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 대학동기들과 나와 생일파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는 모두 여성이었고 단 한 명만이 남자였다. 그녀를 만나면 항상 빛나는 곳을 갔다. 압구정이나 청담의 어두운 공간에 조명으로 장식해 놓은 곳들, 그래서 그런 곳에 가면 나까지 빛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 한 것들은 그냥 얼굴 반반한 애들이 모여 생일을 축하하고 있어 보이게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도 어떤 소속감을 가지고 있어라는 사람들의 인식이 보이지 않지만 깔려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게 지금은 몇십만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 앤드류였다.
그때즈음엔 그 남자애에 대한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단지 사람들하고 잘 어울리는구나, 모두가 여자인 공간에서도 그런 걸 의식하지 않고 어울려 지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 남자애와는 그 이후로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그 공간의 여자애들과도 마찬가지였다. 단지 어떤 공통의 목적-생일파티-라는 걸 위해 모이고 다시는 안 볼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며 '그땐 그랬었지'회상할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미대였던 내 친척의 졸업으로 그 친구들도 모두 다른 길을 가게 된 것이다.
그즈음에는 나도 경과 멀어져 있었다. 친구는 해외로 돌아다니기 바빴고 나 또한 직장생활의 구질구질함에 절여져 갔다. 내가 연락해도 그녀와 스케줄을 맞추기 힘들어서 그랬단 것은 핑계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그럴 때쯤엔 나는 화려한 것에 중독되어 신사동의 파티 같은 걸 좇기 바빴다. 그럴 것이 주중의 너절한 회사생활을 버티기엔 그런 것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인간의 환멸을 나를 추앙하고 사람들에 둘러싸여 회오리치는 유리계단, 감각적인 음악으로 보상하려는 욕구였다.
그렇게 피상적인 관계에 물들어갔고 그녀는 그즈음엔 아나운서가 되었다고 했다. 나도 어릴 때부터 막연 언론고시라고 불리는 것들을 봤지만 번번이 시험에서 떨어지고 말았고 카메라테스트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이 가진 외모라는 유리한 점도 있었겠지만, 그녀도 노력한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방송국에 입사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흔한 방송아카데미도 가지 않았는데 이유는 돈이 들어가서였다. 한국에 독처럼 퍼진 학원이란 시스템은 이미 돈벌이의 수단으로 우후죽순 퍼져나가고 있었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빚을 내서라도 했어야 했지만 그런 시스템의 도구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등록을 주저하게 했다. 진짜 될 수 있을 거라면, 그런 게 없이도 되어야만 했다. 숱한 면접에서의 고배는 결국 방송에 대한 꿈을 포기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