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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빗소리 Sep 17. 2024

미워해서 미안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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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평역에서 인천지하철로 갈아탄 우리는 부평삼거리역에서 하차했다. 다연 누나의 엄마가 모셔져 있다는 인천가족공원 만월당은 역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나는 텔레비전이나 만화책에서 본 무서운 공동묘지만 상상했는데, 막상 와보니 가족공원이라는 이름처럼 봉안시설 주변은 꽃과 나무, 산책로 등이 다정한 한 가족의 모습처럼 조화롭게 조성돼 있었다. 죽음의 무거운 분위기가 전해져 오기보다는 오월의 따뜻하고 맑은 날씨와 어울리며 오히려 평온한 느낌을 주는 장소였다.

 다연 누나는 부평삼거리역 앞 꽃집에서 산 작은 꽃다발을 손에 쥔 채 천천히 가족공원 만월당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누나를 뒤따르면서도 낯선 건물의 모습을 기억에 새기듯 느리게 발걸음을 옮겼다. 한자로 ‘만월당(滿月堂)’이라고 새겨진 표석 앞 세워진 봉안 건물은 마치 원형의 작은 경기장을 연상시켰다. 원 가운데 텅 빈 공간은 잔디가 깔린 정원으로 조성하고 그 둘레를 따라 봉안 건물이 마치 도넛처럼 이어져 있었다. 왜 이런 모습으로 만들었을까. 누군가를 저너머 세상으로 떠나보낸 이들의 텅 빈 가슴을 표현했음인가. 정원 중심엔 푸른 잎의 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텅 빈 가슴 한가운데서도 저렇듯 새로운 무언가는 또 자란다. 다연 누나도 그러할까. 누나의 비워진 가슴속 새로운 나무 한 그루는 무엇일까.     

 “정민아.”

 “응, 왜?”

 “엄마한테 가보기 전에 먼저 하늘나라 우체통 있는 데 잠깐 들르자.”

 “하늘나라 우체통? 그게 뭔데?”

 말 그대로 하늘나라로 쓴 편지를 넣는 우체통이라고 다연 누나는 말했다. 하늘나라로 떠난 이들에게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과 그리운 마음들을 편지로 적어서 넣는 곳이라고. 나중에 추모 관련 책자를 편찬할 때 쓰인다고도 했다.

 만월당 하늘나라 우체통은 바깥이 통유리로 환히 바라다보이는 1층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거리에서 흔히 보는 우체통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색깔이 빨강이 아닌 하늘색이었다. 하늘색 바탕 위에 ‘하늘나라 우체통’, ‘기억·추억·그리움’이라는 하얀 글자와 흰 나비 두 마리가 마치 구름처럼 새겨져 있었다. 다연 누나는 우체통 옆 작은 테이블 앞에 앉아 그곳에 놓인 엽서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나만 쓰면 뻘쭘하니까 너도 써.”

 “나도? 난 돌아가신 분 없는데, 누구한테 써?”

 “그럼 어쨌든 나 따라왔으니까, 우리 엄마한테 써줘. 친한 동생이라고 하면서 써봐.”

 “쉽지 않을 거 같은데.”

 그렇게 다연 누나와 나는 만월당 한쪽에 놓인 테이블 앞에 마주 앉아 머리를 맞대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다연 누나의 엄마에게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몰랐다. 문득 하율이와 나를 두고 떠난 우리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하늘나라에 있는 게 아니었다. 이 땅 어딘가에, 내가 모르는 어느 곳에서 하율이와 나를 잊은 채 살아가고 있을 터였다. 나는 우리 엄마를 생각하면서 다연 누나의 엄마에게 짧은 편지를 썼다.             


 다연 누나의 어머니께.

 안녕하세요. 다연 누나를 따라온 박정민이라고 합니다.

 이런 곳에 온 적은 처음이라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우리 엄마는 돌아가신 건 아니지만 제 곁에 없어요.

 하지만 다연 누나의 어머니는 하늘나라에 가셨어도, 왠지 다연 누나 곁에 계신 거 같아요.

 늘 그렇게 다연 누나 곁에서 오래 머물러 주세요.

 박정민 올림.          


 편지 쓰기에 집중하고 있는 다연 누나가 혹여나 내가 쓴 걸 읽을까 봐 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엽서를 우체통에 넣었다.

 “빨리도 썼네. 우리 엄마한테 뭐라고 썼어?”

 “그런 건 비밀이지.”

 “뭐야. 궁금하게.”

 “누나는 뭐라고 썼는데?”

 “치, 나도 비밀이다.”

 다연 누나의 편지도 우체통에 넣고 나서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갔다. 오른쪽 통로를 따라 걷다가 건물의 거의 중간 지점에서 다연 누나가 멈춰 섰다.  

 “여기 아래가 우리 엄마야.”

 다연 누나 엄마의 봉안함은 아래쪽에서도 맨 가장자리에 있었다. 봉안함이 놓인 곳 유리 안쪽엔 사진이 담긴 작은 액자가 세워져 있었다. 나는 누나와 함께 무릎을 굽히고 앉아서 다연 누나 엄마의 사진을 바라봤다. 다연 누나와 닮은 듯 안 닮은 듯 아리송했다. 왜 나는 우리 엄마가 더 다연 누나와 비슷해 보인다고 느끼는 걸까. 다연 누나는 가져온 작은 꽃다발을 봉안함 유리 바깥쪽에 붙였다.       

 “사실 나는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까진 엄마를 싫어했어.”

 엄마의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던 다연 누나가 갑자기 그런 말을 했다.

 “정확히 말하면 맨날 싸우고 돌아서는 엄마아빠 둘 모두를 싫어했어. 뭐, 결국 그렇게 엄마아빠는 나중에 갈라서게 됐지만.”

 “…….”

 “따로 살게 된 때부턴 엄마한테 더 미운 감정이 생겼는지도 몰라. 왠지 엄마가 나와 아빠를 모두 버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까.”

 나는 내가 엄마아빠에게 느끼는 미운 감정을 다연 누나도 똑같이 가졌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엄마도 사정이 있었던 건데, 초등학생 땐 어려서 그런 걸 잘 생각하지 못했어.”

 우리 엄마도 다연 누나의 엄마처럼 사정이 있었을까. 그러진 않을 것 같았다.

 “엄마는 인천 외할머니 집에서 지냈는데 오랫동안 나한테 아무 연락도 없었거든. 그게 너무 서운하고 미웠지. 어린 딸한테 그럴 수는 없는 거잖아.”  

 하지만 한참 나중에 엄마가 암으로 투병 중이란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다연 누나의 아빠와 헤어진 후 오래지 않아서 병을 발견했다고 했다. 삶의 여러 가지 다툼과 헤어짐이 병을 더 키운 걸까. 다연 누나의 엄마는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다연 누나와 다연 누나 아빠에게 알리지 않았다.

 병약해진 모습과 투병으로 야윈 얼굴을 어린 딸에겐 더더욱 보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완치가 되면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건강해진 모습으로 딸을 만나려 했다고 한다. 이 년이 채 못 된 투병 기간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다연 누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이번에는 너무 늦게 그 사실을 알려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다.

 “생각해 보면 너무 어른들을 원망만 하고, 그들을 탓하고…… 나 그렇게만 살아온 건 아니었을까.”

 다연 누나의 말이 마치 지금 내 모습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나 역시 그래왔으니까. 나의 아픔과 눈물이 있듯이, 어른들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각자만의 고통과 사정이 있다는 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으니까. 나와 하율, 우리를 외롭게 만든 사람 모두를 그저 나쁜 어른들이라고 미워했으니까.    

 “아까 나…… 하늘나라 우체통에 넣은 엽서에…… 이렇게 썼어.”

 다연 누나의 목소리가 떨리듯 흐려졌다. 봉안실 차가운 바닥으로 다연 누나의 눈물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엄마… 미안해, 라고.”

 두 번째 눈물방울이 또 떨어졌다.

 “엄마, 미워해서 미안해, 라고.”

 늘 밝고 에너지 넘치던 다연 누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슬픔에 가득 찬, 여린 한 소녀가 내 앞에서 울고 있었다.

 “엄마, 아픈 거 몰라줘서… 미안해… 라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나 역시 내 두 눈에서 뜨거운 샘이 고이고 있음을 느꼈다.

 열 살이 되기 전까지 나는 넘어지기만 하면 상처 난 무릎을 안고 울었다. 하지만 조금씩 나이를 먹을수록 몸이 아플 때보다 마음이 아플 때 울게 되었다. 그걸 느끼면서 나는 내가 조금씩 자라나고 있음을 알았다.

 지금 이 순간 다연 누나와 나는 이전보다 더 자라나고 있는 것인가. 커간다는 건 이토록 마음이 아픈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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