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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 Oct 27. 2024

가족주의는 식상하지만 연대는 쿨해



영화는 시그리드 누네즈의 [어떻게 지내요]를 각색한 내용이라 했다. 어느 날 서점에서 책을 찾았는데 없어서 아쉬워했던 게 기억나서 예매를 했다. 공부를 한 보상으로 영화를 볼 수 있다 생각하니 (지겨운 공부를) 참을 수 있었다. 영화는 작가인 여성이 오래전 친구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들어 방문하게 되는 일로 시작된다. 그 두 여성의 깊은 연대를 보면서 나도 삶의 마지막에서 함께할 누군가가 동성이든 이성이든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누군가 아픈 상황일 때도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틸다스윈튼이 당시 남자 친구를 위로해 주려다 생긴 아이를 그녀는 낳기로 결정하고, 남성은 먼 지역으로 떠난다. 전쟁에서의 트라우마라고 말하면서 불이 난 집을 구하려다 허망하게 죽은 그는 어쩌면 시대의 희생양일 수도 있지만 틸다에게는 떠난 사람일 뿐이었다. 딸이 아버지를 찾는데 비협조적이었단 이유로 딸과의 사이는 데면 하고, 그녀는 종군기자일에 빠져 지낸다.


그녀가 전쟁의 현장에서 만난 투쟁자는 게이인데, 그는 전쟁상황에서도 열정적인 사랑을 하고 있고 그건 상황이 주는 참혹성 때문이라고 했다. 죽음이 팽배한 곳에서는 삶에 대한 의지가 더 강렬하게 피어오르는 법이다. 난 동성결혼에도 찬성하는 입장이다. 누군가가 내 삶에 큰 힘이 되어준다면 그게 동성인들 뭐가 문제인가. 각자도생 하는 시대 동성인 소중한 사람을 만난다면 그것 또한 축복일 것이다.


삶에서 혼자라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난 그럴 때면 완전히 별개인 타인을 만났다. 완전히 별개인 타인이란 만난 적이 없고 다시 만나지 않을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그런 만남은 결국 회한만을 가져왔다. 그래서 그다음엔 지역적으로 가까운 지인을 만났다. 난 그를 외로웠기 때문에 만났다. 하지만 그는 나의 외로움을 성에 대한 욕구라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게 섹스에 대한 욕구는 아니었다. 단지 삶의 한 순간을 같이 있어줄 사람을 원했던 것이다. 틸다가 죽을 때 작가에게 있어달라고 한 듯이. 사람은 누구나 혼자지만 죽는 순간에 만큼은 누군가가 옆에 있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틸다가 시리도록 쨍한 정장을 입고 메이크업을 하고 죽는 장면을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원색 선베드와 함께 보여준다. 감독은 의상감독 등을 통해 색감을 잡는데 노력했고 처음 작가사인회의 주제가 죽음이었던 것처럼 DEAD에 대한 감각은 영화 전반에서 흘러나온다. 눈은 산 자와 죽은 자에게 동일하게 내린다는 것도 자연은 그저 존재하지만 작가의 친구인 환경학자는 그것도(자연) 얼마 남지 않았다며 일축한다. 나는 이 영화가 가족에 대한 사랑을 말하지 않는 영화라 좋았다. 어떤 역경과 아픔 속에서도 가족끼리의 연대는 스러지지 않는다는 주제는 이제 너무 식상할 뿐이다. 사람은 각자의 상황에 따라 타인을 평가하고 오해하지만 결국 인간에 대한 연민이 사람을 구원하며 각자는 본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따라 살아갈 뿐이란 걸 이 영화는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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