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친구네 다녀왔다. 서초동의 그녀의 집은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있었고, 차를 가져갈 수도 있었지만 서울의 정체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녈 만나기 전 있었던 일정을 부담감 때문에 취소하고, 그 해방감에 꽃을 사고 약속이 있어 늦는 그녀의 집에 먼저 도착해 편의점에서 간단한 주전부리를 했다.
역세권의 좁고 높은 그의 집은 지방의 내 집과는 달리 불안하고 초조했다. 내 신체가 서울에 위치하게 되었단 것만으로 시간의 흐름이 더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는 느낌과, 뭔가를 해야만 시간을 버리지 않는다는 강박은 그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노트북을 켜고 자기소개서를 들여다보고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마음의 번뇌와 깜박이는 커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압박감을 느끼게 만들었고 차라리 친구가 빨리 와서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귀가해서 그날 있었던 일과 함께 완벽한 착장으로 돌아왔다. 같이 압구정을 가서 핫플을 가기로 했었지만 나는 긴 여정으로 지쳐있었고 친구도 윗사람을 모시느라 지쳐있었다. 결국 사우나를 가서 몸을 지지고 집에 돌아오니 한시였다. 어떤 말로 인해 지인과 한순간에 남이 되는 걸 겪은 우리는 시절인연이라는 것에 깊이 공감했고 그렇다면 인생이 너무 허망한 게 아닌가 하지만 결국 그런 것이다.
집에 와서 영화를 보다 잠드니 다음날 정오였다. 친구와 청담동 고센에서 밥을 먹고 카페에 갔는데, 공부를 하기 위해 만났다지만 나는 어디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주말이면 자소서를 써야 한다는 압박감과, 김앤장 변호사를 소개해주겠다는 그녀의 말과, 그녀의 남자 친구에게 내 사회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남자를 안 만나는 게 아깝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과, 그럼 내 직장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건가 라는 불안과, 결국 타인을 볼때도 그의 직장을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는 답답함이 가슴을 짓눌러왔다. 글을 쓰겠다는 의지도 어떤 가시적인 게 없으니 계속 쓰는 게 맞는 건가 의심이 드는 지경까지 왔다. 친구를 만나기 전 인터뷰를 하고 캐릭터를 구상하겠다는 마음은 현실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강박으로 바뀌어 끊임없이 구인공고를 바라보게 만들었고 길을 잃은 막막함 느낌이 오늘 오후의 지배적인 감각이었다.
발렛비가 모자라 결국 나눠내고 나서, '결국 회사 그만두면 친구와 압구정에서 부리는 사치 같은 시간들도 없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내일의 출근을 준비하겠지. 결국 그녀와 같이 있으며 아무것도 못하고 나서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은 다 같이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오는 직장인들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며 '나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보다 내 성장이 더 중요한 사람이었지'를 깨닫다가 혼자 집에 돌아오면 '누군가 함께하고 싶다'란 생각이 마치 시계추처럼 드는 나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