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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선아 Jul 20. 2023

<딱궁이 합동 연재 4> 건강한 질투

소서(小暑)호, 셋째 주

소서(小暑)호, 셋째 주 특별 코너

<이거 내 이야기는 아니고>



* * * * *

네번째 합동 원고

에세이  - 건강한 질투

글쓴이  - 제니

* * * * *




   나는 참 질투가 많은 성격이다. 누구나 흔히 내가 갖지 못한 돈, 명예, 훌륭한 외모 등을 부러워할 때 나는 사뭇 다른 걸 부러워했다. 꾸준한 사랑을 받은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나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은 것 같은, 아니 더 많이 받았을 것 같은 사람을 내 멋대로 추측해서 부러워했다. 분명 나도 유년기부터 성인까지 꾸준히 가족들의 지지와 가까운 친구들의 관심, 연인의 사랑을 경험했다. 그러나 마음속 한구석은 늘 밑바닥으로 떨어질 듯한 중력을 경험하곤 했다.


   하지만 내가 질투가 많은 성격이란 걸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내 마음속 시기와 질투를 들키지 않기 위해 나를 부러워할 사람으로 포장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누군가를 부러워하면서도, 누군가 나를 부러워할 수 있게 부단히 노력했다. 왠지 내가 누군가에게 부러운 삶이 아니라면, 인정받지 못하는 삶이라면 무의미해 보였다.


   그렇게 점점 진실된 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져만 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 삶을 부러워하는 게 얼마나 모순적인 일인지 알지 못했다. 그들이 나를 부러워하며 느낄 상실감에 대해 전혀 몰입하지 않았다. 그저 내 마음의 빈 곳을 누군가의 질투로 채우고, 또 다른 질투로 비워내기 바빴다.


   어느새 나는 많은 이들에게 부러움을 받을 만큼 멋진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누군가 쉽게 내 마음의 빈 곳을 발견할 수 없도록 정말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그저 어렵지 않게 시작했던 누군가를 향한 질투가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내가 볼품없는 사람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시작했던 질투는 나를 제법 성인(聖人)으로 만든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자꾸만 나는 누군가를 질투하는 일을 무작정 좋은 일이라고 스스로를 속였다. 이미 순수함을 잃었다는 걸 모른 채, 나는 내가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오해를 했다. 하지만 나의 울창한 숲에 나무들이 오랜 극야(極夜)로 이미 모두 시들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비로소 질투는 건강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인에 대한 질투(嫉妬)가 내가 받아온 모든 사랑을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질투를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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