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거기에 대응할 필요가 없는 거라고
그녀는 방송국에 속해있다 최근 프리로 전향했다. 만나서는 누가 누가 회사에서 더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었는지 배틀을 했는데, 내가 말문을 열었다.
'본인이 잘못한 사실을 가지고 나 때문에 그랬다며 물건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는 거야. 인격모독발언도 서슴지 않았지'라고 말하자 그녀는 말했다.
'욕도 했어?'
'아니 욕은 안 했는데'
라고 하자 그녀는 '우린 욕이 일상이었어. 야 시발 기사를 이따구로 써온 거야? 하여튼 여자들은 이래서 안 돼라며 성차별 발언도 일상이었지'라고 말했다.
'미친 꼰대새끼 아냐?'라고 말하자
그래서 나는 무서워서 가만히 있었는데 선배 언니는 '여잔데 어때서요?' 맞받아 치더라니까. 결국 그 언니는 곧 다른 데로 갔다고 했다.
'그런 꼰대가 젤 오래 있더라'라고 말하니 '맞아. 나 퇴사하고 보니 아직도 있더라'라고 말했다.
그녀가 만나는 사람이 있는데, 외모가 출중한 친구라 친구는 내게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했고, 역시나 몸이 매우 좋은 현실에서 볼 수 없는 체격이었다. 그러던 도중 그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는 지체 없이 스피커폰으로 받았고 그는 말했다.
'아니~ 역삼 지나는데 시간 되면 잠깐 볼까 하고 연락했지'라고 그가 말하자 친구는 말했다.
'뭐야~ 여자랑 같이 있는 거 아니었어? 뮤지컬 누구랑 봤는데'
'여자랑 봤지~ 어머니랑.'
'거짓말. 나는 친척 와서 무항생제 한우랑 된장찌개 먹고 있어. 목소리 들려줄까?'
'안녕하세요'라고 하자 그도
'안녕하세요'라고 말했다. 남녀 간 대화는 이렇게 물 흐르듯 흐르는 것이었지 새삼 느꼈다.
'근데 친구가 회사 그만두고 싶대'라고 친척이 말했다.
'왜 그러신대? 철밥통인데'라고 그가 말했다.
전화를 끊고 그의 직업을 묻자 레깅스를 판다고 했다. 사업으로 자산 10억을 달성했다며 그에겐 오래된 여자친구가 있는데 그 여자와는 결혼까진 아니라고 했다. '왜?'라고 묻자 '자기가 버는 돈 같이 쓰기 싫대'라고 굉장히 현실적인 답을 했다.
'그럼 넌? 이 남자랑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 거야?'라고 묻자
'그냥 보고 있으면 좋아. 내가 말하거든. 넌 내게 개그맨이야. 얼굴만 봐도 웃겨. 그냥 같이 있으면 좋으니까.'
라고 그녀는 말했다.
'근데 애인은 따로 있어'라며 사진을 보여줬다. 찼는데 못 놓겠다며 돌아온 남자를 다시 받아준 모양이었다.
'되게 헌신적이야. 필요한 거 있으면 돈 없는데도 쓰라고 다 주고.'
'야 그게 뭐야'라고 하자
'난 좋다는 사람 안 내쳐. 그리고 훈이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고'라고 말했다.
애인이 있는 남자를 좋아하며 '이러면 그 사람의 여자 친구에게는 상처이고 나랑 연락한 후 지워져야 하는 통화기록도 싫다'며 연락을 끊어낸 나와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친척 같은 스타일이 있고 나 같은 스타일이 있는 것이다.
'근데 헌신적인 사람이 내게 해주면 나도 그만큼을 해줘야 하잖아.'라고 말했다.
'그냥 받아 수야. 그 사람이 잘해주는 건 그 사람의 감정이야. 네가 거기에 대응할 필요가 없는 거라고. 너한테 잘해주는 게 그 사람의 행복이야'라고 말하는 그녀가 철학자인 줄 알았다. 나는 타인의 감정까지 내 감정이라 생각하거나 은연중에 동일시하려고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