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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 Oct 31. 2024

당신에게서 고기 냄새가 나요

밀키트에서 경험한 채식주의자의 재발견

돼지국밥을 샀다. 편의점에 갔는데 마침 저녁시간이었고 새로 보는 밀키트가 있어 사본 것이다. 신제품을 시험해 보는 걸 좋아해서 자주 가진 않지만 보이면 사는 편이다. 마침 그림이 매우 먹음직해서 기대가 됐다. 편의점에서 이만 원을 쓰고 집에 와서 뚝배기를 불에 올렸다.


미세플라스틱에 민감해서 절대 플라스틱용기에 음식을 넣고 전자레인지에 돌리지 않는다. 예민한 혀를 가지고 있는 나는 햇반을 돌렸을 때 나는 인공향도 견디기가 힘들었다. 사기그릇에 밥, 스티로폼라면을 옮겨 담고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나를 보고 회사 동료는 '왜 그렇게 해? 설거지하기 귀찮게'라고 말했고 '미세플라스틱 때문에요' 답하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아무튼 돼지국밥을 사 왔는데 밀키트를 뜯자 지방이 응고되어 머리 고기, 내장, 고기가 덩어리 져 있었다. 간혹 국밥을 배달시켰을 때(이것도 미세플라스틱 범벅인데 너무 밥 할 힘이 없어 시켰다) 남아서 냉장고에 넣어두면 지방이 굳는 걸 볼 수 있는데, 이건 경험이 있어 (덩어리진건) 괜찮았다. 신제품을 먹어볼 생각에 뚝배기가 끓길 기다려 먹으려는 찰나, 혹시 군내가 나면 후추를 첨가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입에 숟가락을 대자마자 비린맛을 참을 수 없었다. 약간의 돼지냄새는 참을 수 있지만 쿰쿰할 정도로 냄새가 나는 국물은 몇 번 뜨기 어려웠다. 읽었던 채식주의자가 떠올랐다. '내가 채식주의자를 읽어서 별거 아닌 것에도 냄새가 난다고 느끼는 건가?'란 생각에 다시 국물을 떴지만 이건 아니었다. '당신에게서 고기 냄새가 나요'라고 말하던 여주의 말이 떠올랐다. 결국 오천구백 원 밀키트 돼지국밥을 하수구에 흘려버릴 수밖에 없었다. 아까운 내 돈이었지만 억지로 먹어 체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었다. 원산지를 보니 외국산이라고 되어 있었다. 물 건너온 고기라도 잡내를 없앨 방법이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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