 대관람차였다.
“대관람차? 저건 시시해 보여서 나도 안 타봤는데. 저거 타고 싶어?”
“저거 타면 그래도 이 주변 다 구경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다른 거 타기엔 좀 피곤하기도 하고.”
“오케이, 좋아. 마지막으로 저거 타 보자.”
“근데 누나 나 때문에 너무 돈 많이 쓴 거 아니야?”
“괜찮아. 아빠한테 용돈 두둑이 받았으니까. 아는 동생이랑 같이 가니까 좀 더 달라고 했어.”
“괜히 미안하네.”
“뭐야, 그럼 내가 초딩 동생한테 돈 내라고 할까 봐.”
최대 높이 지상 115미터라는 대관람차에서 내려다보니 주변 모습뿐 아니라 멀리 서해바다의 풍경이 다 보였다. 놀이공원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게만 보였고, 그 너머 바다를 떠가는 선박과 이름 모를 섬들이 선명히 보였다. 대관람차의 삐걱삐걱 소리에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왠지 가슴만큼은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와, 진짜 바다는 넓구나. 저 바다 너머로 노을이 진다면 더 아름다울 것만 같았다.
대관람차는 서로를 마주 보면서 탈 수 있는 구조였다. 작은 엘리베이터 공간 만한 곳에 다연 누나와 단둘이 있으니 왠지 기분이 좋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다연 누나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고 나는 대관람차의 창문에만 매달렸다. 그러나 마음속은 겉으로 보이는 행동과 달랐다. 지금 이 순간, 오직 나와 다연 누나만 있고 세상 모든 존재들의 스위치가 잠시 꺼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대관람차는 처음인데 타 볼 만하네. 왠지 밤에 보면 더 멋있을 거 같애.”
“…….”
나는 이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누나, 나 사실 바다 처음 본다.”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마음들이 왜 그 순간 솔직한 고백으로 술술 흘러나왔을까.
“그래? 다행이네. 그럼 내가 엄청 잘 데려온 거잖아.”
다연 누나는 진심으로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이 누나에겐 내 부끄럽고 부족한 경험들을 숨기는 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연 누나 역시 가족공원 만월당에서 엄마를 향한 자신의 솔직한 마음들을 내게 보여주지 않았던가.
“사실 놀이공원도 태어나서 처음 와 봤어. 어릴 때 엄마아빠랑도 안 와봤어.”
“정말? 그럼 롯데월드나 애버랜드도?”
“응. 난 월미도 놀이공원이 내 인생 첫 놀이공원이야.”
“와, 완전 특별하다. 나랑 온 게 네 첫 놀이공원이네.”
“뭐, 그렇지.”
그리곤 갑자기 뜬금없는 물음이 내게 떠올랐다.
“궁금한 거 생겼는데 물어봐도 돼?”
“궁금한 거? 뭔데? 얘기해 봐.”
“누나는 나하고 하율이한테 왜 이렇게 잘해줘?”
다연 누나는 내 말을 듣더니 ‘난 또 뭐라고’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전에도 말했잖아. 나도 초등학생 때 너랑 하율이처럼 엄마아빠와 떨어져 지내기도 했고, 또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외롭게 자랐잖아.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상황을 겪었고 남 같지 않았다고.”
결국 그게 전부였을까.
“또 하율이는 너무 귀엽잖아. 날 잘 따르기도 하고, 며칠 안 보면 자꾸 보고 싶어.”
“그럼 나는? 다른 이유 없어?”
다연 누나는 눈이 동그래지더니 잠시 생각했다. 그리곤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흠, 오늘 이렇게 먼 길도 같이 동행해 주고, 내 추억의 장소에서 나랑 놀아주기도 하잖아.”
“그전부터 나한테 잘해줬잖아. 태블릿도 빌려주고 여러 가지로.”
“얘가 왜 이리 따지듯 물을까? 근데 내가 그리 잘해줬나? 그냥 다들 친해져서 친동생 같아. 하율이는 막내, 너는 둘째, 그리고 나는 첫째. 첫째가 동생들한테 잘해주는 거야 당연한 거 아냐?”
나는 그 말이 좋기도 하고, 뭔가 서운하기도 했다.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