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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 Nov 14. 2024

본인의 것을 빨리 앗아가주지 않으면 불안해하던 남자

급속도로 다가왔던 사람이 있었다. 첫눈에 반하는 것만 사랑이라 생각하던 나는 그가 내게 다가오는 속도로 (그가) 사랑에 빠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마치 날 지금 갖지 못하면 빼앗겨 버릴 것처럼 조급해했다. 나는 그런 그가 재밌어서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무슨 생각해요?' 잘 먹지 못하는 테킬라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 점차 몸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그는 입술을 잘근거렸다.


그는 원하는 걸 성취하고 나서는 특유의 무심한 태도로 되돌아왔다. 옆자리에 앉아 티비를 보는데 함연지가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전혀 울어본 적 없는 사람처럼 특유의 태연한 미소로 방송을 하고 있었다. 돈을 숭배하던 그는 그 여자가 이상형이라고 했다. 그는 그녀의 돈이 좋은 것이었다. '사람들이 다 나를 떠나'라고 말하던 그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주고 싶었다. 그의 강퍅한 일상의 모든 태도가 '사랑으로 감싸면 바꿀 수 있어'라고 생각했던 나의 오만이었다. 그가 필요할 때만 나를 찾았지만, 일상의 모든 순간을 함께한다는 건 숨막히는 거란걸 알고 있어서 처음엔 그것 또한 기꺼웠다.


하지만 나중엔 그를 평가하게 됐다. 그의 고졸이란 학력,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계속해서 같은 말을 묻는 그의 강박, 누굴 만나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 이 나중엔 견딜 수 없어졌다. 그는 날 소유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그가 소유하려 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에게 가는 걸 인정하는 게 아닌, 일방적인 애정을 원하는 것이었다. 그가 사랑에 배신당해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떤 영상을 볼 때면, 그가 화면을 공허하게 바라보던 모습이 제삼자의 관점에서 겹쳐 보일 때가 있다. 어떤 애정도, 갈망도 회한도 섞이지 않은 아무것도 없는 눈빛이었다.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을 '좋다' '좋아' '좋네'라고 단편적인 단어로만 설명할 수 없었던 그는 결국 날 소유하려 하지 않음으로써 헤어졌다. 어차피 그가 했던 건 성욕 그 이상이 아니었음을 나도 알고 있었다. 날 의심하던 무렵 '난 너밖에 안 만나'라고 말하던 그의 유치한 말에 코웃음 쳤다. 그건 뭔데, 너의 정절에 대한 자부심이야? 아니면 네가 그러니 나도 그래야 한다는 당위성이야?


시간이 지났지만 식당에서 그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던 일들은 필름처럼 남아있다. 그런 그에게 '왜'라고 재차 물었지만 그는 그저 눈을 내리깔며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를 생각하면 '아 그 조급하던 사람이 있었지, 본인의 어떤 것을 빨리 앗아가 주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낄 남자'라고 이젠 회상할 수 있었다. 그의 그런 걱정이 다주택자로 가는 길이 었겠지만, 그런 성정이 그에게서 사람을 떠나게 하는 요소임을 알았고 결국 나조차 떠날 수밖에 없었다. 가을이라서 떠오른 지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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