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추가용역을 두 개를 해서, 착수보고를 하루에 2건 하기로 했다. 윗분과 점심 먹기를 싫어하는데 연이은 일정에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밥을 같이 먹는 것보다도 의전이 더 피곤한 일이라 회사 앞의 식당을 잡았다. 예전에 상사가 식당을 지정해서 긁어놓으라고 한 후 책임은 내가 진 후부터 더 이상 상사의 말을 듣지 않고 예약하기로 한 것이다. 멀리 있는 곳을 간다고 해도 상사본인차를 이용할 것도 아니고 내 차를 이용할 거면서 말이다.
식사예약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업무 중 하나여서 근처 지날 일이 있어 잠깐 들러 예약하고 왔다. 점심시간에 다시 가게를 지나게 되어 보스에게 말했다.
'여기로 하려고요'
그랬더니 단번에 싫은 티를 낸다.
'밥만 먹고 끝내려고?'
그럼 밥만 먹고 끝내지 법적휴게시간인 점심시간에 차를 끓이고 잣이고 할 것인가. 벌써부터 피곤해져 왔다.
그는 싫은 티를 팍팍 내며 말했다. '주무관이 뭐래?'
하.. 내가 이 나이 먹도록 주무관 의사 파악해서 점심을 예약해야 하나 현타가 왔다.
'주무관은 제가 예약하면 괜찮다고 할걸요'
'과장 의사 물어봐서 결정해'
하다못해 점심을 먹는 일에도 주무관 과장 의사 물어가며 해야 하는데, 업무는 어떨지 감이 올 것이다. 충분히 개인의 재량으로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윗사람을 끌어들여 일하면서, 일을 성공하면 아무 말이 없고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비난만이 가득한 이 회사를 그만둬야지 한 게 지금까지 왔다. 한계까지 다다른 걸 알면서 대답했다.
'네'
결국 주무관에게 식사장소를 물어봤더니 내가 결정한 곳에 이의가 없다고 했다. 왜 쓸데없이 밥까지도 그들의 의중을 물어서 결정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이해가 되지 않는 지시에 응하며 일하다 병이 났다. 여기서 일하면서 점점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