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주 연재
<에세이> 먹고보자 한식뷔페
요즘은 한식뷔페에서 밥을 먹는다. 일하는 카페에서 도보 1분이면 갈 수 있다. 이 곳에서 나는 실속이 무엇인지 배운다. 아저씨들의 점심 루틴을 배우는 것이다. 그들은 시간낭비를 하지 않는게 아니라 할 줄 모른다.
‘먹고보자 한식뷔페’
이름에 걸맞게 일단 메뉴가 무엇이든 먹고 봐야 한다는 사람들이 주 고객층이다. 나도 최근 그 고객층의 일원이 되었다. 카페 주변은 상권이 좋지 않아 흔한 편의점이 하나 없다. 그래서 때로 끼니를 거르거나 사뒀던 컵라면을 먹는다. 엄마나 아빠가 밥을 사다 주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일주일 내내 인스턴트를 먹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동안은 카페와 댁이 가까운 할머니께서 도시락을 매일 싸다 주셨다. 올해 여름은 정말 할머니 밥으로 버텼다. 밥은 이제 저기 먹고보자에서 대충 먹어야겠다. 점점 할머니표 도시락을 다 못 먹고 남기는 횟수가 늘어가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아침과 이른 저녁의 공복을 해결해 줬던 나만의 요리사가 파업을 선언한 것이다. 내가 아무리 배고파도 카페에서 파는 토스트는 잘 해먹지 않는 이유와 똑같다. 해당 음식의 냄새만 맡는 것으로도 배부를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카페를 처음 오픈하고 수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한식뷔페에 다닌다.
오전 11시가 좀 안된 시간에 밥을 먹으러 간다. 이곳 주변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점심시간은 보통 11시 30분 ~ 1시 사이에 다 해결된다. 아직 점심 먹을 시간이 아니었다. 공장, 창고, 트럭 아저씨들이 대부분이다. 식당 내부는 조용하다. 한식뷔페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각종 한식 반찬들이 열 맞춰 준비되어 있다. 낯선 풍경에 괜히 쭈뼛거리며 쟁반짜장도 거뜬히 담을 것 같은 그릇을 챙겨들었다. 10가지는 되는 기본 반찬들을 빠짐없이 나눠 담는다. 김치의 종류만 세 가지가 넘는다. 총각김치, 배추김치, 파김치, 갓김치 등. 갓김치는 있다가도 없고 그렇다. 김치를 지나면 볶음류가 보인다. 가지볶음, 버섯볶음, 호박볶음, 꽈리고추 멸치볶음. 다음은 무침이다. 콩나물 무침, 도토리 묵 무침, 오징어 초무침 등. 가끔은 기본양념의 나물 무침도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기본양념이란 먹었을 때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5초 안에 술술 나오는 양념이다. 소금, 참기름, 다진 마늘, 파. 어지간한 채소는 이 기본양념으로도 쉽게 반찬이 된다. 여태 예시를 들었던 반찬들은 모두 스테디셀러다. 무슨 요일이든 갈 때마다 먹을 수 있다.
나고 자라길 조부모의 손을 거쳤던 나는 가리는 음식이 전혀 없다. 여기 있는 것들 중 단 한 가지도 빼고 먹기 아까워 다 담으려다 보면 금방 접시에 빈자리가 없어진다. 그럴 때 즈음 항상 자글자글한 소리를 내는 조림 코너에 도착한다. 언뜻 학생 때 급식실에서나 본 것 같은 대형 조림 팬이다. 두부조림, 코다리조림, 갈비, 오삼불고기가 주로 돌아가면서 나온다. 때로 조림이 없을 때는 무조건 튀김이다. 생선까스, 감자고로케 등. 소스는 케요네즈(케찹과 마요네즈를 섞은 것)가 고정이다. 케요네즈는 알새우칩만 찍어 먹어볼 줄 알았지 이렇게 아무 튀김이나 잘 어울리는 줄은 처음 알았다. 튀김은 상관없지만 조림은 서브 그릇에 따로 담는다. 자작하게 짭짤한 국물은 꼭 밥에 살살 비벼서 먹어줘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국물 코너인데, 밥솥과 똑같은 솥에 김을 모락 내는 국물이 한가득 담아져있다. 한가할 때는 아주머니가 들어온 인원수에 맞춰 그때그때 퍼다 꺼내주시고, 그게 아니면 셀프다. 감자탕, 소고기뭇국, 순두부찌개, 우거지 된장국 등이 있다. 근데 이상하게 어떤 국물 요리든 다 얼큰하지 않다. 간은 되어 있는데 고춧가루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다. 언제는 하얀 감자탕이 나오는 날이었다. 처음 먹어봐서 특이하다 싶었는데 내 건너편에 앉은 아저씨는 빨간 감자탕을 드시고 계셨다. 사실 고춧가루는 순댓국집의 다데기처럼 국물 코너에서 상시 대기 중이었다. 나는 언제든지 얼큰한 국물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저씨들은 내가 밥을 거의 다 먹어갈 때 즈음 들어온다. 나는 반찬 앞을 서성거리며 집게를 들었다 놨다 하느라 담는 게 오래 걸리는데, 그들은 속전속결이다. 들어오면서부터 훑고, 원하는 메뉴부터 담는다. 조림 코너를 먼저 보는 아저씨, 국 솥의 뚜껑부터 열어 확인하는 아저씨, 오목한 스뎅그릇에 밥과 반찬을 척척 담아 고추장 덜어오는 아저씨. 하루는 아주머니께 라면 하나만 끓여달라는 아저씨도 있었다. 그럼 아주머니는 왜 밥은 안 먹고 라면을 먹냐고 꾸중하며 물을 끓이러 주방에 들어간다. 그들은 모두 친한 사이처럼 보였다. 저번에는 열심히 밥을 먹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손짓하셨던 적이 있다. 사라다가 이제 나왔으니 담아 가라 하셨다. 너무 일찍 오면 음식이 다 안 나온 게 있어. 그 뒤로는 정확히 11시 5분쯤 나와 걸어간다. 한적하던 뷔페 앞이 조금 분주해 보인다. 문 앞에 아저씨들이 줄지어 들어가길래 나도 자연스럽게 꽁무니에 붙었다. 앞에 아저씨는 나를 힐끔 쳐다보셨다.
아주머니께 야무진 인사도 드리고 출발점 앞에 섰다. 나도 오늘은 건너편 조림 코너부터 슬쩍 쳐다봤다. 조림이 아니고 튀김이 있다. 저건 모양새도 그렇고 으스러진 것들도 있는 걸로 보아 감자 고로케일 가능성이 크다. 김치는 다 담지 않는다. 알맞게 익은 총각김치가 제일 맛있다. 총각김치는 물렁하면 꽝인데 여기는 까득까득 씹히는 게 꼭 먹방 유튜버 해삼 먹는 소리가 난다. 콩나물무침은 올 때마다 먹으니 질리고, 나물 종류는 뭐가 있는지 본다. 고사리와 시금치가 있길래 냉큼 담는다. 고사리는 처음 봐서 신났다. 버벅거리던 동선을 나름 자연스럽게 다듬었는데도 앞에 있던 아저씨들이 벌써 자리를 잡고 식사를 시작하셨다. 귀한 점심시간을 밥 먹는 데에 다 쓰지 않겠다는 지혜. 빨리 먹고 남는 시간은 온전히 쉬는 행위로 채우겠다는 실속이 그들을 어디에서나 재빠르게 만든다. 하얀 순두부국에 고춧가루를 세 스푼 넉넉히 넣고 자리를 잡았다. 이제 밥을 먹으면서 괜히 식당 티비에 나오는 뉴스도 언뜻 본다.
여기 한식뷔페에서 제일 바쁜 것은 커피 기계다. 잠시 쉬는가 싶으면 종이컵을 떨어트려 믹스커피를 내려줘야 한다. 아저씨들은 이빨과 입술을 맞대어 쯥쯥 소리를 내며 식사가 끝나는 대로 종이컵을 들고나간다. 계산은 하지 않고 대신 들어올 때 회사명이나 이름을 쓴다. 근처 일터에서는 직원들의 식대를 여기 뷔페 한정으로 제공한다. 아주머니는 장부를 만들어 돈은 추후에 따로 받는다. 나갈 때마다 일일이 계산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들은 카페가 걸어서 1분 거리에 있는데도 믹스커피를 마신다. 어디에 뭐가 있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불필요한 지출은 하지 않고, 아낄 수 있는 지출만 한다. 역시 실속이다. 나도 괜히 믹스커피를 뽑아서 나갔다. 식당 옆 큰 화분을 재떨이로 정해두고 둘러 모인 아저씨들은 담배를 피운다. 그들의 작업화, 작업복이 마치 구하기 어려운 고프코어 브랜드 같다. 나 같은 애송이는 차마 옆에서 같이 피울 배짱이 없다. 혀끝으로 열심히 이빨 사이를 청소하다 적당한 구석에서 담배를 피운다. 아저씨들이 하던 것처럼 한 손에 종이컵과 담배를 동시에 걸쳐본다. 손이 두 개인데도 한 손만 사용하는 것도 그들의 실속 중 하나일까. 한식뷔페 옆 주차장에 트럭이 하나씩 빠져나간다. 나도 믹스커피를 홀짝이며 커피 팔러 돌아간다. 한식뷔페를 갈 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