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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선아 May 31. 2023

<딱궁이> 새 운동화 신는 방법

입하(立夏)호, 넷째 주





에세이 - 새 운동화 신는 방법





    네가 밥을 왜 챙겨 먹냐라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의미는 있겠지만 실적이 없는 하루가 시작되고 그게 모여 매일이 되었고 그 매일이 모여 4개월이 넘어가는 중이다. 남들 다 하는 휴학 한번 없이 대학교 졸업을 했다. 나는 내 인생이 물 흐르듯 쉽게 흘러갈 거라고 생각했다. 아직 짧은 인생이지만 살면서 세상이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느낌은 받아본 적 없다.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닌데 대학에 갔고, 국가장학금으로 매번 어렵지 않게 학기를 마쳤다. 아르바이트로 용돈벌이를 하며 사고 싶은 건 곧잘 샀고, 취업 준비하려고 아르바이트를 그만뒀지만 실업급여를 꼬박 받았다. 이렇게 딱 졸업하던 시기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해결할 수 있는 일 투성이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아도 그려졌다. 그러던 중 몸에서 질병을 발견했다. 여태 목젖인 줄 알면서 살았던 게 혹이었다.


    수술을 적극 권장하는 병원은 없었다. 다만 수술을 하지 않으면 여러 가능성들 때문에 앞으로 추적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계속 품고 지내기가 껄끄러울 것 같아 수술을 하기로 했다. 앞으로 계속 바빠질 테니까 지금이 적기라고도 생각했다. 목에 묵직이 튀어나와 있던 게 줄곧 신경 쓰였는데 잘된 일이다. 수술만 서둘러 끝내고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알차게 취업 준비를 하다가 사회로 나가자. 이때는 이렇게 하면 되겠고, 이러면 저렇게, 준비는 이런 것들로 하자. 하지만 내가 조금 경솔했다. 여태 겪었던 것처럼 모두 한 번에 잘 해결될 거라고 안심했다. 병원에처음 갔을 때는 패딩을 입었었는데, 모두 반팔을 입고 다닐 때까지 내 계획 중 어떤 것도 성사되지 않았다.


    두 달 가까이 기다려 잡힌 수술 일정은 내가 코로나에 걸려 무산됐다. 그 이후 수술 일정은 다시 잡힐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필 세워둔 계획 중 최고 우선순위였는데 이건 혼자만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가 없다. 그냥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 언제라도 갑자기 일정이 잡힐지 모르니까 새로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학원을 다니고 싶어도 등록할 수 없다. 그래서 기다리는 동안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취업 준비를 한답시고, 혹은 나중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내가 하고 싶어서. 몇 가지를 시작했다. 무엇도 결과를 내지 못했다. 수술을 아직 못해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고, 일을 안 하니까 돈이 없고, 돈이 없으니까 불안하고, 불안하니까 마냥 뭐 같기만 해서 무기력해지고, 의지 없어지고, 의지도 없고 열정도 없으니 목표는 자꾸 도망가고, 지금 이걸 왜 하고 있지, 부정적, 아는 사람 만나는 게 두렵고, 두려우니까 뭐라도 해보자, 아니지, 나 수술부터 해야 하는데, 가 관람차처럼 돌아간다. 출발이 도착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빙빙 돈다. 시간은 이때다 하고 흐른다.


    젊은 것들은 젊어서 젊음을 모른다고들 한다. 이만큼 나이를 먹고 늦은 것 같지만 한참 인생 선배들이 보면 아직 멀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나는 내 젊음이 너무도 귀하고 소중하다. 아직 많이 남은 것 같기도 한데 사실 모르겠다. 얼마 안 남은 건 아닌지, 늦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점심 급식 먹으려고 줄을 섰는데 자꾸 새치기 당하는 것 같다. 차례는 밀리고, 나는 식판도 못 챙겼는데 벌써 다 먹은 애들이 수두룩 나가고, 그러다 점심시간이 끝나버리면 또 다음날의 점심시간부터 시작하는 느낌이다. 다음에 돈 생기면 보자. 나 그냥 이것저것 준비하면서 지내지. 요즘 돈이 없어서 얻어먹고 다녀. 우리 커피만 마시자. 진짜 고맙다. 내가 꼭 보답할게. 목이 막힌다. 씨발. 이럴 때 목 막히는 것도 혹 때문인가. 차라리 다 혹 때문이었으면 좋겠다.나 때문인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


    어버이날에 무엇을 해 드려야 하나 고민하던 날이었다. 해 드릴 수 있을 때 고민하는 것과 없을 때 고민하는 건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것저것 사실관계 상관없이 여태 부모님께 받기만 했던 게 생각나 자괴감에 빠진다. 누구는 예쁜 생화 다발, 누구는 용돈, 선물 등. 비슷한 또래와 보내는 같은 행사. 그들의 소식들을 훔쳐본다. 사랑을 돈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말은 옛날 얘기가 됐다. 돈은 주는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 충분히 흉내 낼 수 있다. 어쩌면 진짜보다 더 크게 보여줄 수도 있다. 나는 부모님이 다 잠들었을 때 몰래 카네이션을 꾹꾹 접었다. 수치스럽고 죄스러운데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울며 종이를 접었다. 졸업도 했는데. 번듯하게 나이 먹고 어버이날에 종이 카네이션을 드렸다. 그것만 드렸다. 그 와중에 나가서 써야 할 이만 원은 남겨둬야했던 게 나를 최악으로 만들었다.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미안해하지 말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진공포장되는 것처럼 쪼그라들었다. 이게 다 정말 어쩔 수 없던 거였을까.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잠깐 생긴 그늘에 여태 숨기만 했던 거라면 비겁해서 어쩌지. 여태 걷는다고 걸었던 게 제자리걸음이었으면 어쩌지. 피할 수 있어 보이는 걸 용감히 피했어야 했나. 아직 가진 게 없으니 보여줄 것도 없다. 무엇을 어떻게 차근차근하면 된다는 걸 머리는 아는데 마음이 이해를 못 한다. 왜 빨리 자랑스러워질 수 없냐고 재촉한다. 이 모든 상황이 사실이지만 나에게는 왠지 커다랗고 안일한 변명 같기도 해서 자주 할 말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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