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간 보스가 돌아오는 날이어서 착수보고 일정을 보고했다. 2개의 착수보고를 해야 했는데 1번째는 오전에 2번째는 오후에 하게 되어 점심을 먹는다고 말했더니 잽싸게 부문장에게 보고하는 그다. 최근에 아무도 부문장 밥을 챙기지 않기 때문에 그는 얼씨구나하고 '상위랑 같이 밥 먹기 싫은데 그쪽보스가 온다는데 참여해야지 뭐'라고 답하지만 사실 은연중 반갑다는 걸 알 수 있다. 부문장은 변태 같아서 싫은 걸 좋다고 하고 좋은 걸 싫다고 하는 습성이 있다. 말을 돌리고 돌려서 아무도 알아듣지 말을 하고 본인 혼자 웃어서 모두가 그를 싫어했다.
부문장 보고를 하고 돌아온 보스는 '우선보고 자료 준비해'라고 내게 말했다. 모두가 설렁설렁 일하는 금요일에 잔소리를 들으니 또 딥빡이 쳤지만 작성하는 척을 했더니 오늘도 내 뒤를 지나가며 모니터를 보는 그다. 다 변태새끼들만 있나 관음증 환자다. 시위의 일환으로 교육동영상을 보고 있었더니 굳이 '이거 이번 달 거야 저번 달 거야?' 묻는다. '이번달 겁니다'라고 하니 '빨리 우선 보고 써'라고 한다. '오늘까지 해야 합니까?'라고 하니 '그럼 오늘 해야지'라고 오늘 지시하고 자료를 만들기 요청하는 독촉하는 태도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아무튼 임원에게도 보고를 하러 갔다. 관피아로 내려온 그에게는 친정식구가 오는 셈이라서 역시나 밥 같이 먹을 거냐는 요량으로 갔더니 뜬금없이 특정업체랑 하는 것에 대해 화를 내기 시작한다. 그 단체는 그가 친정에 있을 때 임원으로 왔던 사람이 속해있던 기관이다. 왜 수의로 했냐, 위에서 찍어 내려온 거냐 질문폭탄이 이어졌다. 담당계장이 하라고 했고, 담당계장은 공교롭게도 그날 희망퇴직신청서를 냈다고 했다.
'(계장은) 일 벌이고 도망간 거야?'라고 물으며 '왜 공정하지 못한 루트로 진행하는지, 계약이 다되고 보고하면 어쩌라는 건지' 임원은 말이 많았다. 사업담당 입장에서는 예산 이월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수행업체가 과업기간이 부족하다 해서 이월을 했고, 낙찰차액도 돌려쓰지 않고 반납하면 편한데 예산효율을 높이기 위해 연말에 접어들어 신속히 추진한 과업이었다. 현장에서도 해당조사를 하는 사람이 드물었고, 학계 현장 연구에 다 물어봐도 고개를 가로저었던 사업이어서 읍소하며 맡긴 용역이었다. 하지만 그는 본인이 싫어하는 기관에 용역을 맡겼다는 이유로 계속 추궁했고, '여성기업 이름만 따온 거고 실제 업무는 ooo대표가 수행합니다'라고 하니 '그럼 이면계약이네'라고 그는 말했다. 사실 두 개 용역을 체결한 기관들이 보스와 친밀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보스가 하라고 한다고 내가 할 위인도 아닐뿐더러, 난 단지 빠르게 계약하고 속히 털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받았던 스트레스도 컸었다. 추진력 있게 과업을 내지르는 나와 그 과정에서 인력투입률을 조정하며 견적서 예산을 바꾸는 소용없는 일을 한 보스가 이해가 안 됐고, 나중에 담당주무도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지나간 일이라 쳐도 오늘같이 굳이 보고해야 할 필요가 없는 건을 잘 보이고 싶다는 쇼의 일환으로 부하직원에게 시키면서, 좋은 소리 못 듣고 나오자 '괜히 보고했나 보다'라고 그는 말했다. 특정업체에 열을 내는 임원과, 잘못된 판단으로 긁어 부스럼 만드는 보스는 예전부터 퇴사를 생각하게 한 요인이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그래도 지금 보스는 본인이 한 일을 본인이 했다고 인정하는 면은 있었다. 지금 부문장이 된 사람은 본인 행적도 인정하지 않았던 파렴치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부문장의 밥에 대한 열망에 가까운 집착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고 나는 그저 돌아와서 친구에게 회사욕을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