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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선아 Jun 07. 2023

<딱궁이> 병을 줘도 약을 주니까

입하(立夏)호, 마지막 주




산문 - 병을 줘도 약을 주니까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을 읽고



그는 마치 다른 길로 잘못 접어든 사람처럼 보였다.문제는 바른길을 찾아가야겠다는 결심이 생겨나지않는 데 있었다. (중략) 바글거리는 인파들 속에 섞여있으면 짐승의 체취에 질식당하고야 말 것 같았다. 붐비는 사원 식당에서, 혼잡하기 짝이 없는 도심의 거리에서 때때로 그는 치솟아 오르는 구토증에 시달렸다. 사무실 의자에 앉아있다가 누군가 큰 소리로 부르기만 해도 울컥 짜증이 솟았다. 아무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견딜 수 없을 만큼 적개심이 일어 어쩔 줄 모르는 일도 자주 있었다. (원미동 사람들 中)


딱히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들은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사는가. 공기 중에 확산되어 있으리라고 믿어지던 선명한 기억이 하루 후에는 일부가 뭉개지고 또 며칠 후에는 다른 쪽이, 또 몇 달 후엔 아주 작은 부분만 남긴 채 와해되어가던 것을 그녀는 익히 알고 있었다. 이제 심장의 한 켠에 비수처럼 꽂혀있는 몇 개의 과거를 빼고 나면 다시 얼마를 더 가슴에까지 깊이 간직할 수 있을 것인가. 밤 사이의 길고 충격적이었던 꿈들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어둠의 저쪽으로 함몰되어 사라지는 것을 붙잡으려 애쓰던 안타까움. (원미동 사람들 中)


눈물주머니를 달고 살았던 그때, 턱없이 세상을 무서워하면서 또한 끝도 없이 세상을 믿었던 그때의 이야기들은 매번 새롭게 읽혀지고 나를 위안했다.   (원미동 사람들 中)





     초등학생 때는 시를 써서 상을 받았다. 그다음에는 독후감이었고, 감상문 같은 것들이었다. 중고등학생 때에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교내 백일장에 꼬박 참여해서 상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짜릿했던 건 50분 남짓한 시간 안에 주어진 단어들을 사용하여 소설을만들어내는 활동이었다. 또래 친구들이 몰래 핸드폰을 할 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글을 쓰던 게 정말 재미있었다. 오타가 난 걸 지우는 찰나조차 아까울 정도로 몰입했었다. 그 순간만큼은 손이 머리의 출력을 따라가지 못했다. 쉬는 시간까지 검토하다 제일 마지막으로 제출할 때에 느꼈던 감정은 내게 쓰는 재미가 어떤 것인지 제법 빨리 느끼게 해줬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 스스로 명명했다. 나는 죽기 직전까지 쓰는 사람이어야 한다.


       열아홉 살의 나는 공부를 잘하지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못하지도 않았다. 좋아하는 과목은 국어뿐이었다. 그렇다고 국어 성적이 탁월했던 것은 아니었다. 대학에 붙지 않으면 안 가겠다는 마음으로 열아홉을 보냈다. 공부라는 행동 자체가 하기 싫었다. 그럴 시간에 내가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조용히 친구들과 선을 긋기 시작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수험생의 역할을 너무도 잘 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그때부터 사람이 싫었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내가 잘하지 못하고, 잘할 수 없는걸 열심히 성취하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래야 자괴감에 덜 빠질 수 있다. 다이어리에다 매일매일 사람을 미워하며 관찰했다. 다이어리를 완성했을 때 즈음 나는 내가 어떤 특징을 가진 사람인지 조금이나마 납득할 수 있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오래된 친구들을 많이 잃었다. 종이에다 대고 말하는 게 버릇이 되어 친구들이 나를 궁금해할 때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아니다. 못했다기보다는 부담스러웠다. 글을 쓰면 언제든지 삭제하거나 지울 수 있는데, 말은 수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나를 답답해하거나 난감해했고, 나 역시 친구들이 점점 불편해졌다. 말을 해야 할 때가 언제인지 구분을 하지 못해 매일 자기 전 글을 썼다. 그 무렵 나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지 않지만 그래서 더 구체적, 사실적일 수 있는 게 시다. 시를 읽고 느낌을 얻으면 그걸 토대로 해석해 나의 이야기로 만들면 된다. 우울한 시도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시를 좋아했다. 여전히 좋아한다. 비밀같이 예민한 이야기를 시라는 하나의 난해함으로 덮어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다.


     시를 포함한 나의 모든 쓰기 활동은 주로 내가 힘들 때 활발했다. 글은 꼭 힘들 때 쓰고 싶어진다. 아마도 글의 첫 시작이 내게는 비상구와 비슷한 용도였기 때문일 것이다. 약속도 없으면서 학교가 끝나면 집에 곧장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저녁 먹을 시간인데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읽었다. 그리고 자주 적은 양의 눈물을 흘렸다. 쉬는 날 행여 사람이 많은 곳을 지나다닐 때에는 귓구멍이 휴지 같은 걸로 막힌 채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처럼 이상했고 땀도 많이 났다. 특히나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던 건 사람의 큰 웃음소리였다.

버스를 탔는데 기사님이 운전을 너무 거칠게 하셔서 짜증이 났고, 몇 시간째 누구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는 핸드폰을 자꾸 들여다보는 게 한심스러웠다. 생각과 망상들이 짬밥처럼 뒤섞여 힘이 들 때에는 꼭 글로 정리를 했다. 어떤 순간에서든 나를 고르게 만들어줬던 건 항상 글이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쓴 글인가 침대 밑 먼지인가 하는 것들을 읽다 보니 조금 창피해졌다. 나의 글에게 미안했다. 쓰는 사람으로 죽겠다면서 정작 내 글이 세상에 나오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않은 것이다. 아무도 만난 적 없고 노트 안에서 겹겹이 자국 내는 문장들. 외로워서 자주 글을 찾았으면서 나는 글의 외로움은 살피지 못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나의 글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소중히 쓰는 연습. 보여줄 수 없는 글은 쓰지 말자. 한 자 한 자 정확하게 꽃잎 떼듯 적었다. 그 첫걸음으로 과거를 자주 빌렸다. 기억나는 것보다 기억 안 나는 게 더 많은 시절에 들어가 느낌만 가져오려고 노력했다.

잊혀지는 게 두려울 정도로 강렬했던 기억이 있다면 이제 영원히 남겨둘 수 있었다.

여전히 이런 것도 시라고 할 수 있나 의심스러웠다. 나의 글은 겨우 사랑하지만 아직 자신이 없었다. 글에게 토라지기도 하면서 쓰고, 고치고, 단념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 쓰는 사람이었다. 여기저기서 배우고, 들어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안 쓰는 사람이 된 내 모습은 더 모르겠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았다.나는 대학교 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되었고, 이제야 조금 자신감의 ‘자’까지는 할 수 있게 됐다.


      나의 글에 자신감을 갖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자신감보다 중요한 건 이유를 찾는 것이다. 내가 왜 글을 써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가장 좋아하고 자신 있는 행위로부터 받은 상실감은 오랫동안 사람을 괴롭게 한다. 글은 때로 나를 완벽히 좌절시킨다. 그 좌절을 극복하기 위해서 또 글을 쓴다. 욕심내고 싶은 삶, 느껴봤던 계절, 모르거나 아는 사람에게 무뎌지지 않으려고 쓴다. 덜 슬프고 더 행복하기 위해 쓴다. 결코 함부로 누릴 수 없는 모든 것에 ‘왜’를 붙이고 ‘때문이다’로 끝내기 위해 쓴다. 나는 나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계속 글을 써야 한다.




<딱궁이>의 조용한 출타! 입하호 연재가 끝났습니다.

태어나서 가장 보람찬 한 달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간 읽는 사람의 얼굴을 상상하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한 달 동안 꾸준히 글을 쓰고 올릴 수 있었던 건 역시

확인할 수 없는 여러분을 믿은 덕분이었습니다.

누구의 바람도 아니었지만 일단 연재를 시작함으로써

얻은 게 참 많습니다. 가장 놀라웠던 건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도 글을 쓰는 능력이

제게 있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정말 작가가 되고 싶구나!

쓰기에 대한 제 열정과 애정을

다시 확인하게 되어 행복합니다.

그래서 잊혀지기 전에

서둘러 다음 연재와 돌아오겠습니다.

부족한 것 같은데

나름 괜찮은 구석이 있는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건강히 지내고 계세요.


원선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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