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주 주말을 시험준비로 보내면서 이번 주 중에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쉬고 싶다'였다. 야근은 하지 않았지만 놓쳐버린 주식과 시황공부로 항상 마음이 바빴다. 회사에서도 과중한 업무가 있는 주는 아니었다. 계약 2건을 해야 했고, 그걸 위한 서류만 준비하면 됐다. 단체행사가 하나 있었는데 참여 안 하기 때문에 조용한 회사에서의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왜 항상 마음이 조급한 건지 생각해 봤다. 국감이 있었는데, 그걸 보며 나오는 위원의 이력을 하나하나 살펴보니 박사가 있거나 학부졸업 후 박사까지 한 후 한 직장에서 계속 다니다가 최고위에 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걸 보며 또 토악질을 금할 수 없었는데, 최고위의 남편이 근무하고 있는 대학의 지역위원과 친분이 있는 듯 감사를 하는 내내 웃음을 금치 못하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건 질의하기 전 공적을 치하하거나 깍듯한 CEO의 공손한 자세로 제삼자가 봐도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카르텔 같은 건 자라오며 숱하게 봤지만 내겐 CEO의 모든 걸 수용하는 태도에 내포된 욕심이 보였고, 그는 필시 그런 욕심이 있었기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이었다. 옆에 앉아있는 산하기관의 장이 굳은 표정으로 엄숙하게 있는 걸 봐도 그 또한 CEO의 자리를 갈망하고 있을 테다. 더 높은 자리에 가지 못하는 나와, 지금 있는 자리에서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내가 자아분열되었다. 전문직을 준비했어야 했어야 한다는 열패감은 회사생활 내내 날 괴롭혔지만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는 명목으로 꾸역꾸역 계속해왔다. 하지만 이런 것도 나에 대한 변명임을 부인하진 못한다.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지원해 줄걸 알고 있지만, 그에게 (돈을 받는다는 이유로) 고개를 숙이는 게 싫은 것이다. 노력해도 나오지 않을 수도 있는 결과에 책임지기 싫은 것이다.
그런 생각 때문에, 주중에는 나를 계속 괴롭히며 지낸다. 시간이 지나도 나 자신을 채찍질하는 습성은 금할 길이 없어 지위를 욕심내다가 문학을 숭상하다 긴 소설을 읽는 식이다. 하지만 리스본행 야간열차도 읽는도 중 많은 등장인물과 집중되지 않는 스토리에 책장을 덮었다. 홈플러스 오만 원 무료배송으로 시킨 다짐육으로 미역국을 겨우 해 먹고 침대에 누워있다 '나 쉬고 싶었지'를 다시금 되새긴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잘 쉬는 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잘' 쉬고 싶다는 생각도, 쉬는 것도 잘하고 싶은 강박이 묻은 말이다. 생각을 안 하고 싶다. 나는 오늘도 파괴되는 날 구제하러 터벅터벅 걸을 테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바다가 보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