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의회가 있는 날이었다. 개선방안 논의자리여서 청 주무관이랑 내 상위기관 계가 모이는 자리였다. 교수가 전화해서 혹시 회의실이 있냐고 해서 미리 예약해 놨다고 말했다. 그는 고맙다고 말했다. 우리 쪽에서 회의를 진행한다고 했더니 상사는 회의자료를 준비해 놓으라고 했다. 회의는 그쪽이 주관하는 거고 우리는 수검기관인데, 남들이 듣기에 본인이 지시하는 입장인걸 부러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수검기관이어서 안 해도 된다가 아닌 보고서에 개선방안이 있고 그에 대한 의견을 마련하는 자리고 해당 보고서는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해서 본인도 내용을 다 알고 있는 건데 그냥 일 시키고 싶은 거다. 물론 나도 그에 대한 답변을 다 알고 있다. 그가 쇼업을 한다는 걸 눈치채자마자 '또 시작이네' 생각이 들었다.
뒤이어 그는 본인이 계장과 통화하는데 '청 자료를 이미 내게 전달했다고 하던데?' 또 반말이었다. 상사는 반말이나 ~냐?로 끝나는 말을 자주 썼다. 그런 건 나 아닌 다른 직원에게도 다 그러니 그러려니 하지만 전달했다는 그 자료는 차년도에 받을 수 있는 자료였다. 또 거기서 반박하면 본인이 틀린 게 되니까 그냥 가만히 있었다. 예전에 틀린 걸 반박했다가 자존심에 스크래치 받고 내가 하는 말에 어떻게든 반박하려고 하는 꼴을 보니 그냥 가만히 있는다. 어차피 나중 되면 뭐가 진짠지 알게 될 것이고 도둑이 제 발 저리겠지.
포워딩한 자료는 언제까지 수신확인 되어있는지 확인했더니 역시 보지 않았다. '쫄리면 보겠지'하고 하루 회사를 안 나갔더니 그날 수신확인이 되어 있었다. 결국 본인이 팔로우업 하면 되는걸 하위직원 조지기는 지난 십 년간 겪어와서 무뎌질 만도 한데 아직도 열이 받아 죽겠다. 회사를 가지 않는 하루동안 일정으로 바빴더니 콜이 왔다. 무음으로 해놓고 다른 일을 하고 있어 못 받았더니 카톡이 왔다. 정말이지 이럴 때면 카톡도 다 탈퇴해버리고 싶다. 내 사생활을 보는 것도 싫어 기본으로 해놓았더니 회의 몇 시냐고 굳이 물어본다. 휴가를 낸 날에 굳이 전화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포워딩한 메일에 회의 시간을 적어두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휴가 때 본인이 업체한테 전화해도 될 상위가 시킨 일을 굳이 전화했던 일이 있었다. 그와 같은 일은 예전엔 더 비일비재했다.
아침에 출근해서 얼굴을 볼 생각 하니 곤욕스러웠지만 일단 출근했더니 외근 중이었다. 하지만 역시 출근 전에 카톡으로 사진을 띡 보내왔다. 읽씹하고 회사에 도착했더니 전화가 왔다. 그는 외근 중이라며 '그거 업체에 전화해서 가능한지 타진해 봐'라는 내용이었다. 앞서 '미안한데'라는 서두가 없었으면 정말 화날뻔했다. 그렇게 업체한테 과업지시를 하니 복귀해서는 '이따 계장 올 때 설명해야 하니까 오늘까지 달라고 해'라고 한다. 그럼 처음에 그렇게 말할 것이지 이번주까지 요청해 놓았었다. 나조차도 당일 자료 요구받으면 화나는데 이런 용역을 수행하는 업체도 어지간하겠다 싶었다. 업체는 바로 자료를 보내왔고 회의가 시작됐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 상사는 또 카톡을 보내왔다. 타 회의에 그가 들어가 있는 중이었다. '다과는?' 물론 상위가 함께하는 회의이고 주재하는 쪽이 내가 아니어도 그런 건 관행으로 수검기관이 커피를 사다 날라야 하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호의로 회의실을 빌려준 건데 커피준비까지 하기가 싫었다. 회의실 빌려달라는 교수도 내게 고맙다고 말했는데 그가 무슨 권리로 차를 준비하라 시킨단 말인가. 하지만 '예'라고 했다. 다과를 준비하기 위해선 회의자료를 첨부하여 예산과목과 금액을 적은 기안을 올려야 했다. 하지만 당면한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예산변경 건도 있었고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 상위를 독촉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4분기에 들어서 낙찰차액을 활용한 신규계약도 해야 했고 수의 건이라 과거절차와 어떻게 바뀌었는지 유관부서에도 물어봐야 하고 연말까진 수행이 어려우니 이월이 가능한지도 알아봐야 했다. 차를 준비하는 그런 의전 같은 건 예전부터 이어져오던 악습이었다. 그들이 우리 의사를 물어보러 오는 건데 왜 차까지 준비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돼서 교수가 어떻게 하는지 보려고 가만히 있었더니 교수가 물었다. '차장님 음료 뭐 드시겠어요' '허브티요' 그는 '넵'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상사에게는 음료가 준비되었다고 했다.
시간 맞춰 들어가니 타 회의에 갔던 상사는 들어와 있었고 내 몫으로 마련된 차를 그의 것으로 알고 마시려고 하는 차였다. 교수는 담당주무관과 나만 들어오면 된다고 말했던 회의지만 주무관은 답변이 미흡할 걸 대비해 계장과 같이 왔고 내 상사도 내 답변이 미충분할 걸로 파악됐는지 자기가 알고 있다는 지식을 뽐내려고 하는지 동석했다. 차는 한잔이 모자랐고 그거 드시라고 말했다. 별 중요하지 않는 것에 신경 쓰는 행태에 나는 거부감이 심했다. 그런 의전 같은 걸 중시하는 상사와는 나는 상극이었다. 예전에도 그런 사람과 트러블이 심했고 지금 상사도 결국 옛날사람이었다. 어쨌든 회의는 시작되었고 상사는 교수의 말을 끊고 자기 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 점수가 잘 받은 점수가 맞는 것인지' 묻자 교수는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동석한 담당 주무관이 대답하기 기다렸다. 교수도 오늘 자리가 불만이 폭발할 자리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안건은 6개였는데 미리 회의자료를 읽었을 때도 4개는 수용가능했지만 2개는 불가였다. 평가기관 쪽에서 데이터를 주지 못하는걸 우리의 공표데이터와 상세데이터가 일치하지 않다는 의견이었고 우리는 상세데이터를 받지 못하는데 당연히 공표할 수가 없었다. 현장의 의견이 상세데이터를 달라는 의견인걸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상위에서 한쪽은 데이터를 틀어막고 있으면서, 한쪽은 공개하지 않는다며 점수를 깎는다는 행태도 이해할 수 없어서 나는 회의 전부터 열받아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강하게 의견을 피력했을 것이었다. 상사는 '기존에 주던걸 왜 안 주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내가 출장을 다녀와서 그에게 보고한 내용이었다. 그가 다녀오지 않은 출장이라 내가 어떤 수모를 겪고 돌아왔는지 그는 그가 직접 겪지 못했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기존에 타기관 선례로 주던걸 원데이터기관이 제공을 반대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말했다. 데이터를 활용하라고 권장하는 기관에서 공개하지 않는 기조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담당주무관도 관련부처가 그렇게 기조를 바꿨을 것이라는 애매한 답변을 했다. 나는 회의 중간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단위무응답 응답률 제고방안 마련도 수용불가였다. 휴폐업을 제하고 조사해야 하는 게 맞지 않느냐는 취지였는데, 조사시점과 응답시점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조사시점에는 운영을 하고 있던 업체가 응답시점에는 폐업을 하는 경우도 생긴다. 전수에서 20%가 응답을 하지 않는 조사 특성상 가중치를 넣어 결괏값을 도출하는데, 이를 제하고 조사하게 되면 시계열이 흔들리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2개는 개선방안에서 지우고 회의는 끝이 났다. 돌아와 나는 마음이 조급해서 예산변경건을 기안했다. 업무를 깔아뭉개지 않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건 내 장점이다. 계장과 담배 피우고 돌아온 상사는 '뭐야'라고 말하며 내가 그의 자리로 오기 기다렸다. 본인이 아쉬울 땐 직원자리로 와서 말하면서 자리로 오라는 행태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러 가지 않았다. 그랬더니 '이거 빼라고 했는데 왜 넣었어? 추가된 과업은 왜 한 줄밖에 안 넣었고. 결재라인은 왜 전결이고?'라고 말했다. 빼라고 한건 다른 거 다 수정했는데 한 개 수정 안한걸 그가 발견한 것이었고 추가과업은 말 그대로 내용이 한 줄밖에 없어서 그랬고 결재라인은 내역 간 변경일 때는 전결이었다. 그냥 내가 하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거다. 하지만 나도 그가 마음에 안 든다. 관계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좋게 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가 싫다. 그가 기싸움을 하는지 뭘 하는지는 관심 없다. 나는 그냥 싫은 건 싫다. 그가 만약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기안을 수정해서 상신했다면 나는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돌려 말하는 그와 확정적으로 말하는 나, 권위를 세우고 싶은 그와 그런 게 없으면 더 잘할 수 있는 나. 방법은 퇴사밖에 없고 나는 오늘도 절망적으로 요가를 했다. 그래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아 또 얼마간 공부를 했지만 그 공부마저 집중할 수 없어 타자를 팍팍 두들기는 게 요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