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리 애쓰는건데

by 강아

기안을 올리고 퇴근하니 다음날 또 결재 안 해줄 거란 걸 알았다. 아침에 보기 싫은 상사에게 인사해야 하는 것만큼 곤욕이 있을까. 하지만 최대한 감정을 빼고 인사만 하자고 생각하고 '안녕하세요'라고 했다. 핸드폰을 보며 '응'이라고 할 만큼 할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어제 올린 기안을 봤다는 걸 짐작했다. 부러 커피 한잔을 타고 오니 그가 불렀다. 예산변경에 견적을 첨부한 경험이 지난 십 년간 없는데도, 그는 새 과업이기 때문에 견적을 넣으라고 했다. 나는 계속해서 '그런 적 없는데요'라고 했고 그는 '그냥 하라고'했다. 그는 본인 할 말을 하고 잠근 화면의 비번을 풀었지만, 그 후에 할 일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또 큰소리가 났지만 이제 될 대로 돼라였다. 본인이 틀렸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뒤이어 복수의 일환으로 억지 부리는 게 유치원에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결재가 나지 않았다. 이쯤 되자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어차피 결재 안 해줄 마음인 사람에게 계속 기안해야 무슨 소용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일을 안 했다. 태업을 하며 있으니 그는 화장실을 가며 담배를 피우러 가며 날 관찰하는 게 모니터 뒷 화면으로 보였다. 어느 날 사무관이 와서 '거울도 세 개 붙여놓고 모니터보호 스티커도 붙이고 그래요'할 만큼 자리는 바로 옆이었고 파티션 위로 얼굴을 올리면 내가 뭘 하는지 볼 수 있는 구조였다. 다른 사람들이 그런 그의 시선에 모두 보호스티커를 붙였지만 나는 붙이지 않았다. 감시하는 그의 눈빛이 경멸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감시하면서, 사무관에게는 '직원 모니터 안 본다'라고 하는 그의 거짓말이 너무 뻔뻔해서 혐오스러웠다.


이제 정말 한계에 다다른 것 같아서 점심에 집에 와서 밥을 먹으며 생각했다. 성취도 없고 능력이 없는 상사 밑에서 일하는 것도 이골이 났다. 여기서 싫다고 말하면서 계속 붙어있는 나도 싫었다. 언제까지 버텨야 될까라고 생각하자 산소호흡기가 없는 채로 물 안에 잠겨있는 기분이었다. 생각은 아버지에게로 옮겨가서 그렇게 가족을 부양하느라 화를 낼 거면 그는 가족을 만들지 않아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유년부터 선생을 부정하고 교수를 부정했던 나는 상사와도 불화했다. 처음에 이 사람은 다를 거야 시작했던 한 달도 육 개월이 넘어가면 그 또한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이기적이었고, 유아적인 행태에 말 옮기기까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이권다툼이나 힘겨루기는 관심도 없었지만, 혼자 고고한 척 다녀도 마음속에 깊이 새긴 회사혐오와 나아간 자기혐오는 지우기 어려웠다.




요가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나는 퇴근 후 생리대를 사고 김밥 한 줄을 포장해 와서 우걱우걱 먹었다. 김밥은 오래된 재료에서 풍겨 나오는 군내가 났다. 피를 흘리는 몸은 무겁기 짝이 없었다. 오늘 기분이 나쁜 게 멘스 때문인 건가 일 때문인 건가 앞뒤를 분간하기도 어려웠다. 감흥 없이 먹다가 간 수업은 업독과 다운독을 끊임없이 반복했고 너무 힘들어서 죽을 거 같았다. 얼굴은 홍조증이 있는 사람처럼 붉어졌고 땀은 어느새 반팔을 적셨다. 그 순간만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서 동작의 되고 되지 않음에만 집중할 수 있었지만, 문득 환기타임이나 쉬운 동작마저 떠오르는 회사 생각을 다 죽이고 싶었다. 그건 나를 죽이고 싶은 마음과 동일했다. 정수리로 중심을 잡아 물구나무서기 하는 동작을 절대 할 수 없었지만 악으로 받혀가며 했다. 나는 일상에서도 요가에서도 너무 애를 많이 쓰는 사람이었다. 그걸 인지하자 그런 내가 연민이 들어 눈물이 나왔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건 회사를 다니는 게 아니고 하루종일 요가를 하는 삶이면 좋을 것 같았다. 어떤 것이든 그게 회사만 아니면 됐다. 요가수업엔 늙은 사람 날씬한 사람 중년의 사람 학생 등 다양한 사람이 있었지만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거나 피상적인 인사만 하고 나왔다. 평범하게 살다 가는 게 죽기보다 싫다. 내일 또 일어나서 회사를 가야 한다는 일상의 연속성이 내겐 너무 버겁다. 싫은 건 너무 싫고 좋은 건 너무 좋아서 남들이 '그래도 참고 다녀야지'라는 게 내겐 그 강도가 아니고 경멸의 정도까지 왔다. 생각에 매몰되어 있는 게 너무 싫지만 일상의 순간마다 생각이 날 잠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