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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t May 08. 2024

안녕하세요 누나

그리곤 탈퇴했다. 나는 자주 어떤걸 열심히 하다가 현타를 느끼곤 했다. 그건 그게 어느새 재미보다는 '어떤 소득을 불러오지 않는 존재'로서 자리잡기 시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삶의 많은 순간을 조건부로 살아왔다. '이것만 끝내면' '이걸 하면 더 좋은 미래가 있을거야' '이걸 하면 돈을 벌 수 있으니까' 그런 삶을 30년 넘게 살아온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현생의 회사원으로 돌아와 여느때처럼 권태롭고, 가끔 날 죽이고 싶을만큼 경멸을 마음속에 눌러담으며 꾸역꾸역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회사에서는 매주 금요일마다 서울에 가서 교육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했다. 그 수업조차도, 학문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갔던 것이었다.


난 가끔 군중들 한가운데 서있는 나에게서 자유로움을 느끼곤 했다. 익명성의 그늘에 감추어져 내가 어떤 행동을 해도 그들에겐 out of sight가 되는게 좋았다. 기차를 타고 가면 약간의 시간이 남아서, 스타벅스 같은 곳에서 망중한을 즐기곤 했다. 그러던 중 누군가에게 카톡이 왔다.


"안녕하세요 누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 지인이 아니라 생각이 나지 않아 물었다. "누구지? 모르겠는데"

그러자 그는 대답했다. "아 기억나실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방송하실때 그때 한참 프렌즈 대본 보고 계시길래 영어로 대화했었어요"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몇번 영어자판을 치곤 했던게 흐릿하게 기억이 났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내 동의를 구하지 않고 뜬금없이 연락을 취한게 불쾌해서 3시간동안 안읽씹 한 상태였다.

그는 집요했다. "저는 오늘 다니던 회사를 퇴직해서 짐정리하고 당분간은 좀 쉬려구요. 차도 팔고요" 내가 물어보지 않은 정보였다. 어쩌면 자신의 백수 처지가 한심하지만 있어보이려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수도 있단 생각이었다.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학창시절을 미국에서 보내다가 한국으로 들어왔어요. 이제 미국 갈일은 없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 살고싶어요." 라고 그는 말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나에 대한 호기심은 간헐적이었다. 만약 그가 내게 매일 연락을 했다면, 그가 내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든지 어지간히 내가 궁금한가보다 답장은 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의심에 그는 의심을 종결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내 연락처는 아프리카 아이디였던 걸로 검색하니, 내가 운영중인 스마트스토어를 통해 연락처가 검색된다는 걸 알았다.


그는 그 뒤 몇번 연락이 왔다가, 그마저도 내가 읽지 않자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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