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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선아 Jun 05. 2023

<딱궁이> 덜 나쁜 거짓말과 똑똑한 친절도 있다

입하(立夏)호, 마지막 주



산문 - 덜 나쁜 거짓말과 똑똑한 친절도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달려라 메로스를 읽고





어차피 탄로 날 일이건만 하루라도 잠깐이라도 오래 평화를 지속시키고 싶어서, 또한 사람들을 경악시키는 게 아무래도 두려워서, 나는 열심히 그때뿐인 거짓말을 한다. (달려라 메로스 中)


   평소 자신의 감정 상태를 결정하는 게 주로 타인었다면 거짓말을 자주 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나를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거짓말을 사용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동기는 그랬을 수 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결국상대에게 실망 받기 무서웠거나, 상처 주기 싫었거나, 기쁘게 해주고 싶었거나 중 하나에 속한다. 거짓말은 누구나 행하는 필요악(必要惡)이지만 그중에서도 최악의 거짓말은 들킨 거짓말이다. 나는 거짓말이 어차피 탄로날, 그때뿐인 처세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막상 거짓말을 하고 보니 영원히 숨길 자신이 없을 것이다. 혹은 처음부터 상대가 거짓말을 눈치 채주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죄책감을 견딜 수 없을 때 거짓말은 들킨다. 게다가 나만 말하지 않으면 모를 일이었는데 내 마음 편하자고 사실을 고하면 곤란하다. 뒤늦게 ‘사실’을 말하기 위해 ‘사실 그때’ 라는 식으로 고백하는 경우가 있다. 상대방을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을 위한 고백이다. 도망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없애버리고 싶기 때문이다. 정말 상대를 위해 거짓말했다면 죄책감은 필연적으로 안고 가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거짓말과 무언을 적절한 상황에 맞게 사용한다. 그래서 세상에는 알려진 일보다 감춰진 일이 더 많다는 것이다. 나는 거짓말을 자주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점점 낯선 집에서 자는 것 같은 기분을주는 이 죄책감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그래서 더 나은 방법을 찾았다. 상대와 나에게 큰 피해가 가지 않는 방법이다. 이럴 때는 ‘거짓말한 게 아니라 말을 안 한 거야’ 가 가능하다. 무언(無言)이 바로 그렇다. 거짓말과 무언, 두 개념은 공통점이 있다. 상대방이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언은 진실을 거짓으로 꾸며내기 보다 말을 하지 않는다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진실을 훼손시키지 않는다. 반면, 진실을 훼손시키는 건 거짓말이다. 사실을 왜곡했다면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 훼손된 진실을 들키지 않을 각오와 대비 정도는 해두는 게 최소한의 양심이다.




자신이 남에게 친절을 베푸는 건 대단한 미덕이고, 그래서 내심 은근히 보답을 기대하는 주제에, 남의 친절에는 어찌나 경계가 심한지.(달려라 메로스 中)


   친절은 이웃집끼리 나누는 먹거리 같다. 옆집에서 김치전을 몇 장 부쳐 건네주면 감사히 먹고 그릇을 깨끗이 씻어 어제 담근 열무김치를 담아 돌려주는 풍경이다. 하지만 나는 김치전을 줘도 열무김치를 기대하지 않고 싶다. 돌아오지 않아도 잘 베푸는 사람이 되고싶다. 나는 어떻게 하면 똑똑히 친절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품고 있어야 할 좋은 것들을 모두 나눠주기 시작했다. 친절을 주기만 한다면 아무에게도 나쁜 평가를 듣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사랑을 더 오랜시간 많이 받고 싶어서 그랬다. 이것보다 더 확실하게 진심을 표현하는 다른 방법은 고민해 보지 않았다. 여태 주고 살던 걸 멈춰버리고 ‘나만의 친절’을 포기한다면, 받을 때마다 재어 보고 적당히 한다면, 나를 사랑한다는 사람이 다 떠나갈 것 같았다. 알고 보니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사람이었다고 실망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그들을 향한 이런 걱정이 나를 더 떠나가고 싶게 만든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여태까지의 방식을 모두 바꾸고 싶지는 않다. 주기만 한다고 생각했어도 분명히 그보다 더 보답받은 적이 많기 때문이다. 기존의 내 방식을 최대한 유지하되 똑똑하게 베풀 수 있는 법을 찾아냈다. 내 안의 친절을 진품과 가품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진품을 준 사람, 주고 싶은 사람에게는 진품 친절을 베푼다. 그 반대의 경우에는 가품 친절을 베풀면 된다. 감정하는 기준은 각자 다르겠지만 하여튼 사람 사는데 공짜는 없다. 적어도 우리는 관계가 순환되길 원한다면 진품이든 가품이든 주고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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