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대해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 억누르거나 피하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합니다. 더 나아가 나는 힘들면 안 된다거나, 슬프지 않다고 말하기도 해요. 오랜 시간 나를 힘들게 했던 감정들. 누구 하나 있는 그대로 그 감정을 돌봐주지 않았던 기억들이 쌓여가면, 어느새 그 감정들은 느껴봤자 나를 불편하게만 하는 불청객이 되어 마음에 자리할 곳이 없어 깊은 곳에 쌓아두게 됩니다. 그렇게 나도 몰랐던 내 감정들이 마음속 작은 유리병을 가득 채워 넘쳐흐를 때쯤, 참았던 감정들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를 아프게 하는 것 같아요. 때로는 우울증뿐만 아니라, 공황이나 신체화 같은 증상으로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나쁜 감정은 아예 없애면 좋지 않을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생각처럼 감정을 선택해서 느끼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선택할 수 없을뿐더러 어떤 게 좋은 감정이고 어떤 게 나쁜 감정인지 구분하기도 어렵죠. 사실, 감정은 저마다의 역할을 가집니다. 불안이나 죄책감 같은 부정적으로만 느껴지는 감정들도 다 저마다 순기능을 지니고 우리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기도 하죠.
어떤 감정이던 우선, 나부터 있는 그대로 그 감정을 지켜보는 것. 나를 두렵게만 하던 감정을 조절하는 첫걸음이라고 말해주곤 하지만,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 참 어렵게 느껴지곤 합니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요? 왜 이런 감정이 내게 찾아온 건지 조심스레 들여다보면, 때로는 무섭게만 느껴지던 감정들이 내게 다가와 이야기를 건넬지도 모르니까요.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누군가가 언젠가 무거움을 덜어내고 감정을 조금씩 다뤄갈 첫걸음을 떼길 바라며 감정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전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