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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 Oct 28. 2024

잘 못하는 건 관계 맺기요

여느 학생처럼 중간에 그만두고 싶다던가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학원은 참 많이 옮겨 다녔다. 자만 어린 마음으로 더 나은 선생님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이는 마치 학원을 쇼핑하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1학년때 영턱스-정을 즉흥으로 치고 있으니까 한 남자애가 내 옆자리에 앉아 같이 음악을 듣곤 했다. 굉장히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내 손가락에서 음악이 나온다는 것은 마법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 아이의 이름이 생각은 나지 않지만, 그때의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여고 시절 굉장히 웃긴 체육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선생님은 체육 시간을 십분 남겨놓고 내게 강당에 있던 피아노를 연주하라고 하고선 다 같이 그 음악을 들었다. 나는 그때 타인들 앞에서 연주한다는 것의 기쁨을 알았다. 남들 앞에 선다는 것은 어색하지만 나는 그 순간이 좋았다.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고 그들에게 '어떠한 것'을 전달해 줄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이었다.



한 가지 잊을 수 없는 순간은, 학교를 마치고 입시학원에 가기 전 설레는 마음으로 피아노학원을 가던 일이다.




중학생 때는 선생님의 촉망을 받는 학생으로 분했고 고등학생 때는 착실히 반장을 하며 맡은 바 소임을 다하려 하는 인재였다. 그녀가 못하는 것은 바로 친구관계였다.


수학여행을 가던 때 아무도 그녀와 짝을 하지 않으려 해서 반의 왕따였던 a와 짝을 했다. 왕따끼리 짝을 한 셈이었다. a는 약간 사 차원적인 행동을 하여 미움을 받게 되었고 그래서 각 반의 장기자랑이 있었던 때 반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녀를 내보내고자 했다. 그들 무리 중 누구도 남 앞에 나가 창피함을 당하고 싶으니 네가 나가라는 폭력의 일종이었다. 그녀는 춤을 췄고 왠지 그 상황의 끝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그런 수학여행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더불어 친구관계란 이처럼 의미가 없는 일이구나 하고 더더욱 공부에만 매진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녀가 고등학생 때는 더더욱 외톨이가 되었다. 학교와 집이 가까워서 점심은 학교 급식을 먹고 저녁은 석식시간을 이용해서 집까지 나갔다 왔다. 집은 오분 거리였고 가끔 친구들이 밖으로 음식을 사 먹으러 나올 때 마주치기도 했다. 그녀는 집에서 밥을 먹고 그 시간 즈음에 하는 여섯 시 내 고향을 멍하게 보다가 시간에 맞춰 학교로 되돌아가곤 했다. 답답하단 생각은 별달리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당연히 그 행동을 반복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고, 우직하게도 계속했다. 학교와 야간자율학습, 학원까지도.



그 당시 그녀는 매우 이기적이었기 때문에 반장이란 신분으로 반 아이들에게 야간자율학습시간에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친 적이 있다. 소리를 친다는 것은 부정적 행동이었다. 그냥 말로 해도 됐는데 갑자기 짜증이 나서 소리를 친 것이다.


"조용히 하라고!"


당시 학우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며칠 뒤 있는 학급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된 쪽지 쓰기 시간에 그녀는 학급에 문제가 되는 학생으로 찍혔다.


반장이 문제아가 되다니.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았다.



힘든 시기는 굉장히 많았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지 못하면 추락하고 말 거라는 생각은 더더욱 자기 자신을 몰아가는 행태로 나타났다. 학교에는 특별반이라는- 전교생 중 오십 명 만을 뽑아 따로 독서실을 마련해 주고 교육을 하는- 제도가 도입되었고 그 반에 들어가기 위해 정말 노력했다. 정말 들어가고 싶었다. 왜냐면 야간자율학습은 필수였고 어수선한 반 분위기에서는 공부가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들어가서는 선택된 자들만의 우월의식을 은근히 즐기게 되었다. 그때부터였을까. 그녀는 겸손을 미덕으로 삼으며, 내면으로는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면모를 보였다. 예를 들면


"넌 특별반이라 좋겠다."


"에이, 뭘 너도 조금만 더 하면 들어올 수 있을 거야."


라는 대화의 이면에는 한 사람의 우월의식과, 또 상대방을 생각해 주는 척하는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특별반은 수능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그녀는 내신을 포기했다. 그리고 수능을 망쳤다. 수능이 끝나고 다음날 간 학교에서 그나마 공평한 사랑을 나누어주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던 선생님은


"b야 시험 잘 봤니?"


라고 물어봐 주었고 그녀는 그 대답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집안에서도 성적표가 나오는 날 집안은 난리가 났다. 아버지는 이것도 성적이라고 받아왔냐며 불같이 화를 냈고 그녀는 그 모습에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는 모습이 겹쳐 보였다. 무서웠고, 도망치고 싶었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나오게 된 결과가 형편없자 그녀도 될 대로 됐으면 싶었다. 어려서부터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그녀의 아버지 때문인지 몰라도, 그녀도 빨리 사회에 나가서 돈을 벌고 싶었다. 대학에 가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면 남들이 다 가야 된다고 말하니까 그 이유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대학에 가면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겠지 하는 부차적 이유도 있었다. 애초부터 목적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빨리 돈을 벌어 독립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만 있었다. 한바탕 일이 있고 집 근처에서 아줌마들과 부업을 하고 있었는데 어김없이 전화가 와서는


"지금 때가 어느 땐데 그 짓거리를 하고 있냐"


하는 말에 그녀는 또다시 마음에 생채기가 났다. 그 이후로부터였을까. 아버지로부터 뜬금없이 오게 된 전화는 일부러 받지 않는 행태를 보이게 된 건. 그녀의 아버지는 너무 극단적이었고, 다혈질이었으며, 완벽주의성향을 갖고 있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려고 한 몸 아끼지 않는 것은 알겠으나, 앞서 말한 성향들이 너무 부정적이라서 자라면 이런 사람만은 되지 않아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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