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다지 바쁠 일이 없는 하루여서 집에 와서 점심을 먹었다. 어머니가 가져다준 음식을 미리 해동시켜 놔서 데우기만 하면 됐는데 흰 셔츠에 양념이 묻었다. 애벌빨래를 했지만 지워지지 않아 결국 옷을 갈아입었다.
사소한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는 난 옷에 뭐가 묻은 것에도 기분이 쉽게 저하되곤 했다. 집에 와서 점심 먹기 싫으면 사람들과 같이 하면 될 텐데, 그들과 마주하며 겪는 감정소모는 싫은 것이다. 왜 이리 삶을 살며 아쉬운 일만 많은 건지 아니면 항상 타는 가을 때문인지 요새 멜랑꼴리 하다.
감정은 휙휙 바뀌지만 결국엔 혼자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런 걸 타인에게 호소하기도 했으나 그런 건 안된다는 걸 경험했다. 결국 그 타인은 내 결점을 타인에게 말하거나, 대수롭지 않은 일로 치부하거나 결국엔 떠났기 때문이다. 예전에 연인과 서로의 애칭을 부르던 걸 기억하고 나서, 결국 그건 연애였을 뿐이라고 다독인다. 가장 힘들 때 인간에게 기대려고 했지만, 결국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누군가 위안이 돼줄 것이라고,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감정을 갖고 싶었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결국 인간은 혼자라는 점을 다시금 깨달아야만 했다.
타인이 주는 영원한 위로는 없단 걸 알게 된 이후부터 나는 불현듯 잠이 들곤 했다. 잠에서 으으 하며 깨어나 보면 어스름이 지는 저녁이었다. 누군가에게 이해받으려기보다 걷는다. 오늘도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을 천변에 내다 버리고 왔다. 돌에는 도요새가 꼿꼿이 서있었다. 새가 움직이는 걸 보니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코스모스가 핀 공터를 바라볼 때는 가을꽃의 혼돈에 멀미할 것만 같이 어지러웠다. 비로소 가을임을 체감했다.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이 전화 와서 부러 한옥타브 올려 전화를 받았다. 그는 '밝아 보여서 다행이네'라고 했다. 한없이 밝아 보이는 사람이 내면에 더 처연한 슬픔을 지니고 있단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타인이 내 꾸며지지 않은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나 또한 그런 게 욕심임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난 어떤 말 같은 거보다 소중한 걸 바라보는 상대방의 눈빛을 받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