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재직한 지 10년. 대학 졸업 후 한 직장에서 계속 다녔더니 이렇게 됐다. 하지만 회사에서 겪는 불합리함은 이해할 수 없는 게 많아서, '적어도 다른 회사를 가면 징글징글한 지금 얼굴은 안 봐도 되니까' 이직을 준비했다. 내가 원했던 조건은 서울일 것과, 연봉을 1천만 원 올리는 것, 그리고 지금 일하는 상위부처가 아닌 다른 부처일 것이었다.
나와 일하는 상위 부처는 사람 by 사람이었지만, 대부분 권위의식이 강했다. 정부부처를 1에서 끝까지 나레비 세워보면, 하급에 속하는 부처임에도 그들의 프라이드는 대단해서 요구자료를 당일 전화해서 당일 제출하란건 예사였다. 주말에 보좌관이 전화한다고 주말에 일하지 않는 공공기관에 전화해 자료를 요구하기도 했고, 단톡방을 파서 실시간 업무가 공유되게 하는 일도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인격적 모독이었는데, 본인이 해야 할 일을 내게 떠넘기면서 '이 업무 잘 모르시죠?'이런 밑도 끝도 없는 무시 발언을 내뱉는 식이었다.
담당 주무관이 바뀔 때마다 '그래도 전보단 낫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했지만 그런 기대가 무산될 때마다 이직을 준비했다. 그래서 가게 된 곳은 식품 분야로 지금보다 기관이 작은 협회였다. 상대적으로 기관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앞서 말한 세 개의 조건이 충족되면 비싼 서울의 집값을 감당하고서라도 옮기고 싶은 마음이 컸다.
회사는 양재에 위치해 있었다. 하지만 역에서 내려 10분을 걸어가야 하는 위치에 있었고 날은 후덥지근했다. 늦지 않으려고 서둘렀지만 도착할 시간은 약속시간인 2시 30분이었다. 어제 전화 온 직원은 피티자료를 준비해 오라고 했고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대표가 들어왔다. 그는 숨좀 돌리라고 말하며 벤츠머그컵을 들고 사람 좋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식품과 관련된 업무를 한걸 읊었다. 협회는 유통 쪽이어서 콜드체인에 관한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내가 간 법인은 콜드체인이랄 게 없어 산지의 제품을 모아 컨베이어 벨트에서 브릭스를 측정하고 박스에 담아 배송지로 운반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대화 내내 경청하는 태도를 보였고 그건 '여기 입사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을 갖게 했다.
대표는 면접 끝에 경영지원실장에게 궁금한 게 있음 질문하라고 했다. 그즈음했던 대화는 '근데 결혼했어요?'였다. 직원의 결혼 유무가 왜 중요한진 모르겠으나 사람들은 그런 걸 '별다른 뜻은 없고 궁금해서 묻는다'는 투로 묻곤 했다. '미혼입니다'라고 대답하며 이력서에도 쓴 그걸 왜 굳이 묻는 거지 의아할 찰나 '비혼은 아니죠?'라고 물었다.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어색한 표정으로 떨떠름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비혼이라면 어쩔 텐가. 나는 비혼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왜 대답을 시원하지 하지 못했을까, 그건 한국사회에서 결혼하지 않은 여자에게 씌워지는 프레임 때문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