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그날 이후 십사 일째가 되는 날이었다. 나는 할머니와 하율이와 함께 안산 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에 다녀왔다. 보름 전 다연 누나를 만나러 홀로 다녀왔던 길을, 이번에는 뜻하지 않게 우리 가족 모두가 다녀온 셈이다. 할머니는 어디서 구해 오셨는지 우리에게 모두 검은 옷을 입게 했고, 오늘은 학교도 쉬고 식당일도 잠시 쉬자고 말씀하셨다.
합동분향소엔 많은 조문객들이 몰려들었다. 우리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비와 쌀쌀한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시간 넘게 긴 줄을 섰다. 유족들로 보이는 분들의 오열이 분향소 곳곳에서 들려왔다. 하율이도, 나도, 어쩌면 할머니도 모두 처음 겪는 무서운 악몽 같은 일이었다. 헌화를 하며 우리 가족 모두는 울었다. 멈추지 않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직도 채 남아 있는 눈물이 있었는가. 조문객들은 우리를 유가족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우리는 유가족이 맞았다. 다연 누나는 우리 가족과 다름없었으니까.
그 일이 있은 후 아주 오랫동안 나는 악몽에 시달렸다. 꿈에서 나는 매번 바닷속을 헤매고 있었다. 식은땀을 흘리다 잠에서 깰 때면 언제나 동이 터오기 전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잠든 하율이를 깨울까 봐 조심하면서 탁상용 전등을 켜고 책상 의자에 조용히 앉았다. 그러곤 다시 잠이 올 때까지 다연 누나가 내게 맡긴 하늘빛 노트를 읽었다. 아무런 제목도 적혀 있지 않은, 결말이 채 쓰이기 전에 멈춰버린 우리의 이야기. 다연 누나의 첫 소설이자 유일한 소설. 처음엔 천천히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그 이야기를 따라갔지만, 샤프로 쓴 누나의 글씨체가 조금씩 옅어지는 것 같아서 어느 순간부턴 손가락을 떼고 눈으로만 읽었다. 다연 누나가 우리 곁을 영영 떠나간 이후, 나는 몇 번이나, 몇 밤이나 그 소설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누나의 노트를 그대로 펼쳐둔 채 책상에 머리를 기대고 다시 잠든 밤도 여럿 있었다.
눈을 떴다. 다시 여전히 물속이었다. 똑같은 남쪽의 바다 어딘가였다. 또 시작되는 똑같은 꿈일까. 어? 그러나 바다 밑으로 빠르게 가라앉고 있는 사람은, 이번엔 다연 누나가 아닌 나였다. 가라앉고 있는 내 머리 위 저 너머에서 누군가에 의해 서둘러 구조되고 있는 다연 누나가 보였다. 아니 자세히 보니 다연 누나와 비슷하게 생긴 젊은 시절의 엄마였다. 엄마. 엄마는 왜 또 내 꿈속에 나타났을까.
바다 밑으로 떨어지면서 나는 엄마의 모습을 올려다보았다. 양복 차림의 건장한 아저씨 한 명이 그대로 바닷물에 뛰어들어와 엄마를 끌고 수면 위로 거침없이 헤엄쳐 올라가고 있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엄마를 구출하는 모습을 바닷속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이상한 슬픔과 기쁨을 동시에 느꼈다.
엄마 곁에 아빠가 아닌 다른 아저씨가 있는데도 왜 더 이상 화가 나지 않는 것일까. 대신 눈가가 뜨거워졌다. 꿈속에서도, 물속에서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가. 짜디짠 바닷물이 온통, 이곳에 잠긴 누군가들의 눈물방울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웃었을까. 여전히 울었을까. 무사히 구조되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는 한없이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물속에 잠긴 나는 홀로 어둠 속을 헤매고 있었다. 그러다 캄캄한 바다 깊은 곳에서 피곤에 지쳐 잠이 들었다. 근처가 어수선해지는 느낌이 들어 다시 눈을 떴다. 바다 깊은 곳 사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물속에 잠겨 가라앉고 있었다. 한두 명이 아닌 수백 명이 마치 비 오듯 바다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눈을 뜬 나와 달리 그들은 모두 눈을 감고 있다. 어딘가에서 몰려온 작은 물고기 떼들이 연분홍빛 비늘을 반짝이며 그들 곁을 바람처럼 스쳐간다. 주변이 잠시 환해진다.
물속에 잠겨 가라앉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처음에는 어른이나 고등학생 정도로 보였던 얼굴이 점점 어려진다. 그들은 고등학생 시절을 거슬러 그들의 어린 시절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교복 입은 중학생이 되었다가, 키 작은 초등학생이 되었다가, 하율이 만한 귀여운 꼬마가 되었다. 나는 놀란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꼬마 아이가 되어 눈을 감고 있었다. 그때 바로 옆에 있던 네다섯 명의 아이들이 갑자기 눈을 떴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조금 더 자세히 보기 위해 헤엄쳐 다가갔다.
그들은 창동초등학교에서 함께 축구를 하던 내 친구들이었다. 그들 역시 내 곁으로 더 가까이 헤엄쳐왔다. 자세히 보니 내 친구들뿐 아니라, 꼬마 아이가 된 다연 누나와 하율이도 있었다. 다연 누나가 아무 말 없이 웃으면서 하율이와 내 손을 꼭 잡았다. 둥글게 모여 재미있는 놀이를 하듯이, 서로의 손을 잡은 채 커다란 원을 그리며 강강술래를 하듯 돌고 돌았다. 그들을 따라 함께 바닷속을 유영하는 꿈속의 내 모습을 내가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어느덧 그들과 똑같은, 더 어린 꼬마로 변해 있었다. 그들이 내게 먼저 다가와 손을 뻗고 있었다.
함께 만들어가던 바닷속 원은 어느덧 햇볕이 따스하게 내려앉는 수면 가까이 솟아 올라가고 있다. 그 꼬마 아이들의 손길이 천천히 내 손을 놓고 있음을 나는 느꼈다. 나는 그들에게 다시 손을 뻗었다. 수면 위로 끌려 올라갈수록 나는 다시 초등학생으로, 중학생으로, 고등학생으로, 어른의 모습을 지나 어느덧 백발의 할아버지로 바닷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다연 누나를 비롯한 꼬마 아이들은 은빛의 작은 물고기 떼처럼 힘을 모아 물 밖으로 나와 하율을 동시에 밀어낸다.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물 밖으로 솟아올랐다. 지구 바닷속 최초의 생명들이 두근거리며 뭍으로 걸어 나오듯, 환한 태양 빛을 마주했다. 눈부셔. 나는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
두 번째 꿈에서 나는, 예전과 똑같이 4호선 안산역 개찰구 앞에서 다연 누나와 서 있었다. 마찬가지로 누나의 하늘빛 노트를 건네받으며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다연 누나는 그날과 똑같이 베이지색 에코백을 들고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에 벚꽃의 흰 빛을 닮은 바람막이를 걸치고 있었다. 모든 게 똑같았다.
바닷속을 헤매던 악몽에 매일 밤 시달렸기 때문일까. 나는 이것조차 현실이 아닌 꿈임을 금세 자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행복했다. 즐거웠던 그날의 기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기에. 그런데 다연 누나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니 그때의 현실과 다른 점이 있었다. 꿈속에서 다연 누나는 내게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직 결말을 못 썼어. 매번 동화만 쓰고 소설은 한 번도 써보지 않아서 도저히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지 모르겠네. 너한테 보여주고 나서 도움 좀 받으려고.”
“초등학교 6학년이 고등학생을 어떻게 도와?”
꿈속에서도 나는 똑같이 대답했다.
“어려도 넌 창작 재능이 있잖아. 우리들 추억이 소재니까 읽고 나서, 결말은 네가 써줘.”
어? 결말을 내가 쓰라고?
“왜?”
“…….”
“왜 내가 누나 소설 결말을 써?”
“그게 말이지.”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
너는 내게 특별한 사람이니까, 라는 말을 나는 이제와 꿈에서라도 듣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는 더 이상 쓸 수가 없어.”
“그게 무슨 소리야?”
“곧 알게 돼.”
“알게 된다고?”
“머지않아.”
“대체 왜? 작가가 꿈이라고 했잖아. 그니까 누나가 직접 완성해야지.”
나는 다연 누나가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는 이유를 알고 있음에도 따져 물었다. 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그 장면에서 또 눈물을 흘렸다. 현실의 눈물은 모두 써버려, 이제는 꿈에서조차 남은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가.
“정민아.”
“응…….”
“왜 울어?”
“몰라. 그냥 눈물이…… 나와.”
“울지 마.”
“…….”
“정민아, 약속해.”
“… 뭘?”
“결말 써준다고.”
“싫어. 누나 소설이니까… 누나가 써.”
“우리 얘기니까 네가 마무리 지어도 돼.”
“…….”
“네가 쓴 것도 마찬가지로 내가 쓴 거야.”
“…….”
“나만의 얘기도 아니고, 너만의 얘기도 아니고.”
“…….”
“우리 이야기니까…….”
그 말을 끝으로 다연 누나의 모습이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개찰구를 지나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람은 나인데, 내가 채 열차를 타기도 전에 다연 누나는 내 곁을 떠나가려 하고 있었다. 손을 흔들며 그 자리를 지켜주던 현실과는 다른 모습에 나는 쓰라린 슬픔을 느꼈다.
“이제 떠나야 돼.”
다연 누나가 말했다.
“가지 마.”
나는 울면서 누나를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옅어진 누나의 손길은 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정민아, 미안해.”
“가지 마, 제발.”
“미안…….”
“…….”
“미안해…….”
“…….”
“안녕…….”
그 말을 끝으로 다연 누나는 하늘빛 노트 한 권을 내 손에 남긴 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정성스레 쌓아둔 한낮의 모래성이 파도에 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이. 하얗게 피어났던 봄날의 꽃잎들이 간밤의 비바람에 야속히 떨어져 내리듯이.
나는 눈물을 흘리며 그대로 서 있다가, 다연 누나가 남기고 간 노트를 다시 한 번 내려다봤다. 현실에서와는 다르게 꿈속에서는 표지 위에 제목이 쓰여 있었다. 전에는 분명히 없었는데. 나는 그 제목을 읽었다.
소설 제목은 「느리게 읽는 마음」이었다. 왜일까? 소설 속 이야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거 같은데. 나는 궁금해 하면서도, 그래도 뭔가 그 제목이 낯설지 않고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나, 왜 제목을 이걸로 지은 거야?’
나는 꿈속에서만이라도 그렇게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꿈에서조차 이미 다연 누나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나는 꿈에서 깼다.
반지하의 아침은 여전히 차갑고 어두웠다. 옆에서 잠들어 있는 하율이를 바라보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누운 채 소리 없이 또 한참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