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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의 유희 Jun 09. 2024

날개에 홀리다. Be Spellbound.

OKNP 부산, 안상수 개인전 <홀려라>

부산 OKNP 겔러리의 날개 개인전 [홀려라(Be Spellbound)]에 다녀왔다.

부산에서 전시를 하신다는 이야기에 왜 그 먼곳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렇게 전시를 핑계로 하루 부산을 다녀가는 여유로운 척 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처음 안상수 선생님을 만났을 때는 그는 이미 '날개'였다. 디자이너 안상수 선생님의 제자로 배울 기회는 없었다. 그러나 내가 만난 날개의 모습은 곧 나에게 묻고 싶은 스승이고 따르고 싶은 선배가 되었다. 가끔 답을 찾아 날개를 찾아 가면 반가히 맞아 주셨다. 날개 주변 PaTI를 맴돌며 보고 듣고 느끼며 때로 함께 했던 시간들은 참 소중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의〈날개.파티>(2017)전이 멈추지 않은 진행형의 날개의 넓게 펼친 모습을 보여주어 좋았다면, 이번 부산 전시는 날개의 화두로 깊게 들어 갈 수 있는 퍼득임을 본 느낌이었다. 감사하게도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날개와 잠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알파에서 히읗까지


내가 제일 처음 디자이너 안상수를 인식하고 보았던 작품은 "알파에서 히읗까지"였다. 어디에서 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벽면 전체를 거대하고 흐르고 있는 작품이 홀리듯 다가왔다. 

α(알파)와 ㅎ(히읗). 가장 오래된 문자의 시작에서 가장 새로운 문자의 끝까지. 인류의 지식, 문명, 사고, 생각, 행동, 기억, 기록들을 동서양의 경계를 넘어 연결하고, 한정되지만 무한하게 느껴지는 인류의 시간을 알파와 히읗을 품은 문자도 하나가 모두 담은 격이다. 유한하면서도 무한한 그것의 압축. 


문득, Meta의 AI 전문가 얀 르쿤이 거대언어모델에 대해 했던 "language is a very low-bandwidth channel" 이란 말이 생각났다. 문자 기반의 언어 자체의 적은 대역폭에 담길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다는 것고 많은 부분의 언어를 통한 소통의 정보가 사람안에 담겨있다는 것이다. 생뚱맞은 AI에서 끄집어낸 문자 이야기는 소를 뜻하는 알레프와 집을 뜻하는 베트라는 페니키아 상형문자에 기원을 둔 알파벳의 기원에서 부터 바우하우스와 문자, 그리고 여러 생각의 조각을 거쳐 한자어와 서구 문명으로 까지로 이어졌다.  


홀려라


무엇에 홀린것 같다. 홀린다. 홀려라. 참 매력적인 말이다.

〈홀려라>는 한글 닿자와 민화를 조합하여 만든 그림, 즉 문자도이다. <홀려라>는 글자로 이루어진 이미지이지만, 각 글자를 해체하여 조합했기 때문에 실제로 마주하면 읽어낼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글자를 읽어내는데 익숙한 우리는 문자도를 애써 읽어내려고 하는데, 이를 통해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수없이 오가게 한다.

의미와 무의미 사이라니 양자중첩같은 상태일까? 양자물리학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우리 주변의 대부분의 것들은 선택과 선택의 사이 아니 사이가 아닌 양가적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멋지음(디자인)을 한다거나 경험을 만든다는 행위 자체가 양가적이다. 


날개의 작품 '홀려라'를 바라보면 히읗이라는 문자 형태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읽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히읗은 추상화된 형상들로 흐트러 지듯 캔버스를 채운다. 문자. 읽을 수 있는 히읗이 압축된 추상으로 들어갈 수 있는 손잡이. 열쇠가 되어 보는 이를 안으로 초대한다.


안상수체의 조형적이 히읗의 균형에서 툭 하고 물 흐릇들 흘러나온 형상들은 Asymmetry(비대칭)이다. 그런데 히읗과 어우러져 Asymmetry(비대칭)이 감상적인 Symmetry(대칭)을 이룬다. 균형이 없으면서 균형이 있고 비대칭이며 대칭인 형상이다. 이런 양자중첩(?) 같은 양가적 감상이 나를 날개의 작업에 홀리게 한다.

날개 선배의 행동의 양자중첩이 알수 없는 깊이로 나를 홀린다.


Magic Circle


매직서클은 홀리다가 아닐까? 게임 디자인에서 중요한 개념인 "Magic Circle"의 적당한 우리말 표현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왠지 홀리다에서 그 느낌을 찾은 듯하다.


Be Spellbound


홀려라 전시의 영문 표기는 "Be Spellbound"이다. 날개가 꽤 오래 고민하고 좋은 단어를 찾지 못하다 7년만에 얻은 답이라고 하셨다. Spell-bound라니, 이 얼마나 완벽한가. 마법 주문에 홀린듯한 의미도 그렇지만, 날개의 알파에서 히읗까지와 홀리다 작품들의 히읗까지 타이포스라피 마스터의 문자로 부터 시작된 작품에 Spell.bound란 너무 딱이다.  Spellbound를 홀린듯 바라보다 Be Spellbound 되었다. 홀렸다.


모르던 한글 닿자


한글 닿자?

한글에서 자음에 해당하는 자를 닿자라고 하고 모음에 해당하는 자를 홀자라고 한다. 닿자와 홀자의 어원도 궁금해진다. 익숙한 한글인데 모르는 것 투성이다. 


언어도단(言語道斷)? 

말씀 언(言), 멀씀 어(語), 길 도(道), 끊을 단(斷).

말의 길이 끊어지다. 원래 불교의 용어로 깊은 깨달음을 얻어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른다는 의미라고 한다.  흔히 듣던 사자성어인데, 그 어원을 생각하니 또 다르게 들린다.



익숙하지만 알지 못하는 것. 안다고 생각했지만 모르는 것이 많다. 

이미 한참 누군가의 스승이거나 선배여야 할 나이지만

여전히 앞서 걷고 있는 스승과 선배의 뒷모습을 바라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된다.  


참 오랫만에 날개를 뵈었다. 

하기 보다 말 듣기를 바랐고

홀리듯 던져진 화두를 소중히 주워 담아 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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