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여고를 나온 나는 중학생 때부터 레즈라는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다른 학생들로 하여금 '쟤네 사귄대'라는 말을 듣고는 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그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본 적은 없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지 했을 뿐이었다. 그들이 쇼트커트로 대표되는 외양을 하고 있더라도 구분 짓는 건 나의 편견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때 그들을 거리 두었던 건 대다수 학생들이 그들을 별종으로 각인했기 때문에 나도 그랬던 것이다.
특별히 여자가 좋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동갑인 친척과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면서 하루는 그녀의 집에 갔는데 서로의 몸을 만지면서 타인이 내 몸을 만질 때의 감각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그건 확실히 신선했지만 그녀와 내가 사귀기로 한 사이 같은 건 당연히 아니었다. 단지 몸이 성장하고 있었고 우리는 친밀했고 같은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다. 누가 먼저 시작하기보다 그건 본능의 영역이었다. 타인의 신체에 대한 궁금함.
어려서부터 남자를 통제당하면서 자란 나는 이성에 대한 해소되지 않은 호기심이 있었다. 그건 억누른다고 해서 눌려지지 않을 것이었지만 부모는 청소년기에 이성을 알게 되면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단 이유로 공학을 보내지 않았다. 재수학원에서 알게 된 엽이가 버디버디로 메시지를 보냈을 때 우리 집의 공용컴퓨터는 자동로그인이 되어 있었고 그걸 본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냈다. 그렇게 화를 내도 되지 않을 일상적인 안부 인사였다. 나는 딸의 사생활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그런 아버지가 진절머리 났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 그렇게 당해온 강압은 반작용으로 폭발했다. 실제로 입학하자마자 선후배 간의 밥 사는 문화는 만연해서 한 달의 캘린더를 꽉 채우고도 남았다. 하지만 내가 남자에 대한 관심을 갖는 건 억눌려왔던 이유 때문이었지 꼭 이성이어야만 되는 걸까?라는 물음은 늘 뇌리 속에 있었다. 실제로 어떤 여성을 만날 때는 그에게 급속도로 끌린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건 그녀의 외모 때문도 아니었고 호리호리함으로 인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비대했지만 그건 그녀가 날 사랑스럽게 봤기 때문도 있었고 내가 그녀에게 이끌림의 감정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마침대 그녀의 입술에 가닿았을 때 그건 남자와 키스할 때와 같이 동일하게 붕 뜨는 느낌과 어디론가 긴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었다.
그녀와 그 이후 다시 만난 적은 없다. 그건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사회적으로 그러면 안 된다는 인식 때문이기도 했다는 걸 시간이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나는 소중한 사람을 놓쳐버린 것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 해야만 한다'라는 건 개인에게는 적용될 수 없는 것인데 그때는 그런 정언에 고개를 주억거릴 만큼 어렸다. 그래서 지금의 내게는 그녀와의 경험이 추억으로 남겨졌을 뿐이며 다시 보려 해도 볼 수 없으며 개인은 사회에 우선한다는 가치관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녀를 놓치지 않을 것이지만 이미 파랑새는 날아갔다.