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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엽 Mar 24. 2024

아내가 죽었습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요?

저는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인 2003년에 아내와 사별을 했습니다


당시 아내는 1년 정도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다가 여러 병원으로부터 회복 불가 판정을 받고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시한부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저희 부부가 바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기적밖에는 없었는데 그때 도움의 손길을 내민 어느 조그만 교회의 도움으로 오로지 신앙의 힘에 의지하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희 부부를 위해 기도해 주시던 목사님은 아내에게 회개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기도 중에 진정한 회개를 하면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신다는 말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아내와 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목사님이 말씀하신 '회개'에 매달렸습니다


아내는 침대에 누워 온갖 기억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회개를 했습니다

지은 죄 안지은 죄 가릴 것 없이 모든 죄를 떠올리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또 구했습니다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그동안 직장 생활에 매달려 신앙생활에 소홀이 했던 죄,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속으로 무시했던 죄, 심지어는 초등학교 때 마음속으로 짝꿍을 미워했던 죄까지 남김없이 회개했다고 합니다


저는 지금도 병상에 누워 핸드폰으로 일일이 전화를 걸며 마음에 걸린 모든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회개하던 아내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러면서 뭘 더 어떻게 회개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리던 아내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리고 아내는 정확하게 의사들이 예고했던 시간만큼 살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저는 회개가 무엇인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참된 회개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아내와 저는 정말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회개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내는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비단 사별한 제 아내뿐만이 아니라 우리는 흔히 회개하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교회에 나가시는 분이라면 한 주도 빠짐없이 듣는 이야기가 '회개합시다'라는 소리일 것이고 교회에 잘 안 나가는 사람이 어쩌다 교회에 나가는 이유 또한 아마도 지은 죄를 '회개'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합니다


예수님이 3년 내내 전하신 내용 또한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시는 말씀이었으니 기독교인들에게 회개만큼 중요한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회개가 무엇인지, 진정한 회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기독교인들 또한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회개하고 반성하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래서 회개란 무엇인가 잘못한 부분을 뉘우치고 반성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 속 예수님이 말씀하신 회개라는 말은 단순히 그런 뜻이 전부가 아닙니다


성경 속 회개라는 말은 ‘메타노이아’라는 헬라어의 번역인데 영어 성경이 이를 repent로 번역했기에 우리말 성경은 자연스럽게 메타노이아를 '회개'라고 번역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속의 '메타'는 무엇인가를 뛰어넘는, 초월하는 의미를 지니고, ‘노이아’는 이성, 정신, 생각, 판단, 개념등을 뜻하는 헬라어 '누스'라는 말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그러므로 ‘메타 노이아’라는 말의 근본적 의미는 기존의 개념, 관념, 생각, 판단 등을 초월하는, 뛰어넘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메타노이아'라는 말이 맥락에 따라서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기존의 잘못을 뉘우치고 돌이킨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보다 근원적 의미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관점과 가치관을 초월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기존에 이러이러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생각했던 것을 관점을 바꾸어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메타노이아는 한 마디로 관점의 변화, 가치관의 전도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예전에는 돈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돈을 벌기 위해서 온 인생을 바칠 만큼 혈안이 되었던 사람이 어느 날 가치관이 바뀌어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이제부터는 돈을 조금 덜 벌더라도 가족과 시간을 보내거나 남들을 돕는 일에 재미를 가지게 되었다면 이 사람은 ‘메타노이아’ 즉 회개를 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메타노이아라는 말은 이렇게 죄를 뉘우친다 라는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기존의 가치관이 획기적으로 변하는 것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보다 일반적인 시각일 것입니다



가치관이 변하면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리게 됩니다.

마치 노란색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온통 누렇게만 보다가 안경을 벗고 선명하고 밝은 세상을 바라볼 때처럼 세상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이런 종류의 극적인 변화를 체험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사랑을 하게 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평소 가슴 졸이며 썸을 타던 그 사람으로부터 사랑의 마음을 확인한 순간부터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그녀를 만나는 곳 100 미터 전부터 하늘의 구름이 솜사탕으로 변하고 어디 한 번 뛰어올라 볼까.. 막 그러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인해서 세상이 변하는 '메타노이아'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놓치기 쉬운 사실이 있는데 이때의 이러한 극적인 변화는

내가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지 실제로 세상이 그렇게 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즉 그 새로운 세상은 우리가 사랑에 빠지기 전에도 늘 그런 모습으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메타노이아의 정확한 뜻을 알게 되면 회개하라 라는 예수님의 이 말씀 뒤에 곧바로 나오는 '복음을 믿으라'는 말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마가복음 1:15)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헬라어로는 유앙겔리온인데 '유(좋은)'와 '앙겔리조(알리다)'라는 말의 합성어로 써 말 그대로 '좋은 소식,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이 복음이라는 말은 애초에 기독교에서만 쓰인 교회 전문 용어가 아니었습니다


복음(유앙겔리온)이라는 말은 당시 헬라 문화권에서는 흔하게 쓰인 말로써 전쟁에서 이겼다는 소식, 즉 승전보가 바로 '유앙겔이온'입니다.


당시 전쟁은 주로 (성을 무너뜨리는) 공성전이었는데 적들은 성을 빼앗기 위해 성을 포위하고 위협을 가합니다


그렇게 되면 평소 농사를 짓고 일을 하던 각 가정의 남자들은 무기를 들고 적과 싸우기 위해 나서고 부녀자들과 노약자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성 안 깊숙이 숨습니다.  


어둡고 침침한 피난처에 벌벌 떨며 숨어서 기다리던 가족들은 누군가가 밖의 전쟁의 승패 소식을 전해줄 때까지 숨죽이고 기다립니다. 


참으로 불안하고 답답한 시간일 것입니다.


만일 전쟁에서 졌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그야말로 끔찍한 절망입니다.


모두들 끌려 나와 여자들은 강간당하고 아이들은 노예로 팔리고 노인들은 무자비하게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만일 누군가 전쟁에서 이겼다는 소식을 전해 준다면 숨어있던 모든 사람들은 뛸 듯이 기뻐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그야말로 죽었다가 살아난 기분일 것입니다 


이 승리의 소식이 바로 복음, 말 그대로 기쁜 소식 유앙겔리온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음이 코 앞에 있는 사람에게 전하는 승리의 소식을 지금 갈릴리의 평화로운 어촌 마을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원래 승전보는 믿는 것이 아니라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승전보를  '믿으라고' 하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복음을 '믿으라'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금 예수님의 메시지를 듣고 있는 사람들이 피난처에 숨어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전하시는  이 승전보는 눈에 보이는 전투에서의 승리소식이 아니기에 평화로운 환경 속에 있는 그들에게는 생뚱맞은 메시지였을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우리가 교회에서 복음이라는 기쁜 소식을 듣고도 아무런 느낌이 없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별다른 감흥이 없는 메시지였을 것입니다


그러니 '복음을 믿으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 승전보는 믿는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믿으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회개' 즉 메타노이아를 강조하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전하시는 승전보, 복음은 회개하지 않으면... 그러니까 메타노이아 하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 없는 승전보입니다


진리에 대한 관점을 초월하여 가치관을 새롭게 해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승전보인 것입니다 

결국 회개해야만, 메타노이아 해야만 복음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마가복음 1장 15절의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라는 말씀이 완벽하게 정리가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말의 뉘앙스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듯이 저 멀리 있던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을 필두로 웅장하게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는 개념이 아니라 


사실은 이미 바로 우리 앞에, 우리 옆에 손에 닿을 수 있는 곳에 이미 존재한다는 말이고 

이 하나님 나라를 누리기 위해서는 회개하여, 관점과 가치관을 달리하여(메타노이아 하여) 

하나님 나라를 새롭게 보기만 하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쁜 소식, 즉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이 메시지(복음)를 전하시며 늘 우리의 믿음을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늘 '너희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늘 성취하고 얻어 내는 데에 익숙합니다

열심히 노력하여 그에 대한 대가를 얻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또한 칭찬받는 미덕입니다


착한 일을 해서 

그에 대한 보상으로 천국을 가고

예수님을 열심히 믿어서 구원을 얻습니다


행여라도 나의 게으름으로 인하여 구원을 못 받을까 우리는 늘 불안해하며 우리의 신앙생활을 돌이켜 보게 됩니다

늘 회개하고 반성할 것을 찾게 됩니다


여기에는 하등 잘못된 것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2000년 전 예수님 시대에도 사람들은 똑같았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열심히 믿어서..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켜서..

십일조와 헌금을 성실하게 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생활을 제대로 행하지 못하면 재를 뒤집어쓰고 옷을 찢으며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그러한 사람들을 향해 말씀을 전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예수님의 전하신 복음...

예수님이 전하신 승전보는 기존에 그들이 알고 있던 것처럼 누군과와 치열하게 싸워서 쟁취하는 그런 종류의 승전보가 아닙니다  


경기로 따지자면 누군가를 패배시켜야만 얻어지는(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그러한 승리가 아니라 마치 마라톤처럼 누구나 완주하면 승자가 되는 그런 게임과도 같은 것입니다


누구나 경기의 규칙을 이해하고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면 메달이 주어지는 그러한 승리인 것입니다.


즉 승리를 믿음으로 확신하고 참여하는 모든 자의 믿음대로 거저 주어지는 승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남과 경쟁하여 그들을 패배시켜야만 성공이 주어지는 그러한 삶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대로 모두가 승리하는 마라톤 경기라는 사실, 이 사실 자체가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복음을 복음으로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다른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믿음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구원이 바로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회개하여, 메타노이아 하여 관점을 달리하여 그 진실을 바로 깨닫게 될 때, 믿게 될 때 누구나 구원을 맛보고 누릴 수 있다는 메시지가 곧 복음,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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